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를 염려하며
10월 27일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연합예배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불러일으킬 파장을 생각해서, 짧게라도 저의 염려를 나눕니다.
모두가 잘 알듯이 광장의 맨 앞에 내걸린 이슈는 ‘성’입니다. 성은 오랜 세월 인류에게 기쁨과 극단적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는 성적 지향, 성정체성 같은 논의를 촉발하며 더욱 복잡해진 주제입니다. 저는 동성애에 분명히 반대하고 동성애자 차별에도 반대하며, 오늘날 성적 지향의 다양성과 간성의 문제, 그에 따른 성정체성 혼란이 우리 사회에 상존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성 정체성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라는 취지로 관련 법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사회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으로 우리나라가 그러한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일정 부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국의 그리스도인을 ‘동원’하여 광장에서 예배를 드리자는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1.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를 향해 이러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국 교회는 일반 시민사회에 이야기하기조차 부끄러운 다양한 문제로 비난받고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 세습, 교회 권력화와 사유화, 논문 표절, 학력 위조, 성범죄, 성적 타락, 배임과 횡령, 금권 선거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쌓여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신뢰도는 바닥을 친지 오래되었고, 스스로 자정할 능력을 상실한 지역 교회와 교단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향해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는 둘째로 치더라도, 신뢰도 바닥인 한국 교회가 대규모로 모여서 내는 목소리는 한국 사회가 고려해야 할 이슈로 여겨지기는커녕 이익집단의 정치적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큽니다.
2. 다음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해 각 지역 교회 내에서 얼마나 최소한도의 논의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전 성도가 제사장(만인제사장)임을 믿는 개신교는 이처럼 중대한 사안이 생기면 성경의 가르침을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놓고 성도들이 함께 충분히 학습하고 토론을 거칩니다. 하지만 그 같은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동성애‘만’을 죄악시하고, 성도들을 광장으로 동원하는 일은 성경적 교회론에 걸맞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단지 교화와 선도의 대상이며 이런 중요한 이슈는 담임목사와 당회 또는 교단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은연중에라도 믿고 있다면, 개신교 전통과 성경의 가르침에 신실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교회 일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해 집회 참여를 권하는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떠날 것이며, 반대로 일방적으로 집회 불참을 권하는 교회에서도 떠나는 성도들이 나올 것입니다.
3. 주최 측은 연합예배에 정치인이 등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예배만 드릴 것이므로 정치적 집회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전면에 내건 이슈가 이미 정치적 주제이며, 전국에서 수백만 명을 동원해 그 주제로 예배를 드리는 일 자체가 정치적 행위입니다. 광장에 나가서 개신교인의 결연한 의지를 사회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이미 정치적 행동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행동은 관련 이슈에 유보적 입장을 취하는 다수 시민에게 강력한 신호를 보낼 것입니다. 이미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고 심지어 혐오하는 이들은 이번 연합예배를 계기로 개신교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신교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을 결집시키고, 향후 입법 과정에도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연합예배는 이 이슈에 대한 공적 토론과 입법부에서의 설득 과정을 약화시키거나 생략하게 만들어서, 오히려 개신교에 불리한 입법화를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
4. 10월 27일은 종교개혁 기념 주일입니다. 이날은 사회 개혁이 아니라 교회 개혁을 위해 마르틴 루터가 주교회의에 95개조 반박문을 제출한 날입니다. 루터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심각한 문제를 토론으로 바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교회 갱신을 대중 운동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이루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 날에 우리 또한 한국 교회의 수많은 죄를 회개하고, 세상의 가치가 교회에 침투해 교회 됨을 훼손하는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 토론하고 기도하면서 교회 갱신의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광장에 나가 소리를 높이기보다는 부끄러움을 안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5. 한국 교회는 동성애와 현대 사회의 성적 혼란을 놓고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주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인간의 평등성을 강조하며 무조건 찬성하는 것도 모두 위험합니다. 그리고 토론과 함께, 우리가 믿는 가치를 문화와 법으로 구현할 방법을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시도해야 합니다. 물론 광장에서 정치적 집단행동을 해야 할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교회 영역에서,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적절한 모든 노력을 다했으나 문제가 풀리지 않고 더 심각해질 때, 교회는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동성애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를 망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까? 반성경적 가치를 지향하는 무신론과 유물론, 경쟁과 능력만을 앞세우는 성공 지상주의, 유권무죄를 옹호하는 법률 등 수많은 어려운 과제가 한국 사회 안에 버젓이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를 위해 싸워야 할 영역은 차고도 넘칩니다. 동성애만을 콕 찍어서 수많은 성도를 광장으로 동원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염려됩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저의 염려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 교회는 심각한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앞으로 10년이 교회 회복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는 그 귀중한 시간을 늘려주기는커녕 더 단축시킬 것 같아서 염려됩니다. 연합집회로 인해 교회는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고, 개신교는 시민의 공적이자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가나안 성도’는 더 많이 양산될 것이며, 일반 시민들에게 교회는 토론과 대화가 불가능한 이익집단이라는 인식만 더 확실하게 각인될 것입니다. 이 글을 쓴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제가 관여하고 있는 사역에 불편만 끼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 위기의 시기에 한국 교회를 지키며 세상에서 빛으로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성도들과 동지들을 위해 제 염려를 간략히 나눕니다.
- 김형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