
누가복음 16:14~31
<뒤바뀐 운명, 본질을 말하다>
찬송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Ⅱ. 부자와 나사로 (눅 16:19-31)
1. 서로 다른 두 신분(19-21)
이 세상에는 악한 부자와 경건한 빈자라는 서로 다른 두 신분이 있다. 옛날 유대인들은 번영하는 것은 선한 사람이라는 표시 가운데 하나라고 여길 정도이었으므로, 가난한 자에게 어떤 호의를 베푸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문에 충분히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잘못을 시정해 주시고자 노력하신다.
(1) 악한 인간, 즉 행복의 절정에서 영원히 불행에 있을 사람(19절) : 한 부자가 있어. 라틴어에서는 흔히 어떤 부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자는 가난한 자의 이름이 주어진 것처럼 나타나 있지 않다. 이제 이 부자에 대하여 살펴 보자.
1)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는데, 그것이 그가 다닐 때의 행장이었다. 그는 쾌락을 위하여 고운 베옷을 입었으며, 매일 세탁하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밤에 입는 옷과 낮에 입는 옷이 있었으며, 신분을 나타내는 자색 옷이 있었다. 그는 밖에 나갈 때는 반드시 매우 화려하게 차려입었다.
2)그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였다`. 그의 식탁에는 자연과 인력이 제공할 수 있는 각종 진귀한 음식들로 가득 차려졌으며, 보조 식탁에는 요리 접시로 가득 쌓여 있고, 비싼 정복을 입은 종들은 식탁에서 시중을 들었다. 그리고 식탁에는 손님을 초대하였는데, 그는 그것이 그 자리를 빛내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무슨 악한 것이 있는가 비록 어떤 사람이 재산이 넉넉하여 부유하고,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며, 또한 풍성한 식탁을 먹게 된다고 해도 아무런 죄가 아니다. 또한 그는 자기 재산을 사기, 압제, 또는 착취로 모았다는 말도 없다. 그리고 그가 술 취했다거나 다른 사람을 술 취하게 했다는 말도 없다.
(2) 여기에 불행과 고난 가운데서도 경겅한 한 사람이 있다(20절).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이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있는 한에 있어서는 최악의 궁지에 몰려 있었다.
1)그의 몸은 욥처럼 `헌데` 투성이었다. 몸이 병들고 쇠약한 것도 큰 고통이지만 헌데는 환자에게 훨씬 더 큰 고통을 줍며,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 훨씬 더 혐오감을 준다.
2) 그는 먹고 살기 위해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스스로 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헌데 투성이요 절름발이였지만 몇몇 동정어린 손길과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자의 문간에 놓여졌다.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없는 자들은 수고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돈 한푼을 그들에게 빌려줄 수 없는 자들은 수고로 그들을 도와야 한다. 돈 한 푼을 그들에게 빌려줄 수 없는 자들은 한 손이라도 빌려주어야 한다. 고난 중에 처한 나사로는 스스로 생계를 이어갈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2. 서로 다른 두 상태(22-23)
(1) 그들은 모두 죽었다(22절). 그 거지가 죽어…부자도 죽어. 부자와 가난한 자,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에게 죽음은 공통의 운명이다. 거기서 그들은 함께 만난다. 성도들은 죽어서 그들의 슬픔이 끝나게 되고 기쁨에 들어갈 것이다. 죄인들은 죽어서 그들의 책임에 대해 답변하러 갈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관계된 것이다. 이는 그것이 그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 거지가 먼저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는 여전히 번창하게 내버려두시면서 경건한 자를 세상에서 데려가실 때가 종종 있다 그는 다른 아무 피난처나 쉴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덤 속에 숨은 것이다.
(3) 부자도 죽어 장사되었다. 가난한 자의 매장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다. 사람들은 아무 곳에나 구덩이를 파고 그의 시신을 묻었다. 그러나 부자는 화려한 장례식을 가졌다. 부자가 지닌 관대한 인생 그리고 그가 베푼 좋은 식탁에 대하여 찬양하는 장례식사가 있었을 것인데, 그것은 연회에 참석했던 자들이 맡았을 것이다. 장례식은 그 사람의 행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4)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천사에게 받들려 안식에 들어간 그의 영혼에게 주어진 영예는 얼마나 큰 것이며, 매우 거창하게 부자의 시신을 무덤으로 옮긴 영예보다 얼마나 월등한 것인가!
(5) 부자에 대해 들은 다음의 소식은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었다`는 것이다(23절).
1)그의 처지가 매우 비참하다. 그는 지옥, 저 음부, 즉 분리된 영혼의 상태에 있다. 거기서 그는 불행의 극한에서 극도의 고통 중에 있었다. 신실한 자의 영혼들이 육체의 짐에서 벗어나자마자 즉시 기쁨과 행복에 들어가는 것처럼 악하고 성화되지 못한 영혼들은 죽음에 의해 육체의 쾌락에서 끌려나오자마자 끝 없고 무익한 치료 불가능한 고통과 불행에 머무르게 된다.
2)그의 처지가 비참하게 된 것은 나사로가 행복한 것을 그가 알게 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저가…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23절). 그는 그때 나사로가 어떻게 된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아니, 그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누가복음 16:29)
** 복음을 들을 때 회개하라
* 부자와 나사로(16:19-22)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겪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 겪는 일이, 그 사람이 겪는 일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부자는 날마다 연락(宴樂)하였고 나사로는 극심한 고통을 당했으나, 저 세상에서는 두 사람이 전혀 상반된 경우에 처해졌던 것입니다.
* 부자의 두 가지 요구(16:24-31)
처음에는 나사로를 통해 물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자는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나사로가 위로받는 것이 마땅하다며 부자의 간구를 거절합니다. 또한 그는 나사로를 형제에게 보내어 경고하게 해 달라고 했으나, 이 요구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심판의 불가피성과 불변성을 나타내 줍니다.
주님!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보내 주시고 복음을 받고 믿음으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