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의 꿈
ㅡ 볼프강 보르헤르트
나 죽으면
어쨌든
가로등이 되고 싶네
하여 너의 문 앞에 서서
납빛*
저녁을 환히 비추리.
아니면 커다란 증기선이 잠자고
소녀들이 웃음을 짓는 항구.
가르다랗게 나 있는 불결한 운하 옆에서
나는 깨어
고독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
눈짓을 보내리.
좁다란
골목, 어느 선술집 앞에
붉은 양철 가로등으로
나는 걸려 있고 싶네....
하여 무심코
밤바람에 실려
그들의 노래에 맞추어 흔들고 싶네.
아니면 한 아이가 있어
혼자 있음을 깨닫고, 창틈에서
바람이 으르렁거리며
창 밖에는 꿈들이 귀신처럼 출몰하여
놀라워하거든, 눈을 크게 뜨고
그 아이를 비추어주는 가로등이 되고 싶네.
그래, 나 죽거든
어쨌든 가로등이
되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잠든
밤에도 오로지 홀로 깨어
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물론 너, 나 하는 친숙한 사이로
* 납빛 - 푸르스름한 잿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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