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림의 봄]
-조향미-
함양 상림을 지날 때는 언제나 겨울
잿빛 가지들만 보고 지나쳤다
그 오랜 숲은 지치고 우울해 보였다
길가 벚나무들 방글방글 꽃 피울 때도
숲은 멀뚱하니 바라만 보았다
또 봄이야 우린 이제 지겨워
늙은 나무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보름 만에 다시 상림을 지났다
아니, 지나지 못하고 거기 우뚝 섰다
아, 천년 묵은 그 숲이 첫날처럼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시커먼 고목 어디에 그렇게 연한 피를 숨겼는지
병아리 부리 같은 새잎들이 뾰족뾰족
각질을 뚫고 나왔다
작은 물방울 같은 것이 톡톡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온 숲에서 달콤한, 솜털 뽀얀 아가 냄새가 났다
봄바람은 요람인 듯 가지를 흔들고
새잎 아가들은 연한 입술로 옹아리를 한다
참, 그만 모든 것 내던지고 싶은 이 만신창이 별에서
숲은 무슨 배짱인지 또 거뜬히 봄을 시작한다
참, 환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