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설교 자료

누가복음 12:49~59 <불을 던지러 왔노라> 찬송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3. 앞으로 맞게 될 고난을 말씀하심 (49-53)

ree610 2025. 3. 19. 12:18

누가복음 12:49~59
<불을 던지러 왔노라>
찬송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3. 앞으로 맞게 될 고난을 말씀하심 (49-53)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49절). 혹자는 이 말씀을 복음 전파, 성령 강림, 거룩한 불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이미 그 불은 붙은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연결되는 말씀으로 보아 이 불은 오히려 박해의 불로 이해되어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불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동자, 박해자들의 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는 그 불이 붙는 것을 허락하실 뿐이다. 박해받는 이들의 시련을 통해 그들을 단련시키는 불로서 허락하실 뿐인 것이다.

  (1) 그리스도 자신도 많은 수난도 당해야만 한다. 이미 붙은 이 불속으로 통과해야만 한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50절). 고난은 불과 물로 비유 되어진다(시 66:12).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고난을 모두 당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세례라 칭하시는데(마 20:22)이는 이스라엘이 바다 속에서 세례받았듯이 그 자신도 고난에 뿌림을 당하고나 적셔지고 또한 고난속에 잠겨져야 했기 때문이다 (고전 10:2).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고난을 예견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는 받게 될 고난을 이와 같이 부름으로 그 고난을 완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홍수가 아니라 세례인 것이다. "나는 결코 박해 속으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짝 잠기려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받게 될 고난을 이와 같이 부름으로 고난을 성스럽게 만들고 있다. 세례는 성스러운 의식이기 때문이다. 고난을 향한 그리스도의 발걸음이 어떠한가 보라.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그는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어야할 때를, 그리하여 자신의 고난으로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자취를 보게 될 때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가 참으로 기꺼이 받아들인 영혼의 산고였다. 이처럼 그의 마음은 인간의 구원과 구속을 바라고 있었다.

  (2)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또한 이러한 고난을 감당해야할 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51절). 이 말씀은 제자들이 그러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넌즈시 비춰 주고 있다. 즉, 복음이 전세계적으로 환영을 받게 되고, 온 민족이 너나없이 이구동성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적어도 그들에게 화평을 주실 것이라는 상상이었다.

Ⅴ. 때를 분변할 것을 가르치심 (눅 12:54-59)

   (1) 무리들은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길을 분변하고 이에따라 준비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54-57절). 그들은 날씨에는 민감한 자들이어서 바람이나 구름을 보고서도 소나기가 오리라는 것을, 혹은 심히 더우리라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다(54,55절). 이렇게 날씨의 변화에 대해서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것을 경고해 주신다. 그리고 자연의 징후를 예견하는 인간의 기술은 날로 발달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되어진 것을 보고서 앞으로 되어질 것을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경험의 유익함을 보라. 즉 눈여겨 봄으로써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보고 배우는 자는 현명하다.

   1)경험으로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사실을 자연의 기후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계시다.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아마도 그것이 처음에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 (왕상 18:44)이라면 소나기가 오리라고 말할 것이며 또한 과연 그러할 것이다. 남풍이 붐을 보면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55절). 그러나 자연 그 자체는 그러한 틀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므로 때때로 우리의 예측은 어긋난다.

   2)이 예로부터 당연히 추론되어져야 할 사실을 깨닫지 못함을 책망하신다(56절). "외식하는 자여 스스로 지혜있는 척하나 실지로는 그러하지 못하다.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즉 어찌하여 너희는 지금 바로 그 기회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지금 주어진 이 기회는 너희가 결코 열망하지 않았음에도 너희 앞에 주어진, 그리고 결코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그 기회인 것이다. 즉 지금이야 말로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2) 무리들은 너무 늦기 전에 아직 시간이 있을 때에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서둘러야 한다(58,59절). 이와는 다른 경우로 마태복음 5:25,26에서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시다.

   1)세상 일에 있으서도 우리가 대적할 수 없는 자와는 화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진다.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때에(58절). 만일 네가 감옥에 던지울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면 너희 스스로 서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이다.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2)우리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처리해야 한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다. 그는 정의와 힘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모든 심판의 권한을 위임받으신 그리스도는 재판관이 되신 분으로 우리는 그 앞에 속히 나아가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재판은 분명히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 재판장은 우리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그가 우리를 지옥이라는 옥에 던져 넣어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을 때가지`가두어 둘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갚지 못하리라. 그리스도의 고난은 짧았으나 그 고난의 대가는 인간들의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이것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적대자로서의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손 안으로 들어가기에 힘써야 하며, 이것은 길에서 해야 하는, 지금 눈 앞에 놓여진 가장 긴급한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이 바로 `길에서`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하고 믿음을 가짐으로써 지금까지 행해온 싸움을 더 늦기 전에 종식시켜야 할 그때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에 넘치는 선물을 주시려 뻗치신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자. 그때 우리에게 평화가 있게 될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누가복음 12:50)

** 주님이 받으실 세례

*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12:49-53)
불을 땅에 던지러 오셨습니다. 불이란 심판의 불이요, 성령의 불입니다.
또한 진리의 횃불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것은 모두 태우고 사람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식적이고 가시적인 화평을 주려고 죄악이 관영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속으로 곪아 터지고 불의한 구조 자체를 고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는 진리의 빛으로 세상에 분쟁을 일으키신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화평은 거짓 화평이요, 많은 사람의 희생을 토대로 한 형식적인 안정일 뿐이므로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영적인 투쟁이 필요합니다.

주님!
십자가로 향하여 가는 발걸음은 수치와 고난이 있으나 생명을 얻는 길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