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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의 경제사상 (정승훈)

ree610 2016. 12. 18. 16:56

칼뱅의 경제사상
  - 막스 베버와 칼뱅주의, 그리고 성공주의를 넘어서서

 

왜 칼뱅인가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보수 기독교인임을 표방하는 자들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극보수층을 대변하는 미국의 ‘시민종교’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의 정서에는 새로이 선택받은 이스라엘로서 백인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는 흑인 오바마 대통령이 망쳐 놓았지만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를 되살리고 세계의 경찰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꿈을 백인 트럼프가 되살릴 것이라는 순진한 지상 천년왕국의 소망도 담겨 있다. 버클리 대학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는 미국 보수층의 이러한 사회정치적인 태도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시민종교’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명백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고, 어느 민족에 앞서 그 우수성과 특별함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군사독재 정권이 이념화시킨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몇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시민종교적인 교리가 미국의 문화 안에, 특히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마음에 공상소설과 같은 시한부 종말론과 더불어 매우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시민종교는 막스 베버가 그의 주저인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에서 고전적으로 분석한 주제이기도 하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기 전에 베버는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사회주의가 ‘죽은 개’ 취급을 받던 시대에 그의 위상은 대단했다. 우선은 그의 사회주의에 대한 진단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국가 철폐를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주의의 관료화로 진행될 것이고, 이러한 관료주의로 인해 사회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회학에서 전통적인 지배, 카리스마적인 지배, 그리고 관료적인 지배를 구별하고,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근대화는 관료적인 지배를 통해 사회를 비인간적이고 숨 막히는 현실로 만들어버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료주의 지배의 귀결로 베버는 서구의 근대성을 ‘세계의 비주술화’라는 유명한 슬로건으로 표현했다. 간단히 말하면, 이성과 과학기술,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해 이전 중세 사회에서는 묶여 있던 종교적이며 전통적인 가치들이 해체되면서, 개인과 사회는 교회의 지배로부터 해방되고 세속화의 길을 걷게 되며, 세계와 사회는 종교적인 지배와 전통적인 가치와 마법적인 권위와 주술적인 힘으로부터 풀려난다는 것이다.(합리화 과정) 글의 시작에서 장황스럽게 베버의 합리화 과정을 언급하는 것은 이것이 청교도의 경제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그의 사회학적 분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왜 칼뱅인가?’를 묻는 이유는 자명하다. 칼뱅이 너무도 오해되었기 때문이다!

베버는 청교도 경제윤리를 ‘가치중립적’으로 분석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다
베버의 사회학은 흔히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념을 교육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사는 강의실에서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예언자적으로 선포할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객관적으로 학문에 대한 토론을 진행시키고, 다른 의견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하고, 가치중립적으로 학문의 진리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사회학 역시 정치나 경제 또는 문화적인 이슈들을 다룰 때 가치중립적으로 분석하고 다루어야 한다. 베버는 청교도들의 경제윤리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취급할 때, 방법론적으로 이념형과 선택적인 친화력 두 가지로 말한다. 이념형이라는 것은 사회학이 어떤 문제를 사회적이나 문화적으로 분석하려면 그것을 유형별로 다룰 필요가 있는데, 예를 들어 자본주의에 대한 규정을 유형적으로 한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부의 창출과 추구’라는 이념적이며 이상적인 유형으로 말한다. 자본주의 정신은 착취적이거나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이윤을 추구하는 데 지속적이며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경영방식을 통해 이윤추구를 새롭게 갱신해나가는 ‘합리성’으로 본다.1)
물론 베버는 어느 시대든지 자본이나 상품, 시장은 존재했기 때문에 ‘로마제국 시대의 자본주의’라는 말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식민주의 시대나 제국주의 시대에서처럼 착취적인 유형의 자본주의를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자본주의는 비합리적인 형태의 자본주의에 속할 뿐 본래적인 자본주의의 정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문명의 세계사적인 발전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래서 베버는 자본주의를 ‘합리적인 부의 창출과 추구’로 파악하고, 여기서부터 인간의 부를 추구하는 목적 합리성이 산술과 계산제도, 그리고 장부조직을 발전시키면서 사회가 근대화의 과정으로 나아간다고 본다. 이제 세계는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세속화와 합리화의 길로 치닫게 되면서, ‘세계의 비주술화’ 과정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사회제도와 교육 시스템 등을 통해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합리화 과정은 인간과 사회를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일까? 베버는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삶의 의미가 상실되고, 자유는 사라진다. 마치 미셀 푸코가 현대 사회를 ‘파놉티곤’이라는 거대한 감옥 사회로 진단한 것과 같다. 이것은 베버가 말하는 ‘쇠창살 우리’(iron cage) 현상이다. 결국 서구의 합리화 과정은 세계를 마법으로부터 해방하지만, 사회의 관료적인 지배와 병리적인 현상으로 인해 의미 상실과 자유의 실종, 그리고 생태학적인 위기로 ‘쇠창살 우리’에 갇혀버리는 파국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역시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서 서구의 계몽주의 이후 과학기술과 진보를 통해 인간은 신화로부터 해방되지만, 인간의 이성이 과학과 기술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에 묶여 도구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에드문드 후설이 현상학에서 갈릴레오 이후 서구 사회는 자연과학의 영향으로 문화와 전통을 통해 우리의 삶에 녹아 있는 생활 세계가 ‘수학화’ 혹은 ‘기술화’되어 침탈당할 것이라는 예견과도 맥을 같이한다. 또한 위르겐 하버마스가 소통 사회이론에서 정치, 경제, 대중매체를 통한 ‘생활 세계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한 것과도 같다.

