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세아 11:1~11 <내가 어찌 너를>
찬송 570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Ⅱ. 진노 가운데 있는 자비 (호 11:8-12)
(1) 이스라엘 형편에 대한 하나님의 심중의 쟁론, 즉 공의와 자비 간에 쟁론이 벌어진다. 거기서 승리는 명백히 자비의 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갈등이 하나님 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중한 벌을 받아 마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인간의 방법에 따라 표현한 것이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1) 공의가 이스라엘에 대해 내놓은 제안:"어쩔 도리가 없는 아들처럼 에브라임을 포기해 버리라. 어린양을 사자에게 내주어 갈기갈기 찢기듯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내어 주라. 그들을 아드마같이 놓으며 스보임같이 두라." 이 두 도시는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당한 도시이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이와 같이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와 같이 그들을 다루신다 해도 전혀 그들에 대해 잘못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2) 이 제안에 대한 자비의 반대: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랴" 온유한 아버지가 스스로 다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못된 아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느냐 그래도 그는 내 아들이므로 나는 그렇게 할수 없느니라. 그들은 나에게 친근한 백성이었고 그들 중에 선한 자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고칠지도 모르느니라. 그런즉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으로 인하여 이상한 애정이 꿈틀거림을 의식하기라도 하는 양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오랜 쟁론 끝에 자비는 심판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기뻐한다(9절). 집행 유예가 더 오래 연장될 것이라고 선포되고 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그들은 진멸당하지 않고 고침을 받을 것이다. 이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 나는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인간의 분노는 사람을 지배하나 하나님은 친히 진노의 주인이시다. 그가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된다.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계획한 선을 그들이 받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격을 주실 것이다(10,11절). 저희가...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이것은 열 지파에 대한 언급으로 부분적으로 에스라 시대에 두 지파와 함께 돌아온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하여 성취되었지만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복음 교회에서 더욱 완전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들은 부름을 받고 모였다. 이 부름은 사자의 포효소리가 숲속의 모든 짐승들에게 미친 것과 같은 그러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복음이 그 마음에 이르게 된 자들은 떨며,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구원을 받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때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이것은 가나안 서편에 있는 이방인들의 부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복음이 퍼져 나간 것은 특히 그 길이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19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역사된 강한 표적과 기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때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면서 왔다. 그리고 육적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에 흩어졌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효과적으로 소집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11절). 저희가...떨며.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가 날 듯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매우 신속하게 올 것이다.
서로 매우 멀리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만날 것이며, 교회 안에서 연합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서 갖는 우리의 거룩한 떨림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고 우리를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그가 사자처럼 포효할 때 종들은 떨며 그에게서 도망하나 자녀들은 떨면서 그에게로 도망한다. 그들의 복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저희로 각 집에 머룰게 하리라(11절). 복음의 부름 가운데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은 복음 교회에서 처소와 일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편안히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저택을 갖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3)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의 반역은 앞에 언급된 약속의 대상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암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에브라임과 이스라엘로 말하면 그들은 거짓과 궤휼로 하나님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4) 유다의 순수성에 대한 훌륭한 칭찬은 열 지파의 패역을 가증시키는 요소가 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제외시키는 요소가 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제외시키고 유다에 대해서는 자비를 예비하신 이유를 나타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참조.호1:6,7). 유다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린다. 즉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존귀이며 주권이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의 길로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하늘에서 강한 권리를 갖게 된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1:8)
**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 하나님의 관심(11:1-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대한 관심으로 걸음을 가르치셨고, 저희를 고치셨으며, 사랑의 줄로 이끄셨고, 멍에를 벗겨 주셨으며, 먹을 것을 미리 예비해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고쳐 주시되 한치의 양보도 없이 보살펴 주심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 하나님의 징계하심(11:5-7)
순종치 않고 신실하지 않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가혹한 종살이로 징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칼로 공격을 받고, 빗장이 깨어져 버렸으며, 영혼의 눈이 멀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했기 때문이고, 계속해서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사악한 행위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주님! 나를 놓지않고 끝까지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나를 일으켜 주님께 돌이키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