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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계수님께 자기의 그릇이 아니고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처럼, 성장환경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자기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대화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언어란 미리 정해진 약속이고 공기(公器)여서 제 마음대로 뜻을 담아 쓸 수가 없지만 같은 그릇도 어떤 집에서는 밥그릇으로 쓰이고, 어떤 집에서는 국그릇으로 사용되듯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성장과정과 경험세계가 판이한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맨 먼저 부딪치는 곤란의 하나가 이 언어의 차이입니다.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런대로 작은 차이이고, 여러 단어의 조합에 의한 판단형식의 차이는 그것의 내용을 이루는 생각의 차이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든다면 아마 '책가방 끈이..

모리아/편지 2004.07.29

담 넘어 날아든 나비 한 마리

계수님께 "아! 나비다." 창가에 서 있던 친구의 놀라움에 찬 발견에 얼른 일손 놓고 달려갔습니다. 반짝반짝 희디흰 한 송이 꽃이 되어 새 나비 한 마리가 춘삼월 훈풍 속을 날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의 연약한 나비가 봄하늘에 날아오르기까지 겪었을 그 긴 '역사'에 대한 깨달음이 겨우내 잠자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작은 알이었던 시절부터 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 소중히 생명을 간직해왔던 고독과 적막의 밤을 견디고……, 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 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각고의 시절을 이기고……, 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오른 나비는, 그것이 비록 연약한 한 마리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 다가옵니다. 담 넘어 날아든 ..

모리아/편지 200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