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포럼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6차 포럼

ree610 2024. 2. 19. 18:21

[박충구 교수 강연 요지와 토론 내용]

<연세대학교 루스 채플에서 열린 제 6차 민사네 포럼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연대 정종훈 교수께서 깔끔하게 정리해 주셔서 공유합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제6차 포럼을 공유합니다. 6차 포럼은 감신대 은퇴교수이신 박충구 교수님께서 “지식인, 민주주의, 민주사회”라는 주제로 발표하셨습니다. 한 편의 심도있는 논문을 준비하여 미리 공유해주신데다가 일목요연하게 발제하셔서 참석자들이 진전된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논문의 전문은 A4 15쪽의 분량이라 핵심만을 요약한 후 토론내용을 중심으로 포럼의 분위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1. 사회 지배 계급과 결탁한 종교적 지식인과 달리, 권위주의적 권력과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이루어낸 인류사적인 업적으로 미국독립선언문(1776년)과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문(1789년)을 들 수 있다. 미국독립선언문은 개인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을 제한하던 국왕과 종교계급 권력의 세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천부인권설을 전면에 내세우고, 개인을 신민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거부하며 주권자를 법 앞에 평등한 시민으로 규정한다. 이는 권력자가 주권자를 무시할 경우, 주권자는 권력을 교체하고 권력 기구를 재편할 권리를 가진다는 주장에서 의의를 지닌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문은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대의(代議) 없는 과세 금지, 과도한 형벌의 폐기 등 군주의 자의적 통치에 반해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 모든 정치적 압제에 대한 저항의 정신을 담을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의 기본 골격을 제시한다. 결국 법에 의한 지배와 권력자의 자의에 의한 지배 사이에서 법에 의한 지배만이 모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지킬 수 있다고 선언한 의의가 있다.

2. 인류 역사에서 지배자의 출현은 공동적 생존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였다. 하지만 공동적 생존을 위한 장치가 지배자 중심의 이데올로기로 전환되면서 기존질서 옹호적 지식인들에(종교) 의해 그 지배권이 신성시되어 강화되고, 지배자의 자의가 피지배자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낳았다. 민주주의는 이런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나온 대안적 삶의 방식이다. 법에 의한 지배, 국민의 존엄성과 권리의 보호, 권력분립에 의한 권력의 행사와 견제, 공동선을 위한 대의원칙과 다수결 원칙, 정치적 의사결정의 다양성과 투명한 공공성, 자유와 정의와 연대의 기본가치 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사실 지식인에 의해 오랜 기간 숙고되고 실험되며 실천된 과정을 거쳐서 성립되었기에 민주주의와 지식인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3. 지식인은 매스 미디어의 확산과 더불어 봉건주의적 사회에서 다소 자유로운 정신에 이끌려지는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기에 공적 공간이 열리면서 출현했다. 지식인의 출현은 당연히 세속화와 이데올로기 개념의 확산과 맞물려 있다. 지식인은 문명의 교사이다. 지식인은 문화를 생산하고 분여하여 사회에 비공식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므로 문화통합적인 기능을 할 수도 있고, 반문화의 기수가 되어 기존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도 있다. 지식인은 문화 변혁자이다. 지식인은 해박한 지식의 습득과 축적, 그리고 그 지식의 변형 능력에 더해 보다 나은 삶의 지평을 인식해 낼 수 있는 상상력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를 통해 창조와 혁신, 보다 질 높은 생명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 지식인은 사회 계급과 유기적이다. 지식인은 포퓰리즘을 따르기보다 보편적 진리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고(Julian Benda), 사회적 계급과 연대함으로써 보다 정의롭고 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다(Antonio Gramsci). 또한 사회 내 다양한 그룹들의 내적 동기를 파악한 이후, 모든 그룹을 통합하는 가치중립적 역할을 감당할 수도 있다(Karl Mannheim). 인텔리겐챠로서의 지식인은 현실 참여적이어야 하고, 새로운 지배구조(헤게모니)를 형성하는 문화전쟁을 피할 수 없다(Gramsci). 지식인은 간문화적 매개자, 해석자, 상징적 의미에서 번역가로서 기능해야 한다(Zygmunt Bauman). 68혁명 이후 지식인은 상황에 응답하여 사회변혁적이 되어야 함이 강조된다. 지식인은 진리를 드러내고, 도발적이며, 주류 권력에 맞서고, 기만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 진리와 더불어 권력자들을 마주해야 하는” 저항적 책무가 있다(Martin Honecker).

4. 그렇다면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주체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외세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다. 전근대적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과 도전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 패망한 군주국이 35년간 식민 지배를 받다가 1945년 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미군정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사상의 근본적인 속성인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자발적인 비판과 거부, 인권 사상과 그 인권 옹호의 장치로서 법치주의에 대한 절박한 요구, 그리고 국민의 주권자의 실력행사로서 권력 교체와 참여 등의 논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배자를 모방하는 지식인이 주된 흐름을 이루었고, 이에 반하는 세력은 자발적 망명의 길을 걷거나 식민지배 세력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1945년 식민지배 체제에서 벗어난 직후에도 우리 지식인은 식민 후기사회의 현실, “계속되는 식민적 현재” 안에 있었고, 선명하지 못한 혼종성 가운데 존재했다. 특히 미군정은 주체적 지식인보다 일제 부역자를 불러들여 신식민지적 지배의 도구로 삼음으로 진리담론을 전개할 지식인층이 소외되었고 실용적인 현실주의자가 득세했다. 친일-친미 세력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지배세력으로 인해서 민중의 고난은 깊어졌고, 주체적 지식인과 식민지배세력에 종속된 지식인 간의 대립이 없지 않았지만, 주체적 지식인들은 일제하에서처럼 거세되거나, 좌익 빨갱이로 낙인이 찍혀 학살과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식민주의자화 된 피식민 지배세력’에 의해서 ‘일제와 미국 신식민주의’라는 이중의 식민 상태가 이어졌던 것이다. 일제에 부역하고, 동양을 서구에 비해 전근대적인 열등한 세계로 멸시하며 백인 우월주의에 승복하고, 미국 제국주의에 자발적인 부역자가 된 지식인들 의해서 반미 세력은 불온세력, 공산주의자, 좌파, 빨갱이로 몰려 갖은 곤경을 겪어야 했다. 또한 민주적 폭정 아래서 민주적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을 찾기 어려웠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라 사는 지식인들이 권위주의 정권에 침묵하며 반역의 역사를 지속했다. 반민족적이며, 반민주주의적인 극우주의자들이 권력기관을 장악했고, 민족 주체세력이나 평화세력, 민주 세력은 끝없는 탄압을 받아야 했다.