자본주의 합리성은 청교도의 경제윤리에 선택적인 친화력을 갖는다
베버는 청교도들의 윤리와 금욕적인 생활이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표현하고,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이 말은 청교도들의 종교사상이 직접적으로 자본주의를 일으켰다는 말이 아니라 칼뱅주의 예정사상과 이후 청교도들의 경제윤리와 삶의 태도가 역사적인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합리적인 조직, 산술적인 체계, 장부 정리에 친화력을 가지면서, 종교이념과 물질적인 삶의 기반의 결합이 무서울 정도로 가속도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베버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표현되는 칼뱅의 이중예정 사상이 청교도들의 경제생활과 태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러한 사회계층의 삶과 직장에 자본주의적인 합리성이 심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사회와 문화의 전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 베버가 사회학적인 개념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목적 합리성’인데, 이것은 목적에 따라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해타산을 고려하는 산술적인 합리성을 말한다. 이외에도 가치 합리성, 감정적인 합리성 또는 종교와 전통을 통해 내려오는 합리성이 있지만, 베버는 목적 합리성이 청교도들의 경제윤리에서 가장 잘 드러나며 선택적으로 자본주의 정신과 친화력을 갖는다고 본다.
베버의 사회학은 ‘이해 사회학’으로 불리는데, 그 논지는 다음의 경구에서 잘 드러난다. “로마의 시저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저가 될 필요가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시저의 합목적적인 행동을 이해하면 시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는 심리학주의나 역사주의를 빗겨나간다. 사람의 합리적인 행동은 항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으로 드러나며, 이런 의미 있는 행동을 분석하면 사람의 의도나 삶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베버는 유고로 남겨진 방대한 경제와 사회의 한 부분으로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계획했지만, 이것이 미리 단행본으로 출간되면서 크나큰 논쟁과 반향을 일으켰다.
‘청교도 사상’은 식민주의 시대에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의 복음을 전해 받은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는 가히 신주단지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정작 청교도의 야누스적인 얼굴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청교도 사상가들 중에 공동체적이며 건전한 이념 전통을 미국 사회 안에 세워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청교도 사상은 칼뱅의 이중예정론을 근거로 극단적인 신앙의 개인주의화와 인종차별을 양산하기도 했다. 초기 미국의 역사에서 청교도들이 미국 인디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흑인 노예제도의 옹호자였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에 속한다. 매사추세츠 식민 지역은 행정 수반이던 존 윈트롭(John Winthrop)을 통해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불렸고, 청교도 원리에 의해 다스려졌다. 그러나 현실은 이 도시가 예루살렘 언덕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도시가 아니라 뉴잉글랜드에서 처음으로 노예제도를 옹호해서 비판받는 도시였다. 여기서 칼뱅주의 예정사상은, 흑인들은 저주받고 구원에서 유기된 자로 보는 근거가 되었다.2) 더욱이 매사추세츠 살렘에서 1692년 2월과 1693년 5월에 벌어진 마녀사냥 재판은 청교도들이 벌인 어이없는 촌극이었고, 잔인한 살인행위로 판명되기도 했다.3) 결국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는 자기와 신앙이 다른 그룹은 언제든지 없애버려도 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리는 노예제도는 옹호될 수 있고, 타 인종에 대해서는 배타주의와 차별로 점철된 언덕 위에 세워진 ‘쇠창살 우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칼뱅주의 예정론은 무엇인가
