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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 기념사에 개탄한다

ree610 2023. 3. 2. 21:38

윤석열 3.1절 기념사에 대한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입장

3.1절 기념사에 개탄한다 – 윤석열 대통령은 독립운동가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려하는가

‘개탄’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제104주년 3.1절 기념사를 접한 소회다.
이런 기념사는 역대 3.1절 기념사에서 유례가 없다.
우선 과거사 언급이 사라졌다. 일제의 아시아 점령과 착취, 징용과 군 위안부 등 식민지 전쟁 범죄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일본인을 포함, 아시아인들을 비극으로 밀어 넣었던 역사가 생략됐다. 3.1운동의 배경이 사라진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역사적 의의가 사라진 것이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로 시작한다.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천명한 3.1운동으로 우리는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때문이다.
  제헌헌법 전문도 “이제 민주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라고 천명한 것이다. 기념사는 이 자랑스러운 완료형 역사를 도외시한다. 다만 이렇게 기술한다. “3.1만세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갈망했던 우리가 어떠한 세상을 염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완료가 아닌, 과정이다. 대통령에게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아직 미진한 어떤 것이다. 대통령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헌법 전문의 역사 인식과 크게 동떨어진 대목이다.

사라진 것을 대체한 것이 있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라는 언급이다. 8월 29일 경술국치일 기념사에서나 언급될 수 있는 이런 읊조림은 낯익다. 그 의도가 보인다. 한마디로 우리가 무능해서 나라를 잃고 고통받았다는 것이다. 강도 탓이 아니고, 일을 당할 만해서 강도가 들었다는 주장이다. 피해자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요설이다. 이완용, 윤치호 등 개인 영달을 위해 민족을 판 반역자들의 변명이었다.
군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한 일본 역사 수정주의자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국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문제는 기념사의 왜곡된 역사 인식에 그치지 않는다. 기념사는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고 언명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작년 일본 역사교과서 검정.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연행’과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일본 각의 결정의 반영이다. 독도에 대해서는 '일본 고유 영토' 또는 '한국이 불법 점거'라는 표현을 강화했다. 2018년 개정된 문부과학성 학습지도요령에 따른 것이다. 우리 교육부와 외교부가 각각 성명을 내고 일본의 시정조치를 요구한 것은 이런 왜곡과 도발의 심각성을 비판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또한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한다. 사도 광산은 1천 5백 명 이상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전쟁 범죄 현장이다.
이렇게 다면적으로 진행되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과 도발의 중심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세력이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을 선동해 왔다. 한반도 강점이라는 역사범죄를 부정하고,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우리 영토가 분명한 독도에 대해 적반하장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3개 안보문서 개정으로 사실상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킨 이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선제 공격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의 부활이다. 이는 한반도를 전쟁의 참화에 밀어 넣을 수 있는 위험한 도발이다. 동북아 평화를 매장하며 선린 우호의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퇴행적인 시도다. 그런데도 일본이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인가?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고 협력해서 우리와 세계시민의 자유 확대와 공동 번영에 책임있는 기여를 해야 합니다.”라는 대목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다. 자국 복리와 안정이 노골적으로 우선인 시대다. ‘보편적 가치’는 철 지난 유행가에서나 나오는 허울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연설 등에서 운운한 보편적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무시되는 이유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부딪히는 한반도, 진영을 뛰어넘어 우리 이익을 도모하는 지혜로운 처신이 갈급하다. 진영의 틀에 갇힌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개탄스러운 이유다. 미국과 일본에게 있어 한국은 그저 장기판의 졸로 전락할 위험에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시민모임 독립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드러난 왜곡된 역사 인식과 어리석은 현실 인식을 개탄한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역행하고 있다. 조상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일이 백주대낮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나라가 아니다. 일제 강점에 맞서 싸운 선열들의 피로 회복한 나라다. 미래지향과 선린우호의 한일관계도 이런 역사의 공유가 전제다. 일본의 역사왜곡과 도발을 방치하고 한쪽 진영에 스스로 귀순하는 무지몽매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매장하는 악행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다. 국민의 복리와 안정을 도모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공복’에 불과하다. 그 공복이 의무를 방기하고 오히려
주인의 이익을 해치고 위험에 빠뜨릴 때, 받아들여야 하는 후과는 자명하다. 일에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엄중한 시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불러온 파장이다. 길가의 돌들이 소리치고, 무덤 속 독립운동가들이 일어나려 한다. 역사의 경고다.

2023년 3월 2일

시민모임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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