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예레미야 선지자

ree610 2023. 6. 8. 10:51

글라이켄슈타인(1870~1942), 예레미야, 클리브랜드

구약의 대표적 예언자 예레미야는 제사장 가문 출신이다. 그는 BC 627년쯤 예언자로 부름받았다.
지금은 목회자가 제사장과 예언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지만 구약 시대에 제사장은 국가 종교의 공식 직책이고 예언자는 비공식 재야활동가였다. 제사장보다 예언자가 훨씬 위험하고 고된 사명이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급하게 예언자로 부르실 때는 상황이 긴박한 경우다. 예레미야가 그랬다.

이때는 국제정세의 대전환기였다. 아시리아 제국이 쇠퇴하고, 신흥 강국 바빌론과 전통 강국 이집트 사이에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있었다.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이스라엘은 국제관계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분열이 생겼다. 특히 야심 차게 개혁을 추진하던 요시야 왕이 전사하고(BC 609년) 갈팡질팡하던 이스라엘은 급기야 BC597년에 바빌론의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10년 후인 BC587년에 예루살렘은 초토화되었고 왕과 지도자들은 멀고 먼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이런 혼란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로 부름 받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실제로 예레미야는 멸망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눈으로 직접 지켜봐야 했고, 그 가운데서 피를 토하며 눈물로 구원의 길을 선언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폭력‧납치였다. 결국 예레미야는 친 이집트파에 납치되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폴란드 출신의 조각가가 예레미야를 청동상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몸을 움츠린다. 입을 굳게 다물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기쁘지 않다. 그는 두 손으로 양쪽 팔뚝을 움켜잡고 있다. 팔의 살이 들어갈 정도로 세게 잡는 것은 강한 거부의 표현이다. 전체적으로 몸을 움츠린 것은 그가 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명이 가져올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을 예감하며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저항한다. 솔로몬처럼 아직 너무 어리다 하고(왕상 3:7) 모세처럼 말을 잘못해서(출 4:10) 예언자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하나님 말씀은 달기보다는 쓰기 마련이며 그것은 전하는 이의 앞길이 순탄치 않다는 뜻이다. 예레미야의 회피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며 예레미야는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존중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예레미야는 평생 눈물의 예언자로서 폭력과 위협의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외친 음성과 삶은 후대에 길이 예언자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시대를 정직하게 통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외치려는 사람들에게 예레미야는 십자가의 길과 영원한 삶의 모습을 남겨주었다.

ㅡ  이훈삼 목사(주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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