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 와스디 (에 1:9-12)
에스더 시대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아주 잔인한 폭군이었습니다.
바사(페르시아)의 역사를 보면 아하수에로 때가 가장 전성기였습니다. 따라서 아하수에로는 폭군이면서도 매우 유능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레스와 다리오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인데, 고레스는 남 왕국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유대인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지만 개중에는 이미 70년간 그 곳에서 살았으므로 돌아가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서는 바로 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대인들에게 닥친 일생일대의 위기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린 땅은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1절)이었습니다.
인도에서 아프리카 북부 지방을 뜻하는 구스까지는 5천km가 넘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거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아하수에로 왕에게는 <와스디>라는 아름다운 왕후가 있었습니다.
와스디는 아하수에로의 첫 부인으로 에스더가 왕비가 되기 전의 왕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쫓겨나 비극적인 삶을 삽니다.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듯 하더라>(1:12).
왕이 자신이 벌이는 잔치 자리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왕후 와스디가 이를 거절한 것입니다.
폭군의 명령을 거역하면 어떻게 된다는 사실을 와스디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그는 끝내 잔치 자리에 나가는 일을 거역했습니다.
<왕후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11절) 과시하고 싶었던 왕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것입니다.
왕후 와스디는 이렇듯 자기의 주관이 뚜렷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그 사건 배후에도 엄연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로 인해 에스더가 등장하고, 에스더가 와스디에 이어 대국 바사의 왕후가 되므로 유대인이 집단학살을 면하는 놀라운 반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왕후 와스디가 아하수에로 왕의 명을 거역한 이유는?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에 대해 아는대로 적어 보십시오.
-고레스 왕이 유다 포로들을 해방했음에도 일부 유대인들이 귀환하지 않은 이유는?
주님, 70년이란 긴 포로생활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포로지에 뿌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타국이고 타향이었지만 오랫동안 그 곳 문화에 적응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귀환을 포기하고 그냥 그 포로지에 눌러 살게 된 것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오늘 저희들도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며 세상과 짝하며 세상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아 갈 본향이 따로 있고, 지금은 엄연히 나그네 생활 중임을 잊지 않고 사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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