칼 바르트는 예정을 ‘복음의 총괄’이라는 말로 평가한 적이 있다. 히틀러 당시 ‘율법과 복음’의 분리를 통해 민족사회주의에 복무한 ‘독일 기독교인들’을 비판하면서, 바르트는 ‘복음과 율법’의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해 히틀러를 향해 목숨을 건 신앙투쟁을 선언했다. 어쩌다가 이런 복음의 총괄이라는 예정, 즉 하나님의 은총의 주도권이 타자 말살의 정책으로 둔갑해버렸을까? 에밀 뒤르켐은 종교이념이 한 사회를 통합하는 연대적인 기능을 하는가 하면, 이것이 잘못될 경우 사회 병리현상으로 나타나 악영향을 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예정’을 둘러싼 역사적인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일까? 베버는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원한 결의”에 주목하면서, 구원받은 자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결의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위한 영원한 삶으로 예정되지만, 다른 자들은 영원한 죽음으로 미리 정해졌다는 논지를 자신의 사회학의 문제틀로 삼는다.4) 이렇게 되면 창세 이전에 하나님의 이중예정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 역시 선택된 자들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된다.5) 선택된 자들은 중생과 성화를 통해 예정받은 자의 증거를 자신의 직업과 경제적인 태도에서 드러내야 한다.6) 그래서 베버는 진단하기를, 청교도들의 ‘방법적으로 합리화된 경제윤리적인 행동’은 영적인 귀족주의를 낳고, 칼뱅주의의 이중예정 사상을 이런 방향으로 성격지어 나간다고 했다.7)
신학적으로 표현해보면 ‘실천의 삼단논법’(practical syllogism)이라고 부르지만, 간략히 말하면 ‘당신이 예정된 자라면 당신의 예정받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드러내라. 당신의 외적인 행동이 구원의 확신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이 청교도들이 발전시킨 ‘방법적으로 합리화된 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교리적인 배경이 된다.8) 베버에 의하면 근대 자본주의 부르주아 인간 유형은 여기에 뿌리박고 있으며, 청교도 사상은 쉬지 않고 근면하게 경제행위를 통해 돈을 축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면 된다는 ‘직업 소명론’으로 발전한다. 근검절약을 통한 금욕주의와 절제를 통해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의 징표가 된다는 말이다.9)
그런데 이들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청렴한 부를 선용한 적이 있는가? 일종의 ‘청렴한 부의 사상’(청부론)이 청교도들을 통해 이데올로기적으로 확산되었지만, 그 결과는 노예제도와 식민주의와 더불어 너무도 참담한 것이었다. 존 로크(1632-1704)는 독실한 청교도의 배경에서 자랐고, 그의 인권과 민주주의 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1743-1826)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영국의 노예무역에 투자함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고, 미국의 본토 인디언들을 짐승 취급하고, 기독교인들이 정당한 전쟁을 통해 인디언들을 노예로 삼을 것을 주장한 사람이다.
베버가 말하는 논지는 청교도들의 ‘이중예정’ 사상과 ‘청부론’이 결국 교회와 사회를 ‘쇠창살 우리’에 가두어버릴 것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인도하고 돈을 축적하게 하며, 하나님의 섭리는 이제 개인의 경제적인 수익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여진다.10) 소위 미국판 기복신앙 혹은 ‘성공주의-번영신앙’은 이런 유형에서 나온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바울이나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의 위대한 원동력으로 작용한 ‘칭의론’이 인간의 선행과 경제적인 부가 구원의 조건이 되어버리는 청렴한 부자의 ‘거창한 이야기’로 기막히게 둔갑하고 만다.
사회학자로서 베버는 자본주의의 합리적인 정신과 청교도들의 예정사상과 경제윤리가 만나면서 서구의 합리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결국 이것이 사회를 ‘쇠창살 우리’에 갇히게 만드는 역사적인 동인이 되었음을 밝힌다. 베버는 우리 사회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면 목적을 추구하는 합리성이 아니라 가치지향의 합리성을 향해 우리의 삶과 윤리적인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버는 세계 내적인 금욕과 부의 추구를 통해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와 세계를 지배하던 전통적인 마법과 주술적인 족쇄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가치중립적으로 분석하지만, 그가 『개신교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마지막 장에서 내리는 결론은 너무도 절망적이고 암담하기 짝이 없다. 그의 결론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개혁을 통해 수도원의 담들이 무너지고 일상의 삶에서 신앙이 개인주의화되고, 합리적인 경제활동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청교도 성인인 리처드 박스터(Richard Baxter)의 어깨 위에 가벼운 외투처럼 걸쳐진 상품과 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순간에라도 즉시 던져버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가벼운 외투가 쇠창살 우리가 될 줄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기술 경제적인 조건이 기계적인 생산조건으로 전환되고, 이러한 생산의 메카니즘이 지배하는 세상에 태어난 개인들은 이 현실을 더 이상 피해갈 수가 없다. 청교도 지도자들의 어깨에 가볍게 걸쳐 입은 외투와 같은 부에 대한 관심이 결국 자본주의의 생산과 기술 관료화의 메카니즘에 먹혀버리고 만다.11)

