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독교 에큐메니컬 운동사에서 거장의 한 분인 강문규(姜汶奎) 선생의 유고집 『한반도 평화통일과 에큐메니컬 운동』이 지난해 12월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판되었다. 2013년 12월에 소천한 저자의 유고들을 모아 그의 장녀 강혜정 씨가 정리해서 엮은 책이다. 한국YMCA에서 40여 년 몸담고, 세계학생기독교연맹(이하 WSCF),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 아시아교회협의회(이하 CCA),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이하 KNCC) 등 세계 기독교 에큐메니컬 운동 기관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며 일생을 기독교 사회운동에 헌신해온 강문규 선생의 삶은 시민사회운동과 에큐메니컬 운동이라는 두 분야의 운동에 집중된 일생이었다. 그는 학자나 교수가 아니었지만, 이 두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실천운동가였으며, 또한 탁월한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가 오랫동안 기독교계와 시민사회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해온 것은, 특히 한국의 반민주적이며 억압적인 시대상황에서 개혁적인 시민운동과 기독교 에큐메니컬 운동에 기여한 업적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20여 년간 봉직한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직에서 65세에 정년퇴임한 뒤에도 지구촌나눔운동, 기독교사회발전운동, 새마을운동 등의 이사장과 회장직을 맡으며, 83세에 소천할 때까지 사회운동 현장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저술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다. 결국 그의 사후에 부인(김숙자 교수)과 장녀(강혜정)의 정성 어린 노력으로 2014년 12월, 1주기에 맞춰 유고집 『시민사회운동의 길』(아르케, 2014)이 출판되었으며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련된 유고들이 이번 3주기에 출판된 것이다. 『한반도 평화통일과 에큐메니컬 운동』은 저자가 1980년대 이후 기독교 평화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주로 「기독교사상」과 기독교방송(CBS)을 통해 발표한 글과 강연문 중에서 뽑은 것이다. 특히 제1부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을 위한 교회의 노력”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 KNCC가 과감하게 금기를 깨고 북한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해 국가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 시기에 발표한 글들이 모아져 있다. 필자는 이 시기에 저자와 함께 KNCC 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상당 기간 정책연구 소위원회에도 함께 참여해왔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과 역할을 잘 알고 있다. 저자가 이 시기에 발표한 글들은 저자 개인의 생각일 뿐 아니라, KNCC를 중심으로 전개된 개혁적인 평화통일운동의 지도부인 통일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채택된 원칙과 전략을 핵심적으로 진술한 글들이기 때문에 교회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기록물이라고 본다. 기독교 평화통일운동에서 특히 강문규 선생의 중요한 역할은 WCC를 비롯한 에큐메니컬 국제기구들과의 연대활동이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오랫동안 WCC 국제위원회(WCC-CCIA)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강문규 선생은 이 시기에 전개된 한국 기독교의 민주화, 인권운동이나 평화통일운동을 국제 기독교 기관들과 연계시킴으로 시너지 효과를 얻어내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일에는 강문규 선생과 더불어 CCA 총무였던 박상증 목사, KNCC 부총무와 교육원장으로 일하다가 WCC의 교회와발전위원회(CCPD) 국장으로 활동한 오재식 선생 등 이 세 분의 협동적 조정자 역할이 큰 힘을 발휘했다. 에큐메니컬 삼총사로 알려진 박상증 목사, 오재식 선생과 함께 운동의 지도자, 기관차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1980년대 남북한 교회의 만남과 협력에 주춧돌을 놓은 WCC 동북아시아평화회의, 일명 도잔소 회의(1984)와 글리온 회의(1986, 1988)는 당시의 5공화국 독재정치 상황에서 세계교회의 지원과 협력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를 설득하고 꾸려나가는 데 에큐메니컬 삼총사, 특히 강문규 선생의 외교적 노력이 크게 공헌하였다. 여기엔 물론 1980년대 KNCC 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통일 논의와 전략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많은 논란과 함께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지만, WCC와 CCA를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운동을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의 이슈와 과제로 등장시킨 공로가 크다. 