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

예레미야 52:12~34 <멸망과 희망> 찬송 304장 그 크신 하나님 사랑 Ⅱ. 바벨론인들의 약탈(렘 52:12-23)

ree610 2024. 8. 25. 04:35

예레미야 52:12~34 <멸망과 희망>
찬송 304장 그 크신 하나님 사랑

Ⅱ. 바벨론인들의 약탈(렘 52:12-23)

본문은 갈대아 군대들이 행한 저주스런 만행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만행은 성이 점령된 후 약 한달 동안 `시위장`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명령된 것이다.

(1) 느부사라단은 먼저 성에서 귀중품들을 모조리 약탈한 후 성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는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집인 `여호와의 전을 불살랐다`(사64:11)

(2) 그는 왕궁을 불살랐다. 이것은 아마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에 만든 것인 듯하며 그 이후 줄곧 `왕의 거처`로 쓰인 그 왕궁인 듯하다.

(3) 그는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살랐다.`

(4) 그는 `예루살렘 사면의 벽을 헐었다.` 이것은 그토록 오랫 동안 그의 군대의 진로를 이 성벽이 가로막은 데 대한 보복이었다. 이리하여 방비되어 왔던 그 성은 폐허가 되었다(사25:2).

(5) 그는 `백성 중 많은 자를 사로잡아 갔다`(15절). 그는 성안에 거하는 `백성 중 빈한한 자들`을 잡아갔고 빈천한 자들을 남겨두어(시골의 가난한 사람들)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다. 또한 그는 `성중에 남아있는 백성` 곧 칼과 기근을 피한 자들 및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6) 그들은 성전에 남아 있던 기명을 취하여 갔다. 이미 상당한 가치를 지닌 귀중품들, 즉 `금은 기명들`은 다 가져간 뒤였으나 아직 일부 남은 것이 있었다(19절). 이번 약탈된 대부분의 성전 용구들은 동제로서 먼저 것보다 값어치가 적은 것들이었는데 이것들이 최후로 약탈된 것이다. 그들은 성벽을 무너뜨린 다음 성전의 기둥도 뽑아버렸다. 특히 이 두 사건은 국가와 교회의 힘이요 지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떠나신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떠나가신 자들을 위해서는 성전도 기둥도 그들을 지켜 줄 수 없다. 성전의 이 기둥들은 장식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야긴`(즉 `하나님께서 세우시다`는 뜻)라고 불리워졌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를 지닌 기둥들이 뽑히고 만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의 전을 지탱하지도 않으시며 또 그 전의 능력이 되지도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본문은 이 기둥들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21-23절, 7:15 왕상7:15에서 인용한 것임). 이외에 제단에 딸린 모든 동제 기명들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Ⅲ. 바벨론인들의 약탈(렘 52:24-30)

본문에는 매우 슬픈 사실이 설명되어 있다.
(1) 열왕기하에 의하면 왕의 시종이 다섯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일곱이라고 되어 있다. 그 점을 제외한 나머지 수효는 이 두 기록이 서로 일치한다. 라이트푸트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느부사라단은 왕의 시종들 중 7인을 잡았는데 그 중에는 나중에 방면된 예레미야와 에벳멜렉도 포함되어 있었고 따라서 죽은 사람은 실제로 5인이라는 것이다. `대제사장 스라야`가 가장 먼저 살해당하였다. 방백 스라야는 너그러운 인품의 소유자인데 반해(렘 51:59) 제사장 스라야는 성급하고 불온한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성격 탓으로 바벨론 왕으로부터 처벌을 자초했던 것 같다. 유다 백성들의 이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정의의 다스림을 받는다.

(2) 나머지 포로들이 당한 운명은 이러하다.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7절, 참조. 18:28 레 18:28). 그 주체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이들은 두 번 포로로 잡혀 갔었다. 한 번은 느부갓네살 제 7년에 있었고(이와 동일한 사건을 열왕기하24:12에서는 그 왕 제 8년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다른 한 번은 제 18년에 있었다. 같은 사건을 12절에서는 제 19년에 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잡혀간 포로의 수는 전자에 비하여(왕하 24:12) 매우 적게 기록되고 있다. 열황기하에서는 18,000명이 사로잡혀 갔다고 되어 있는데 본문에서는 3,02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5절에는 남은 백성이 모두(832명) 사로잡혀 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성에 거하던 사람들이 832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세 번째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앞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건으로 느부갓네살 23년, 곧 예루살렘 멸망 후 제 4년이 되었을 때 일어나 일이다(30절). 그 때 느부사라단이 와서 사로잡아간 자의 수효는 745인의 유대인들이었다. 그것은 그달랴를 살해한 데 대한 보복 조치였던 것 같다. 그달랴의 살해는 바벨론 왕에 대한 또 다른 반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예레미야 52장 19절/ 개역개정)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 약탈 당하는 성전

*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52:15)
유력한 자, 부자, 백성의 지도자들이 모두 끌려간 이때는 세번째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땅에는 빈천한 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던 그들은 죄로 인하여 다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이스라엘은 열방에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 바벨론 포로들(52:28-30)
제1차 포로는 주전 606년에 3,023명이었으며, 제 2차 포로는 주전 597년에 532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제3차 포로는 주전 587년에 745명으로 포로들의 수는 총 4,600명이었습니다. 한편 주전 538년 본국 귀환 명령이 있었는데 제``1차 귀환 때 49,897명이 귀환했습니다.

* 여호야긴의 석방(52:31-34)
유다 왕 여호야긴은 잡혀간 지 37년 만에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은혜를 받아 옥에서 풀려 나와 왕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다의 회복을 암시하는 사건이며 포로들의 여호와께 대한 신앙 성장을 의미합니다. 즉 비록 이방 땅이었지만 오래 참고 기다리는 동안 유다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고, 또한 성취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지이다.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같이 심판과 은혜와 구원의 그리고 회복의 역사를 이루심을 믿습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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