베버가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로 찾는 것은 청교도 경제윤리나 예정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에 대한 혹독한 비판가로 등장하면서, 정치영역에서 정치를 당리당략의 이해타산이 아니라 ‘소명’으로 여길 줄 아는 민주적인 책임감을 가진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기대한다. 아니면 관료화 지배 사회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는 관료주의의 타락을 예방할 수 있는 책임적인 전문가들을 바란다. 더 나아가 청교도들이 양산한 영적 귀족주의와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연관된 예정사상과 맘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형제애적이며 공동체적인 상호성 내지 연대의 윤리를 예언자적인 종교윤리에서 찾는다.12)

칼뱅은 ‘막스 베버’와 ‘청교도주의’와는 너무도 다르다
칼뱅은 『기독교강요』 한 권으로 파악될 수 있는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다. 그가 남긴 성서주석은 보배에 속한다. 인간으로서 칼뱅의 실수와 결점을 피해갈 필요는 없지만, 성서에 대한 태도와 그가 남긴 주석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겸손과 깊은 영성은 우리 시대에 회복될 필요가 있다. 칼뱅주의의 원류로서 칼뱅은 베버의 자본주의 분석과 청교도들의 예정사상과는 상관이 없다. 칼뱅은 츠빙글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영국의 청교도들과 매우 껄끄러운 관계를 맺고 있었고, 오히려 에큐메니컬 교회의 스승으로서 루터의 입장에 선 멜란히톤이나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토머스 크랜머와 교류하고 있었다. 그러면 ‘복음의 총괄’에 속하는 예정의 은혜를 칼뱅은 어떻게 표현하는가?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청교도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예정을 말할 때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서 출발한 인간의 사변을 통해 추론하지 않는다. 적어도 칼뱅은 하나님의 은혜, 복음의 약속, 특수한 구원의 사건을 통해 예정을 말한다. ‘예정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경험하고 세례와 성례전,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예배의 삶에 참여하면서 주어지는 믿음의 확신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예정되었음을 신앙고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칼뱅에게 그리스도는 ‘예정의 거울’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는 달리, 보다 역사가 깊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예정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아니라 보다 칼뱅과 가깝게 은혜론에서 다룬다.
물론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은 영원한 결의를 통하여 구원받을 자와 유기될 자를 말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이 침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이 전제되어 있다. 구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에 속한다. 성령의 신비한 사역은 교회 외부에 있는 자들에게 역사하고, 심지어 유기된 자들도 선택된 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유기된 자들도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은혜로우신 분임을 믿는다.”(『기독교강요』 3. ii. 11)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분의 사랑 안에서 껴안기를 원하는 자를 정했고, 분노로 처벌할 자를 결정했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구원을 선포하셨다.”(『기독교강요』 3. xxiv. 17)
칭의(稱義)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하시는 은혜로부터 오는 것처럼(세례), 성화(聖化)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의 은혜로부터 오는 것이다.(성만찬) 우리는 칭의와 성화를 통해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말씀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지만, 나의 선행은 예정의 삼단논법과는 상관이 없다. 율법의 제3기능에 속하는 율법의 복음적 차원은 성도들을 무기력한 자들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활동적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사회정의에 헌신하는 자들로 만들어간다.
이런 점에서 칼뱅은 복음 전파를 위해 라틴아메리카 선교를 중요하게 여겼고,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했다. 예정이 칭의와 성화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주어지는 은혜의 사건이라면, 돈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수전노처럼 살든지, 아니면 ‘청렴한 부자’처럼 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루터가 혹독하게 고리대금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무질서와 비인간성을 비판했다면, 칼뱅 역시 그 비판의 강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단 차이가 있다면 칼뱅이 살았던 제네바의 초기 자본주의 사회는 수도원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루터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오히려 바르트가 표현한 것처럼 칼뱅은 성서를 한 손에, 그리고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시대적인 상황과 사회경제적인 문제에 깊이 몰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네바의 경제적인 삶이 성서의 예언자적인 정의와 구약의 희년경제와 나눔에 기초하기를 희망했고, 정당한 부의 축적과 더불어 사회적인 디아코니아를 통해 부의 분배를 고려했다. 