이 유고집 제1부의 10개 논문은 1980-90년대의 기독교 평화통일운동의 문제의식과 전개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한 글들로, 이 운동을 주도한 한 인물의 산 증언이면서 사료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한반도의 분단과 대결, 전쟁과 갈등을 극복하며 평화체제와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저자의 논문들은 학자나 전문가들 못지않게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려는 전략적 고민 또한 엿볼 수 있다. 보수 교단들과 정보부가 용공 좌익으로 매도하는 기독교 평화통일운동, 에큐메니컬 운동을 기독교 복음의 정신으로 변호하며 살려나가려는 저자의 신앙과 의지도 읽어볼 수 있다. 그는 여러 글에서 특히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의 5대 원칙인 민족 자주, 평화 우선, 신뢰와 교류, 인도주의, 민중 참여의 원칙을 강조하며, 기독교 통일운동의 철학과 기본 신념을 설파하고 있다. 제2부 “함께 생각하는 화해와 통일의 길”에는 저자가 1995-96년 CBS에서 연속으로 방송한 프로그램 <통일을 염원하는 새 아침>의 원고 18편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육필로 쓰인 원고들을 부인 김숙자 교수가 일일이 컴퓨터에 옮겨 정리했다고 한다. 긴 논문이 아니고 칼럼 같은 방송 원고이기 때문에, 시사 해설이나 설교문 같은 냄새가 풍긴다.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통일운동의 해설과 변호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짧은 글들이지만 호소력 있게 본인의 신앙과 신념을 전달해주고 있다. 결코 교조적으로 흐르지 않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려는 저자의 고심과 노력을 느끼게 한다. 제3부 “한국교회의 좌표와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본질과 실천 방향에 대한 여러 좌담과 대담이 기록되어 있으며, 한국 기독교의 교회갱신과 사회개혁운동의 역사와 배경, 발전 방향에 관해 언급한 내용과 신앙고백적 논평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필자를 포함하여 강원용, 박상증, 김용복, 박종화 등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과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사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사실 한국 기독교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사는 체계적으로 정리되거나 서술된 저서, 논문이 아직 없다. 강원용, 박상증, 오재식 등의 저술이나 회고담 속에 단편적으로만 기술되어 있을 뿐이다. 언젠가는 체계적인 저술이나 연구 논문들이 나오겠지만, 이를 위해서도 운동에 참여했던 원로들의 증언과 기록이 중요한 자료가 될 텐데, 아직은 너무 미약하다. 한국 기독교와 교회들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비판, 소위 “용공이다”, “신신학이다”, “좌익이다”라는 오해를 해소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니, 이를 위해서도 에큐메니컬 운동의 원로, 선배들의 증언과 기록은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자료가 되리라 믿는다. 이와 함께 강문규 선생이 80세가 되면서 쓴 마지막 저작 『나의 에큐메니컬 운동 반세기‐미완의 여정』(대한기독교서회)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갱신과 연합, 사회참여와 개혁, 하나님의 선교와 같은 것을 목표로 한 기독교 운동의 총체이지만, 사실 이를 주도한 기관이나 인물의 역사나 관계를 알지 못하면 종잡기가 어렵다. 이 자서전은 저자 본인의 삶의 역정을 기록한 책이기도 하지만, YMCA, WSCF, WCC, CCA, KNCC 등 에큐메니컬 기관에서 일한 여러 활동의 기록뿐 아니라, 함께 일한 분들과의 인연과 협력이 꽤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재미있는 사건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 에큐메니컬 운동 1세대가 거의 돌아가시고 2세대도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어 후진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역사적 서술과 기록이 필요한 때에, 강문규 유고집은 여기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소중한 출판물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삼열 | 서울대학교와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철학,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유네스코 한국위 사무총장, 아태 국제이해 교육원장, 한국철학회장, WCC 중앙위원과 실행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기독교사회발전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평화의 철학과 통일의 실천』, 『기독교와 사회이념』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