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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1~10 집요한 사랑, 하늘의 기쁨. 찬송 29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잃은 양과 열 드라크마의 비유 (눅 15:1-10)

ree610 2025. 3. 24. 20:34

누가복음 15:1 ~10
<집요한 사랑, 하늘의 기쁨>
찬송 297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Ⅰ. 잃은 양과 열 드라크마의 비유 (눅 15:1-10)

1. 세리와 죄인들이 나아옴(1)
유대인의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눅 14:25) 했을 때 그 무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승인을 받을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의 허망한 소망을 흔들 말씀이 그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셨다. 본문에 예수께 거절당하지나 않을까하는 낮고도 겸손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줄 필요성을 느끼셨다. 물론 세리들 중에는 약한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악한 자들로만 여겨졌다. 그것은 그들의 직무에 대한 유대 민족의 편견 때문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창기`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마 21:32). 본문에서와 다른 곳에서는 죄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온 것은 어떤 이들처럼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는 호기심 때문이거나 혹 다른 이들처럼 치료를 간청하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놀라운 강론을 듣고자 해서였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분개함(2)

그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하였다(2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부류의 사람과 허물없이 지내고 그들과 함께 먹는 것은 그의 인격의 존엄성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에게 설교하는 것을 체면상 정죄할 수 없었으므로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이것은 장로의 전통에 아주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었다)으로 그리스도를 비난했다.

3. 두 가지 비유(3-10)

  (1) 잃은 양의 비유:마태복음 18:12에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거기에는 성도들을 보존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죄인들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기쁨이 나타나 있다.

   1)사악한 길로 나아가는 죄인의 경우는 잃은 양, 즉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과 같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잃어버려지고, 무리에게서 잃어버려졌으며, 자신에게서 잃어버린 바 되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끝없이 방황하며, 끊임없이 맹수의 위협을 받아 놀랐고 공포에 떨며, 목자의 보호에서 벗어나 푸른 초장을 찾아헤맨다. 그는 양떼로 되돌아 오는 길을 스스로 찾을 수 없다.

   2)이 잃어버린 어린 양, 즉 방황하는 불쌍한 죄인들에 대해서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극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비록 그는 일백 마리의 양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한 마리도 잃지 않으신다. 그는 잃어버린 한 마리라도 쫓아가심으로 그 잃어버린 것을 찾고자 하시는 풍성한 사랑을 보여주신다.

   3)죄인들이 돌아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그는 즐거워 어깨에 메고 오신다. 그것을 찾을 소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기쁨은 더욱 크다. 그리고 그는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고 하신다. 비록 그것이 곁길로 나가 방황하던 양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나의…양`이라고 부르신 사실을 주목하라. 그는 그것을 스스로 찾으셨다.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6절).

  (2) 잃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그 은전을 찾는데에 많은 수고와 고통이 든다. 그 여인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발견하기까지 부지런히 찾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자신의 집으로 이끌기 위해 많은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즉 그는 우리에게 이르는 자신의 길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이르는 우리의 길을 비추기 위한 복음의 등불을 켜신다.  본문의 큰 기쁨은 은전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9절). 그것을 즐거워 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기뻐하기를 원한다. 은전을 찾은 놀라운 기쁨은 그녀를 당분간 일종의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즉 "찾았노라, 찾았노라"라는 말은 기쁨을 보여주는 언어이다.

  (3) 이 두 비유의 설명은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다(7,10절).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됨이 회개할 것 없는 많은 사람을 인함보다 더욱 크다.

   1)땅 위에서 죄인의 회개와 개심은 하늘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이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일지라도 회개에 이를 수 있다.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소망이 있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절망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하늘에는 항상 기쁨이 있다.

   2)`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얻은 기쁨이 더 크다. 즉, 찬양과 헌신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생활을 하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다른 유대인들로 인한 기쁨 보다는 그때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신 복음을 들은 이방 죄인들과 세리들의 회개로 인한 기쁨이 더욱 크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누가복음 15:10)

** 죄인 한 사람

* 세리와 죄인(15:1, 2)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심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율법은 죄인과 어울리기만 해도 부정해지므로 이를 금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근본 취지는 죄를 근절하기 위함이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을 통해 죄가 오히려 만연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회개의 기쁨(15:7-10)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합니다. 사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회개할 것 없는 의인이란 없습니다. 누군가 이러한 의인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회개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또한 죄인의 회개는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기쁨이 됩니다. 죄의 회개는 개인의 구원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을 가져오게 됩니다.
  회개는 먼저 마음을 돌이켜야 하고, 그 다음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시인해야 하며, 그 죄에 대한 값을 기꺼이 받기로 다짐하고, 마지막으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나 같은 죄인 하나를 위하여 하늘 보좌 버리시고 십자가 지신 그 사랑에 매여지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