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그뤼네발트, 이젠하임제단화 (세례요한 부분), 1515년, 콜마르 운터린덴 미술관

ree610 2024. 8. 31. 10:35

그뤼네발트, 이젠하임제단화(세례요한 부분), 1515년, 콜마르 운터린덴 미술관

독일 국경 근처에 있는 프랑스 작은 도시 콜마르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데 500년 전에 만들어진 이젠하임 제단화를 보기 위해서다. 우리가 2016년 자매 교회인 독일 바인가르텐 교회에 갔을 때,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를 방문했는데 콜마르는 거기서 가까운 곳이다.

이젠하임 제단화가 유명한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작품은 대개 예수님은 신이기에 십자가에 달려서도 고통을 넘어서는 초연한 모습이었다. 십자가에 달려서도 고통스럽지 않게 보이는 예수님은 신적인 권위를 나타낼 수는 있지만, 우리와 같은 인간-내 고통에 동참하시면서 나를 위로하고 눈물 흘려주는 예수님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런데 바로 이 작품은 정말 고난받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하였다. 기독교 미술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교회와 기독교인의 사명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인물은 세례 요한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 1:6~7)

맨발에 허름한 옷을 입은 예언자 요한이 단호하게 서 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라는 자세다. 그는 왼손 위에 성경을 펼쳐 들고 있다. 성경이 예언하고 기록하고 있는 메시아가 바로 저기 십자가에 달린 예수라는 증언이다. 그는 오른팔을 들어 예수님을 가리킨다. 뭉뚱그려 가리키지 않고 정확하게 증언하기 위해 둘째 손가락으로 콕 찍어서 가리킨다.

요한의 오른팔 위에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한 3:30)는 글이 적혀 있다. 가리키는 자가 더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 오늘 어느 목사가 장로가 교회가 주님보다 더 돋보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증언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기장 총무 후보로 나서면서 어떤 이미지로 내 생각을 표현할까 고심하다가 이 세례 요한을 택했다. 목회도 총무도 인생도 우리는 세례 요한의 자세를 지녀야 하고, 우리는 모두 메시아를 가리키는 증언자이기 때문이다. 이 증언에 충실한 삶이 아름답고 영원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이렇게 믿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다.

-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