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현장

보이치엨 팡고르(Wojciech Fangor), 한국인 어머니, 1951년

ree610 2024. 6. 21. 23:04

<2024.6.23.> - 6.25 북한선교 주일

보이치엨 팡고르(Wojciech Fangor), 한국인 어머니, 1951년

20세기 냉전 시기 최초의 전쟁이었던 6.25 한국전쟁을 소재로 피카소가 유명한 ‘한국의 학살’을 그렸을 때, 폴란드 화가 팡고르도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1949년 공산화된 폴란드에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화되기 전에는 입체파나 인상파 그림을 그리던 팡고르도 이후에는 당국의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 그림은 화가의 첫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한국전쟁 또한 잔인하고 참혹했습니다. 남‧북한과 이 전쟁에 개입한 나라들 합하여 사상자가 250만 명이나 되고 산업시설의 80%가 파괴되었습니다.

멀리 산 아랫마을 곳곳에서 연기가 치솟습니다. 논과 밭의 작물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마음껏 광합성 하여 결실을 준비할 때에 전쟁의 불길이 이 산하를 태웠습니다. 어제까지 살던 집 등 삶의 근거지가 산산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전쟁은 군인만 골라서 살상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죄 없는 선량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여성‧노약자들이 더욱 죽음에 노출되기 마련입니다.

노동에 단련된 튼튼한 사회주의 여성 느낌을 지닌 한국 어머니가 땅에 피를 쏟고는 쓰러져 있습니다. 이미 두 눈은 굳게 감겼고, 몸은 미동도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홀로 남겨두고 어떻게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까요! 아이는 죽은 엄마를 흔들어 봅니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나이지만 피 흘리며 쓰러진 엄마에게서 심각한 기운을 느꼈기에 그의 얼굴은 어둡고 투박합니다.

이념과 국제정치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시골의 모자도 전쟁의 광기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엄마와는 달리 전장의 포화를 피해 용케도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잔인한 상상이지만 엄마의 뒤를 따라갔을까.

전쟁의 두려운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태평함에 빠져 불행을 예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도적같이 찾아올 잔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