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브루더호프 공동체'에 이어지는 한국인 발길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삶을 찾고 싶어요'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남동부로 1시간 30분쯤 달리면 나오는 로버트브리지역 인근의 다벨 브루더호프(형제의 집)의 입구에 들어서면 늘 아이들이 먼저 눈에 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이 비스듬한 초원 아래쪽 밭에서 열심히 옥수수를 따고, 옥수수를 나른다. 이제 겨우 7~8살 정도로 보이는 형 누나들이 옥수수를 따면 2~3살 아이들은 옥수수를 까면서 논다.
자녀의 탄생을 "너무도 신성한 기적이 일어났다"고 받아들이며 아이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이곳에서 자녀 사랑은 어른들과의 분리가 아니라 모든 공동체의 삶에 아이들도 다함께 동참시키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부터 80~90살 노인들과 지체 장애아들까지 함께 즐겁게 놀리는 손놀림을 보면 어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어울려 노동에 장단을 맞추게 된다.
2년6개월 만에 찾은 다벨 브루더호프의 이런 모습은 다시 봐도 신선하다. 머리엔 스카프를 두른 채 누구에게나 미소로 대하는 여자들, 나무차를 타고 공동체 안을 누비며 손을 흔드는 어린아이들, 무소유공동체답게 소박한 옷차림으로 푸른 잔디밭을 산책하는 가족들도 여전하다.
다만 브루더호프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한국인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말만이 아닌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을 실천하는 곳으로 1990년대 초 한국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브루더호프 공동체는 (한겨레)의 '새천년, 새세기를 말한다' 기획의 하나로 보도(99년 3월8일 11면)된 뒤 한국인 방문 러시를 이뤘다.
지난달 20일엔 장기간 이곳에 살고 있는 7명 외에도 경남 밀양에서 장애인 공동체를 준비하는 6명과 환경운동가 11명이 단기로 이 마을을 방문중이었다. 방문자를 담당하는 데이비드 힐은 "99년부터 방문자가 급증해 지난 봄엔 이 마을 안에서 어린이용 목재 장난감과 장애인 기구를 만드는 공장에 한국인 방문자 30여명이 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브루더호프 마을은 테레사 수녀도 "가장 순결한 사람들"이라고 칭송할 만큼 영성가들 사이에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외부 방문자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방문자들에게 숙식비를 받을 만큼 세속적이지도 못한 채 250명이 함께 식사하고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탓에 이런 방문 러시를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마을엔 영국인 방문자들보다 오히려 한국인 방문자가 많을 정도다.
왜 한국인들이 이 머나먼 마을로 밀려오는 것일까.
"한국인들은 현재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서구적인 산업화 속에서 뭔가 가슴에서 빠져나가버린 듯이 허전해 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오는 이유를 좀더 깊이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9월 부인 마릴린, 마을 처녀 샤브리나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6개월간 머물렀던 바우만은 "한국인들은 지금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그것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다. 부자나 거지나 일단 들어오면 누구나 무소유로 모든 조건이 같아지는 이곳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이들. 방문자들은 이들을 통해 내세구원이나 선교의 구호 속에서 잃어버린 가르침대로의 '삶'을 찾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금방 떠나기도 한다. 성경공부나 선교에 열성을 보이거나 내세구원을 위한 설교도 없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선교'와 무관하게 사랑을 베풀고, 다른 종교인과도 교류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브루더호프 사람들은 방문자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거나, 말로 답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공동체의 모델이라고 여기지만, 이 마을은 완벽한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일 뿐"이다.
지난 97년 8개월간 이곳에 살다가 6개월전 다시 부인, 어린 두아이와 함께 이곳에 영원히 살기 위해 온 오정환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목사님은 설교를 훌륭히 잘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내겐 삶이 필요했다. 난 설교도 성경공부도 없지만 성경대로 살아가는 이런 삶이 너무도 그리웠다."
영국 다벨 브루더호프/글.사진 조현 기자 cho@hani.co.kr
(한겨레신문 2001년 10월 5일자)
브루더호프마을의 유일한 '금언'"남이 없는 곳에서 절대 험담하지 말라"브루더호프마을에는 방마다 걸려 있는 유일한 금언이 있다. 지금은 세계 10개 마을이 있는 브루더호프 마을을 70여년 전 설립한 에버하트 아놀드가 남긴 말로, 절대 남이 없는 곳에서 험담하지 말고, 할 말을 상대에게 직접 솔직히 하라는 것이다.사랑의 법 이외에는 어떤 법도 없다. 사랑이란 형제자매들이 우리곁에 있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에게 화를 낼 수 있단 말인가.사랑의 말을 통해 우리는 형제 자매들에게 기쁨을 표현한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에 대해 짜증내며 험담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경우에도 본인이 없는 데서 형제나 자매를 노골적으로 비방하거나 개인적인 개성에 대해 빗대어서라도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가족에게 하는 험담도 예외는 아니다.이런 침묵의 규율 없이는 서로간의 충실한 신뢰의 관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코 공동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단 한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에게 직접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형제의 약점 때문에 우리안에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날 때 우리가 그 형제에게 마땅히 해야 할 자발적인 형제애적 섬김이다.상대방에게 직접 솔직히 말한다면 상대방이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결국 서로간의 우정을 더 깊게 해줄 것이다.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출판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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