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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종교적 과제: 교황 선출과정을 지켜보며>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이 5월 8일,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

ree610 2025. 5. 9. 10:07


<사회·정치·종교적 과제: 교황 선출과정을 지켜보며>

1.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톨릭교회의 교황이 2025년 5월 8일,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 교황 레오 14세 (Pope Leo XIV))가 선출되었다. 콘클라베 (conclave)과정과 선출 후 바티칸 광장에서 진행되는 예식을 지켜보면서 양가적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세계 다양한 종교들이 있는데, 교황 선출이 그 어느 종교도 받지 않는 ‘세계적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양가적 감정을 가지게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0년 서구 역사에서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색다른 변화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목도하고 상기하게 된 것뿐이다.

2. ①-(1): 첫째, ‘의상의 정치학 (politics of dress)’이다.
‘의상’이란 결코 중성적이지 않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 의상은 사회정치적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황과 추기경의 화려한 복장은 언제나 ‘대중’ 들과 구분되는 전적 권위의 상징의 의미를 지니고, 그 누구도 그 ‘신적 권위’를 부정하기 어렵게 한다. 반면 수녀들 (sister, nun)의 복장은 어떤가. 단색의 어두운색을 입으면서 그 어떤 사회정치적 ‘권위’도 부여받지 못한다. 개신교 지도자들의 복장과 전형적인 대치를 이룬다.

3. ①-(2): 매리 댈리(Mary Daly)는 바티칸 제2공의회에 직접 참석하면서 목도한 후, 1968년에 출판된 책 (<The Church and the Second Sex>)에서, ‘붉은 예복을 입고 행진하는 추기경들 뒤를 따르는 수녀들은, 마치 더 크고 강력한 힘을 뒤에서 따라가는 개미들처럼 보였다’고 한다. 화려한 장식과 색깔로 된 복장의 추기경과 정반대로 아무 장식 없는 검은 옷을 입은 수많은 수녀의 모습은 21세기 가톨릭교회의 미래에 수행해야 한 과제의 뿌리 깊은 근원을 시사한다.

4. ② -(1): 둘째, 대변의 정치학 (politics of representation)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133명의 추기경만이 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선출 과정에 참여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조건을 보면 ‘80세 이하의 추기경’이다. 세계 도처에서 가톨릭교회와 다양한 기구들이 운영되는데 그 자리에서 늘 실질적인 일들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 수도자 (수녀)’들은 ‘남성 성직자’의 수보다 월등하게 많다. 대략적 통계에 따르면, 남성 ‘성직자’는 46만여명, 여성 ‘수도자’는 59만여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성직자’라는 호칭에서 제외되는 여성 수도자들은 중요한 결정과정과 기구에서는 매우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남성중심적 세계의 ‘자연화’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한 종교의 모습에서 재생산되는 것이다.

5. ②-(2): 한 집단이나 사회의 ‘평등’의 수치를 측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바로 ‘결정 기구와 과정 (decision-making body and process)’을 보는 것이다. 그 기구와 과정에서 누가 ‘중심부’를 구성하고 있고, 반대로 누가 보이지 않는 ‘주변부’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조명하는 것이다. 대변의 정치학의 등장 초기에는 물론 젠더와 인종/피부색 등이 주요 분석적 틀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그 분석적 틀이 다층화되고 확장되어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는 여전히 이 ‘젠더’측면에서의 ‘대변의 정치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조차, 이제는 ‘지치고 사치스러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다수의 사람이 이 문제를 ‘자연적인 것’으로 ‘자연화 (naturalization)’하기 때문이다.

6. ③-(1): 셋째, 언어의 정치학 (Politics of language)이다.
가톨릭 교황으로 선출된 사람은 바티칸의 공식언어이자 가톨릭 교회의 일상 소통 언어인  ‘이탈리어’를 해야 한다. 새로 선출된 교황 리오에게 영어가 모국어이지만, 선출 직후의 첫 공식 메시지는 이탈리어와 스페인어를 사용 했다. 그 다음 중요한 언어는 ‘라틴어’다. 라틴어는 일상 세계에서 통용되는 소통언어가 아니지만, 여전히 서구문화에서 ‘권위와 전통’의 토대를 이루는 언어다. 내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일할 때도 중요한 식은 언제나 ‘라틴어’로 진행되는 ‘전통’이 여전히 고수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식에서는 물론, 내가 속한 대학 (Robinson College)에서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하이 테이블 밀(High Table Meal)’에서의 식사 기도도 학생이 나와서 라틴어로 한다. (참고로 캠브리지 대학교는 31개의 대학 (college)이 있는데, 미국의 '대학'과는 달리 이곳은 함께 거주하고 생활하는 공간이며, 공부하는 곳은 미국에서는 '교수'를 의미하는 ‘패컬티' (Faculty of Law-법학부, Faculty of Medicine-의학부, Faculty of Divinity-신학부 등)’라고 부른다.)

7. ③-(2):  ‘언어’는 권력관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언어들의 세계를 비행기에서의 좌석 구분 (일등석, 비지니스석, 삼등석)과 연결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가톨릭의 언어들은 우선 로망스어 (Romance Language,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과 게르만어 (Germanic Language, 영어, 독일어)다. 게르만어라고 범주화되는 영어에는 물론 라틴어 단어를 많이 흡수 했다. 그런데 한국어는 이러한 중심언어의 세계지형에 속하지 않는다. 언어로 지배되는 세계적 권력 구조에서 한국어는 오직 통역/번역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드러나는 주변부중의 주변부 언어인 것이다.

8. ③-(3): 교황 선출과정에서 사용되는 ‘검은 연기’와 ‘하얀 연기’는 우리의 무의식속에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주입시키곤 한다. 모든 부정적인 포스(force)를 ‘검은색’과 연결시키고, ‘백의의 천사’ 등과 같은 긍정적인 것을 ‘자연화’시킨다는 언어 세계에서의 ‘인종차별’의식을 재생산한다는 분석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다. 미국에 유학와서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 ‘영어속의 인종차별 (racism in English)’이라는 논문을 클래스에서 접하고서, 내게 충격적인 새로운 시각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9. 새로운 교황이 선출과는 결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다층적 문제들이 사소한 것 같은 한장의 사진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된다. ‘자연적인 것,’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탈자연화’하고 ‘탈사소화’하는 것이, 우리 주변에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는 다양한 모습의 크고 작은 차별과 배제의 고리를 하나씩 끊어내는 변화의 시작인 이유다.

10. 교황 레오는 빈곤층과 이민자들을 돕는 문제에 헌신해 온 지도자다. 그러나 여성의 사제 서품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입장은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모든 개혁은 상호의존적이다. 교황선출과정이 보여주는 문제들은 단지 ‘종교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문제들과 얽히고설켜 있는 ‘상호연결된 문제’다. 문제를 문제로 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크고 작은 변화의 가능성의 씨앗이 그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 강남순 교수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