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크리스차이나' 30돌 축제
아나키스트의 해방구 . 서른돌, 잔치는 시작됐다
지난달 26일 밤 덴마크 코펜하겐의 젊은이들이 시내 중심부 바스만스토로에데에 있는 해방구 크리스차이나로 몰려들었다. 2차대전 독일의 병참기지였던 군대막사를 30년 전 점거해 정부와 시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마침내 '해방촌'으로 만든 지 30돌을 맞는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크리스차이나는 초입부터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공동체다운 상징물들이 눈길을 끈다. 패권주의의 상징을 파괴하는 듯한 '폭파된 자유의 여신상'과 그뒤 낙원을 그린 벽화가 펼쳐져 있다.
크리스차이나는 들머리부터 젊은이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상당수가 한 손에 술을 들거나 마리화나를 입에 물고 있다. 가로등 불빛조차도 거의 없는 어둠 속에서 으스름 달빛마저 마리화나 연기에 가릴 정도다.
마약을 파는 조그만 상점들이 즐비한 푸셔거리를 지나 마치 한국 전통사찰 탑을 본뜬 듯한 탑이 서 있는 우드스탁에선 아름다운 여인의 나체쇼가 펼쳐진다.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알코올을 들이켠 젊은이들이 흥겨움에 젖을 뿐 알몸의 여인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정도'를 지키는 것도 자못 신기했다.
이런 볼거리는 이 골목 저 골목, 모든 장소에서 넘쳐난다. '평화의 호' 건물에서도, 록마스키넨 강당에서도, 창고 같은 머쉬인홀에서도 공연과 춤판이 벌어진다. 10여곳에서 동시 다발적인 공연이 진행된다. 레스토랑과 바에서도 각기 작은 공연들이 펼쳐진다. 어림잡아 이날 10만여명의 젊은이가 세계에서 몰려든 것 같다. 추억을 잊지 못한 듯 유모차를 끌고 이곳에 온 아줌마들과 중년 남녀들도 적지 않았다.
낯선 이들에겐 이런 분위기가 두렵다. 그들과 몸을 부딪쳐 싸움이라도 나지 않을지. 그러나 그들은 설사 발을 밟아도 오히려 어깨를 두드려주며, 악수를 청하고, 웃어준다.
다만 이곳의 불문율을 깰 때는 충고가 어김없이 이어진다. 마약을 파는 푸셔거리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자 한 여자가 "조금 뒤에 당신 손에서 카메라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다니거나 차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안 된다. 이제 크리스차이나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호기심과 해방구에 대한 동경으로 하루 수천명이 찾는 코펜하겐의 명물이 됐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주민 900명이 각자의 집을 갖고 마을을 이뤄 사는 삶터일 뿐이다. 이들은 마리화나 등 약한 마약은 허용하지만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강성 마약을 하는 사람은 추방한다. 거주자들도, 방문자들도 대부분 크리스차이나의 규율에 따른다.
비록 마약 사용의 해방구이지만, 외부인에 대해 무척 호의적이고 따듯하다. 크리스마스 때면 2천명의 불우이웃에게 음식을 대접한다. 이날도 사복경찰들이 오자 크리스차이나 사람들은 이들에게 장미꽃을 가슴에 꽂아주며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혼자 야외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덴마크 청년 토마스 데니쉬가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차이나를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고, 불법적인 마약을 하는 곳이라고 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끔 찾아와 내 삶의 긴장을 해소시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내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코펜하겐 (덴마크)/ 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10월 7일자)
크리스차이나 안내인 페터 리소술과 마약 광란의 밤 그러나 사건사고는 없지요지난달 27일 낮 크리스차이나를 찾았다. 광란의 밤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그런데 초입부터 광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어느 곳에서도 술병이나 쓰레기는 눈에 띄지 않았다. "사건요? 어떤 일도 없었어요." 크리스차이나에서 10년째 살며 이 마을 안내인으로도 활동하는 페터 리소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마약과 알코올을 즐기는 현장에서 단 한건의 사고조차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믿기지 않았다. 3개월 전부터 이 행사를 기획해온 이들은 처음부터 젊은이들의 자율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듯했다."2차대전 때 독일군들이 이곳에서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이후 방치돼 버려 가장 오염된 곳이었죠. 건물은 여전히 그때 건물들이 많지만 이제 이곳은 가장 환경친화적인 곳이 되었지요."지도자 없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단지 모임의 대화를 통해서만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데 개인의 자유를 '위험'스럽게 보는 바깥 세상의 시각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이들은 이렇게 보여주고 있다.조현 기자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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