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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치운다는 것 - 엄상익변호사 김수환 추기경의 오래된 글을 읽다가 참 솔직한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ree610 2025. 4. 6. 18:19

똥을 치운다는 것

- 엄상익변호사


김수환 추기경의 오래된 글을 읽다가 참 솔직한 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어느 무더운 한 여름이었다고 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바로 밑에서 고약한 냄새가 올라오더라는 것이다. 추기경은 다른 건 참아도 그 냄새는 정말 힘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었다. 위선을 부리지 않고 말하는 추기경의 솔직성에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아버지의 임종 때였다. 아버지의 똥을 처음으로 받아봤다. 싫었다. 평생 받아왔던 아버지의 사랑은 망각 되고 눈앞에 닥친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임종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효도란 별 게 아니었다. 부모의 똥을 치울 수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았다. 나는 나쁜 아들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나 같지 않은 좋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다. 변호사의 일을 하면서 그런 천사를 봤다. 그걸 소개하고 싶다.

중병에 걸려 혼자 죽어가던 기타리스트의 얘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제법 인기있는 그룹에서 활동하던 뮤지션이었다. 그가 누워있는데 그가 아는 여성 탈랜트가 문병을 왔다는 것이다. 평소에 호감을 가졌지만 감히 가까이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주연급 여성 탈랜트라고 자랑했었다. 똥이 묻은 옷을 입은 채 그가 누워있는 모습을 본 그녀는 따뜻한 물을 대야에 담아와 그의 밑을 닦아주더라고 했다. 그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이 얼핏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여성탈랜트가 밑을 닦아 주었던 기억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저세상으로 옮겨간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사랑일까 연민일까 동정일까.

오랫동안 한 노숙자단체와 인연을 맺었었다. 험한 사람들을 다루는 만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성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중에서 특히 까칠해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눈빛이 매섭고 사나운 느낌이 들었다.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곳에서 오랫동안 행정사무를 해 온 사람이 내게 넌지시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은 원래 서울역앞 창녀촌이 있던 양동에서 놀던 깡패였어요. 그런 사람이 노숙자들이 똥을 싼 옷들의 빨래까지 다 해준다니까요. 사람이 진짜로 바뀐 것 같아요.”

뭐가 그렇게 그를 변하게 했을까. 신기했다.

세상에서 지탄을 받는 절도범이 있었다. 평생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 수십년을 감옥에 살았다. 그를 지켜본 한 교도관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그 친구 옆 감방에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있었어요. 발작을 하고 똥을 싸고 그 똥을 사방 벽에 칠해놓기도 했죠. 교도관들도 그 방 앞에서 모두 고개를 돌렸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자청해 물이 든 통과 걸레를 가지고 그 감방으로 가서 그를 다 닦아주고 바닥과 벽에 묻은 똥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오는 겁니다. 인간이라는 게 참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업무 관계로 알게 된 육십대의 여성 뇌성마비 환자가 있다. 평생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의 장애였다. 가난하고 주위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 옆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그 여성은 중증 뇌성마비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더러 그 집에 찾아간 한 봉사자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가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여성이 매일 몸이 불편한 분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볼 일을 보게 하고 똥을 닦아주더라구요. 한번은 보니까 코에 똥이 묻어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활짝 웃으면서 일을 하는데 얼굴이 빛나고 행복해 보였어요. 대학을 나오고 앞길이 창창한 분이 어떻게 그런 헌신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가요. 천사가 아니면 못할 일이예요.”

다른 사람의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천사가 아닐까. 나는 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을까. 고정관념 때문은 아닐까. 맨손으로 직원들의 공용화장실 변기들을 청소하는 사장을 화면에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직원이 그를 따를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물을 담은 대야를 옆에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닦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허리에 두르고 있던 타올로 발의 물기를 없애준다. 예수는 자신이 하는 행동을 제자들이 따르라고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발에 낀 때만 닦아주라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오늘도 예수는 내 마음속에 던져져 있는 오물들을 치우고 계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