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립보서 4:10~23 능하신 주 안에서!
찬송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Ⅱ.빌립보 성도들의 친절에 대한 바울의 감사 (빌 4:10-19)
[1]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이전에 그에게 베풀었던 친절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15,16절). 바울은 감사하는 정신을 가졌다. 이 서신이 읽혀지는 곳은 어디서건 그들이 바울에게 베푼 이 일이 그들에 대한 기념으로 말하여지게 될 것이다. 물론 당시에 보답이 있지는 않았다.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5절).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있었을 때뿐만 아니라 그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도 그들은 주고받는 일에 참예했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어떤 교회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했던 일이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유일하게 올바르고도 자비로운 성도들이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16절). 그들이 보냈던 것들은 그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2] 바울은 최근의 그들의 소홀함을 이해해 주고 있다(10절). 마치 겨울 내내 완전히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봄에 다시 살아나듯이 바울에 대한 그들의 배려가 이제 다시 싹이 트고 있었다. 그는 그들을 이해해 주고 있다.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즉, 만일 적당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들은 온전히 행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3] 바울은 그들의 현재의 베풂에 대해 칭찬하고 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다(14절).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동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의 친구들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다.(10절)
[4]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11절). 이는 곧 바울이 궁핍을 겪었기 때문이거나 혹은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궁핍을 겪었기 때문이 아님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지극히 적은 것으로 만족했으며 또 그것이 그를 만족케 했던 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가 궁핍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님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에게 공급해 주실 것을 믿었으며 따라서 만족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겠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서와 같이 그에게 있어서도 고난과 역경속에서 경험하여 배울 필요가 있는 교훈이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12절) 이와 같이 삶의 모든 여건에 사진을 순응시키는 것은 은혜에서 비롯된 특별한 생활의 태도이다. 우리가 고난의 여건에 순응하는 것 이것은 비천에 처할 줄 아는 것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 우리는 모든 여건 속에서 자족하도록 그의 힘이 우리를 가르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바울 사도는 마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힘에 대해서 자랑한 것처럼 보인다. 12절의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에서 그렇게 느끼기가 쉽게 그러나 13절에서 그는 모든 찬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고 있다. 즉 그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은 그의 끊임없이 새롭게 공급되는 힘에 의해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17절). 여기서 바울이 뜻하는 바는 "너희의 친절에 내가 기뻐하는 것은 그것이 너희들에게 유익을 더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의 의미였던 것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18절). 이는 곧 "풍족한 사람이 무엇을 더 바라리요"라는 말이다.
[5]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빌립보 성도들의 친절을 열납하셨으며 또 갚아 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리라는 확신은 18절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그것은 감사의 제물이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에게 그의 궁핍을 채워 준 것이 된 이상으로 하나님에게는 그들에 베푸신 은혜의 결실이라고 하는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 주실 것에 대하여는 19절 말씀이 보여주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Ⅲ.찬양과 인사와 축복으로 서신을 끝맺음 (빌 4:20-23)
[1] 하나님을 찬양함 :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20절).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버지로 여겨져야 한다. 그것은 복음 전파에서의 독특한 명칭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과 두려움 아래서 하나님을 압제자로서가 아닌 우리를 불쌍히 여기며 돕고자 하시는 아버지로서 볼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그에게서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에게 모든 찬양을 드려야 한다. 또한 우리의 찬양은 끊임이 없고 변함없는 것이어야만 한다. 즉 그것은 `세세 무궁토록 돌려지는 영광`이어야만 한다.
[2] 빌립보에 있는 자기 친구들에 대한 인사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21절). 바울은 모든 선한 그리스도 님들에 대하여 온화한 애정을 가졌다.
[3]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문안함 :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 이니라(21,22절). `가이사집 사람 중 몇` 이란 황제의 궁정에 속해 있는 자들 중 회심한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다. 가이사의 집에 성도들이 있었다.
[4] 일상적인 사도의 축복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23절).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빌립보서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내가 자족할 수 있는 이유
* 자족의 비결(4:13)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이는 모든 일에 있어 살아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 성도들의 다른 명칭(4:21, 22)
성경에서는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 (마5:1), 그리스도의 형제(요20:17), 하나님의 자녀(요1:12,13), 하나님의 후사(롬8:17), 그리스도의 몸(엡1:23), 그리스도의 신부(엡5:23), 그리스도의 종(고전7:22), 새로운 피조물(고후5:17), 거룩한 나라(벧전2:9)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
내 영육에 만족함을 채워주시는 은혜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모든 일 할 수 있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