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밥 한 사발
- 유진택
기사식당에서 시켜놓은 국밥에서
가늘게 딸려 나온 머리카락을 본다
펄펄 끓는 국밥 속에 숨어 있다가
숟가락에 딸려 나와 고깃덩이와 뭉친 저것,
처음에는 껍질 벗긴 머위 심줄인 줄 알았다
노안 탓이러니 하며 눈을 쓱쓱 비비며 자세히 보니
아뿔사, 힌 머리카락이다
주인 불러 성깔 한번 부릴까 하다가 그냥 참기로 한다
위생모 푹 눌러쓴 주인만 아니었다면
주인 것이라고 단정 짓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식당 벽면에 걸린 거울에 비친 내 모습 보다가 흠칫 놀란다
힌 머리카락 몇 올이 헝클어진 머리에 빠져나와
외로움처럼 얼굴에서 하늘거린다
난 누가 볼세라 살며시 머리카락 건져내고
후르륵거리며 국밥을 먹는다
나도 이제 세상에서 이탈할 나이가 되었다고
국밥 한 사발 바닥까지 비워내며 먹는다
세상 중심에 서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나날에
어찌 힘없는 머리카락인들 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