5. 이제라도 우리 지식인들이 사회 정치적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세계 현실에 대한 전문적 지식, 지식을 통해 사회를 일깨우려는 능력과 의지, 그리고 사회변화를 이루어내려는 고귀한 목적을 지닌 지적 교사로서의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정서적 연대와 안정감을 이룰 수 있는 공동적 가치를 찾아 해석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식인의 사회 계급적 정체성을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두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식민주의자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이 이어져 민중의 입장에서 권위주의적 식민지배 방식이 현재화되고 있다는 문제이고, 바로 그러한 통치방식이 민주적 가치를 파괴함으로 최소의 민주주의 여건에 그쳐, 미성숙한 민주주의에 정체된 사회를 지속시키고 있다는 문제이다. 식민지배 세력이 남긴 사회윤리적 폐해를 적극적으로 청산하지 못하고, 지배층이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을 선호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유기적 연대 속에서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과 제거, 그리고 민주주의를 공고히 견인해야 한다. 권위주의 세력을 밀어내고 민주적 참여구조를 제도화하여 권력의 일탈과 오용, 그리고 민주사회의 다원성을 부정하는 극단주의 세력의 준동을 막아내기까지 비판적-참여적 역할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토론과 코멘트
1. 지식인의 상황과 역할이 왜곡된 현실에서 지성인이라는 말로 대체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일제하의 지식인이든 오늘의 지식인이든 한반도 상황에서 지식인은 민주주의보다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우선적인 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 만능주의 또는 환원주의에 빠지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지식인은 엘리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민중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권력의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2.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가 고발했던 것처럼, 지식인의 현실참여적, 사회변혁적, 실천적 역할이 절실하다. 학문의 성격 규정과 지식인의 결단이 필요하다.

3.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당파성을 지니고, 그들의 고통에 연대하며,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실험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 지식인들에게 필요하다. 저항적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4. 지금 우리는 후불제 민주주의(유시민 작가)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이제라도 독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교육을 살펴보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Red Complex를 극복하고 이념교육을 지양하고 비판적 토론 교육을 실행했는데 그것이 주효했다.

5. 동학혁명은 반봉건 민본사상으로 그 시대에 성공했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동학혁명이 왕정 전복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계이다.

6. 대학교수가 많은 우리 민사네 모임에서 지식인론을 토론한 의미가 크다. 노암 촘스키나 함석헌 선생처럼 개인이지만 지식인의 영향력이란 지대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연대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현실참여와 사회변혁을 위한 지식인의 절박감이 작동한 셈이다.

7. 우리 사회의 주류 언론은 언론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권위주의적 정권을 강화하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 동아일보) 폐간운동과 함께 제대로 된 언론을 설립하기 위한 국민주 운동이 필요하다.

8. 올해 5월 18일이 토요일인데, 1박 2일 또는 2박 3일 일정으로 연대의 실천으로 광주를 방문하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며 향후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는 민사네 워크샵을 제안한다.

이렇게 민사네의 제6차 포럼은 민사네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포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식기사의 속성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민중과 연대하는 대자적 민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강정구 교수님의 지식인 구분처럼) 전문 분야에만 매몰되어 전문 분야 밖의 거대구조인 인간사회나 역사 등을 외면하는 ‘쟁이지식인’이나 지식 자체만을 추구하는 ‘지식매몰적’ 지식인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과 돈을 따라 다니는 관변지식인이나 자신의 세속적인 영달을 위해서 신념을 내팽개치는 변절지식인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집단이나 계급에 귀속되지 않고 비(非)당파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자유스럽게 부유(浮游)하는, 그래서 합리적·객관적·중립적 판단을 하는 부유(free floating) 지식인이자, 피(被)지배계급이나 피(被)지배집단의 이익 실현을 위해 유기적으로 결합, 일체화하는 유기적(有機的, organic) 지식인, 인간해방과 역사 진보를 위해 비판적 자세를 갖추고 현실의 문제점과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개조를 위하여 실천 활동을 전개하는 비판적 지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문성, 총체성, 비판성, 실천성을 동시에 지닌 전문·비판 유기적 지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 제6차 포럼

일  시: 2024. 2. 17.(토) 11:00
장  소: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113호 세미나실
발제자: 박충구 교수
주  제: 지식인, 민주주의, 민주사회
참석자: 강정구, 김규돈, 김근수, 김영, 박충구, 백승종, 손원영, 유정현, 이근수, 이대남, 이명재, 이철, 이태행, 이흥용, 정갑환, 정종훈, 조성민, 최승언, 홍덕진(1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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