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0:25~42
<누가 이웃이 되겠느냐?>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Ⅲ. 우리의 이웃 (눅 10:25-37)
(1)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선을 행해야 되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율법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려고 그리스도께 질문을 던졌다(25절).
율법사는 일어나서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만일 그리스도에게 이에 대해 지시할 특별한 처방이 있다면, 율법사는 이 질문으로 그것을 얻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특별히 지시할 사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의 가르침이 무용한 것이라고 헐뜯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율법사는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런 악의가 없었고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가듯이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한 질문은 훌륭한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나 나쁜 의도로 그러한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의 가치는 전적으로 상실되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질문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올바른 관심을 가지고 말하고 질문해야 한다.
1)그리스도는 그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아셨지만 그의 질문의 어리석은 면에 의거하여 대답하지 않고 지혜롭고 선한 면에 대하여 대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2)그는 율법, 즉 율법의 중요한 명령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장로들의 전통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율법의 명령 중 첫째 가는 중요한 두 가지 율법에 대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이 두 가지 명령은 나머지 모든 율법을 포함하는 것이었다(27절).
3)그리스도가 그의 대답에 대하여 칭찬하셨다(28절). 그리스도는 그가 한 말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도다. 그리스도 자신도 이것을 율법의 가장 큰 두 가지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대답은 옳았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아 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즉 "너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2)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 율법사의 또 다른 질문이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웃에 대해서라면 계율을 잘 지켰다고 확신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매우 친절하였고 공손하였기 때문이다.
1)여기서 율법사의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그는 "너는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모든 이방인은 제외시켜라.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이웃이 아니고 우리 민족과 우리 신앙을 가진 자들만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죽어가는 이방인을 보고도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도와 줄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2)그리스도는 이 비인간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비유로써 우리가 친절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과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 이웃으로 간주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 비유는 본래의 의도와 다른 목적에도 적용된다. 그 중에도 특히 죄많고 불행한 인간에 대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 준다. 우리는 곤경에 빠진 이 불쌍한 여행자와 같다. 모세의 율법은 우리를 돕기 위한 동정심도 능력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곤경에 빠진 우리를 피하여 다른 것으로 가 버렸다. 그러나 축복의 예수 즉 선한 사마리아인이 오셨다. 그는 우리를 동정하시고 우리를 돌보신다. 이것은 그의 사랑의 풍성함을 보여 주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졌으며 어떻게 이것을 갚을 것인가" 그리스도는 `이 세 사람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다(36절). 즉 "이들 중 누가 이웃이 할 일을 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율법사는 "분명히 사마리아인입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가 선한 이웃이었읍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인에게서 그의 의무를 배우라고 그를 보냈다. "가서 그와 같이 행하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도와 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특히 율법사의 의무이다.
Ⅳ. 마르다와 마리아 (눅 10:38-42)
(1) 마르다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그녀의 집에서 대접하였다(38절).
그리스도는 마르다가 사는 동네에 가고 있었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는 한 촌에 들어가시매. 이 마을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다니였다. 그리스도는 크고 사람이 많은 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에도 가서 은혜를 베풀었다. 그 이유는 그가 은밀한 곳에 때로 가셨듯이 가난을 동정하였기 때문이다.
(2)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39절). 마리아는 그의 말씀을 들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우리가 그의 발 앞에 앉아 있다면 머지 않아 그의 보좌에 그와 함께 앉게 될 것이다.
(3) 마르다는 가사를 돌보았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이것이 바로 그녀가 마리아와 한 자리에 있지 않게 된 이유였다. 주부는 큰 손님 접대를 하려면 얼마나 마음을 쓰고 부산을 떨어야 하는지를 잘 안다.
(4) 마르다는 그녀의 동생 마리아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불평하였다. (40절).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5) 그리스도는 마르다의 지나친 염려에 대하여 책망하였다(41절).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으로 족하리라.
(6)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진실된 신앙을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42절).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읕 무엇인가?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7)
**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10:30-37)
이 비유는 영생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졌으므로 자비를 베푸는 것은 영생과 관련된 것으로 교훈합니다. 즉 강도 만난 자를 멀리하지 않고 그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자비심을 보여준 사마리아 사람은 영생에 들어가게 됨과, 위선에 가득 찬 제사장과 레위인은 영벌받게 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마25:45, 46).
강도를 만난 사람의 진정한 이웃은 한 사마리아 사람, 즉 자비를 베푼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여러 면에서 유대인들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즉 제사장과 레위인을 제치고 그들이 개처럼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을 의로운 사람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주님은 형식적 종교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비를 베푼 자가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 구원 얻을 것임을 역설하셨습니다.
주님!
믿음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 따뜻한 손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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