이를 위해 칼뱅은 자본주의 시장의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해 때론 국가의 통제개입을 권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칼뱅의 태도는 유럽의 복지사회나 사회적인 휴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수전노처럼 사는 미국 청교도들의 세계 내적인 금욕주의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칼뱅주의의 원류로서 칼뱅은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분석과 청교도들의 예정사상과는 상관이 없다.
더욱이 칼뱅의 신학을 규정하는 것은 성령의 인격과 사역이다. 삼위일체 한 분 하나님으로서 성령은 말씀과 성례를 통해 교회를 이끌어가지만, 동시에 생명의 영으로서 성령은 세상에서 신비하게 활동한다. 칼뱅은 율법의 제1기능, 즉 자연법 사상을 무시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령의 사역 안에서 타종교와 타문화 가운데 사는 사람들의 입장을 인정한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불리어 예정된 자들이라면, 타종교나 문화에 속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 가운데 신비하게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의 은혜로 불릴 것이다. 결국 예정 가운데 선택된 자들은 남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배타주의자들이 아니라 타자를 향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복음을 흠 없이 전하는 ‘성령의 선교’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칼뱅의 예정론은 성령론의 심오한 표현이며, 기독교 선교의 근거가 된다. 바르트 역시 초기에 칼뱅의 예정론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말년에 칼뱅을 심오한 성령의 신학자로 재발견했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가 칼뱅의 예정론을 비판한 것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만일 베버가 칼뱅의 본래 사상을 숙고했다면 그의 혹독한 ‘쇠창살 우리’ 이론은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분파로 구성된 청교도들이 스스로를 칼뱅신학의 ‘정통파’ 후예로 자처하는 것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이들 대부분은 츠빙글리주의자들이었다. 우리가 칼뱅을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로의 복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의 해석의 역사에서 실종된 칼뱅의 성서주석이나 예정에 대한 심오한 이해, 특히 경제윤리에 대한 균형 잡인 민주적인 견해와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하는 부의 분배에 대한 디아코니아를 해석학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칼뱅을 다시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복을 통해서만 칼뱅은 오늘 칼뱅주의자들에게 원류로 등장한다. 이렇게 칼뱅을 칼뱅주의와 식민주의 기독교에 대한 내적 비판의 근거로서 말하는 이유는 우리의 ‘현재의 역사’를 쓰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트럼프로 대변되는 ‘칼뱅주의-청교도주의-성공주의’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도 제대로 지켜볼 일이다. 한 여러 권의 책과 논문을 썼다. 신약학 외에도 성서인문학과 성서문예학의 지류를 넓히려고 노력한다.

1)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trans. Talcott Parsons(Mineola, New York: Dover Publications, 2003), 17.
2) Lorenzo J. Greene, The Negro in Colonial New England, 1620-1776(N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42), 16.
3) Justo L. Gonzalez, The History of Christianity: The Reformation to the Present Day, rev. and updated. Vol. Ⅱ(NY: HarperCollins, 2010), 282-283.
4)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100.
5) 위의 책, 108.
6) 위의 책, 115.
7) 위의 책, 121.
8) 위의 책, 125.
9) 위의 책, 172.
10) 위의 책, 162.
11) 위의 책, 181.
12) Weber, “Politics as Vocation,” From Max Weber: Essays in Sociology, trans. and ed. H. H. Gerth and C. Wright Mill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8), 115; Weber, “Religious Rejections of the World and Their Directions,” From Max Weber, 330.


정승훈 | 미국 미네소타 루터신학대학 교수로 5년간 ‘급진적인 종교개혁’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지금은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에 소속된 루터교 신학대학원과 시카고 루터신학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조직신학과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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