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 S. 루이스의 저서
'정본 C.S.루이스 클레식' 베스트 컬렉션 특별보급판. 언제 어디서나 휴대하기 간편한 사이즈로 제작하였다. <순전한 기독교>는 본래 방송 강연으로 발표된 것을 묶은 책으로, 여러 교파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인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고백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하나님에 대하여, 하나님이 하는 일에 대하여, 그리고 그 결과 우리 삶에 벌어질 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저자소개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잭 Jack"이라 불린 그의 본명은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이다.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3년 먼저 태어난 형 워런 Warren은 역사학자였고 그의 평생에 걸친 절친한 친구였다.) 9살 때 어머니 플로라 Flora 여사를 암으로 여읜 루이스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커크패트릭 W. T. Kirkpatrick이라는 가정 교사에게로 보내졌는데, 엄격한 이성주의적 무신론자였던 그에게서 엄밀한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본래 성공회 배경을 가졌던 루이스는 이 무렵 확고한 무신론자가 된다.
어린 루이스는 사람을 닮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고, 비트릭 포터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동물 이야기를 상상해서 글로 쓰기도 하였다. 루이스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들이 다스리는 '복센 세계'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였다. 루이스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루이스가 읽지 않은 책 한권 찾기는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루이스가 십대 소년일 때, '노던니스(Northernness)'라는 스칸디나비아 고전 문학의 시나 전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전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루이스는 '기쁨(joy)'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루이스는 자연에 대한 애정도 컸다. 루이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북쪽(the North) 이야기였고, 북쪽 이야기는 곧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십대 때 쓴 글은 복센 이야기로부터 멀어졌고, 북유럽 신화나 자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담은 서사시나 오페라 같은 다른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에게 배우면서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과 추론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1916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이듬해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으며,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엉덩이에 영국군 포탄의 파편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요양캠프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한다. 루이스는 장교훈련 기간 중 알게 된 패디Paddy라는 친구가 전사하자, 약속한 대로 그의 어머니 무어 부인 Mrs. Moore을 자신이 평생 보살폈다.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던 그는 1923년 옥스퍼드를 세 부문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했으며, 1925년부터 모들린 대학 Magdalen College에서 30여 년간 영어와 문학을 가르친다. 1954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무렵 『실락원 서문 A Preface to "Paradise Lost"』 『사랑의 알레고리 The Allegory of Love』 등 뛰어난 영문학 학술서적들을 여러 권 저술한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던 루이스는,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 J. R. R. Tolkien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준다.
루이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던 조이 Joy Gresham이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그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시인이며,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그녀에게 ?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조이와 결혼을 한다. 이때 조이는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음이 뒤늦게 알려지고,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A Grief Observed』(홍성사 역간 예정)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나니아 연대기』는 그의 유일한 판타지 소설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성을 얻는 주제들로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나니아 연대기』 중 「마지막 전투」는 이 연대기를 대표하여 카네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다룬 『순전한 기독교』, '악마의 편지'라는 우화 기법을 통해 정작 인간의 삶과 본질을 새로운 각도로 보여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이상 홍성사)이외에도 『고통의 문제』,『예기치 못한 기쁨』,『네 가지 사랑』,『기독교적 숙고』,『당신의 벗, 루이스』,『순례자의 귀향』등이 있다.
독서 후기
C.S. 루이스는 너무 유명한 기독교 작가이자 변증가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 대해 따로 언급할 것은 없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인 만큼, 그리고 평균보다 탁월한 수준의 지성적 소양을 가진 사람인 만큼 이 책에서 그의 논리 전개는 상당히 유려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지 휫필드나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드, 찰스 피니 등의 역사적 신앙의 거인들의 저술을 읽을 때에 받는 강렬한 영적인 빛을 발견하기는 조금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같은 20세기 사람이면서 마지막 선지자라 불린 토저의 책을 읽어보고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한 기독교>에서 C.S. 루이스가 말하고 있는 것의 핵심은 책의 4부(마지막 파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서 작가는 전적으로 새생명을 얻는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출생한다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중생(re-birth)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중생이 도덕적으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반적인 개선과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지 재치 있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C.S. 루이스는 중생의 본질을 약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는 거듭남에 대한 인식, 정확히는 그리스도의 생명(성령)이 임하시는 순간에 대한 자각이 없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그리고 본성적 변화와 점진적 성화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발언을 많이 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카톨릭이 갈라진 핵심 교리에 대해 헷갈리게 하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조직신학적인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새신자들이 읽으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4부의 '대가를 계산하기' 장에서 그가 말한 바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 아주 매력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해당 장에서 C.S.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마음 속에 일으키기 시작한 변화를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서 그러한 급격한, 그리고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은 수준으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만약 동의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변화의 수준을 인간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주는 선에서 멈추시지 않으시고, 온전히 새사람이 될 때까지 이끌어가신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C.S. 루이스는 지성인 답게 상당히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고, 때문에 그가 전하는 메세지에 비해 상당히 신사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18세기 영국과 미국을 뒤흔들었던 그의 선조들과 비교해본다면 거듭남의 경험은 좀 모호하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회심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인 노력만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고 믿으며, 또 그러한 부분이 글 속에서 자주 비춰지지만, 안타깝게도 선명하게 제시하는 정도는 아니다. 경험의 한계인 듯 하다.
그의 글에서 일상적인 차원에서 교훈적으로 남는 것 한 가지가 있다. 자선에 대한 부분이다. 그는 자선으로 인해 생활에 불편함을 겪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 자선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제어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즉 금욕으로 인한 영적 싸움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에베소서 말씀 중 새롭게 눈에 들어온 말씀이 있다.
엡 5:28
도덕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이 부분에 대해 그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교만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타인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경쟁적 마음이고, 그것이 악의 본성에 속한다는 논지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도와 영적인 분투 속에서 뼈가 저리도록 느끼고 느꼈던 것이다.
인간의 성품과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그의 많은 설명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동일하게 느낀 바 있으며, 많은 부분 공감한다. 그의 약간은 위험한 조직신학적 입장을 제외한다면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내어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유려한 글솜씨와 논지 전개에 대해서는 감탄할만 하다는 생각을 한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을 때에도 생각했지만, 확실히 C.S. 루이스는 인간 심리를 꽤뚫는 통찰이 강하다. 그 부분은 정말이지 부럽다.
[출처]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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