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전쟁이 벌어졌다. 살아남으려고 비행기를 탄 다섯 살에서 열두 살에 이르는 영국 소년들이 무인도에 불시착했다. 소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투쟁을 벌였다. 그 투쟁은 “인간의 자연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토머스 홉스의 정의를 소설의 형식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이수은, 평균의 마음) 인간의 본성은 악일지도 모른다는 속셈은 밀어 둔 채로…
“핵 분열의 엄청난 파괴력을 알게 된 인류가 과연 영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냉전시대의 회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당시에 『파리대왕』은 인간 내면에 기저하고 있는 악, 권력욕, 지배욕의 일면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회와 사회를 유지하는 규율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드러내준다.” (유종호, 작품 해설)
성서에서 파리대왕 곧 바알제붑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듯이 악마를 상징한다. 이 악마는 아직 미숙한 아이들의 도덕성을 퇴행시키고 인간 본성의 어둠을 격발시켜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로 아이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과는 상관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오직 나의 생존만이 절대적인 가치로 부각되어 파렴치한 권력지향적 성정까지도 움켜쥐려고 덤비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파리대왕 같은 코로나가 격발한 제도적 교회의 위기 상황에서 ‘성결인다운 믿음’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었는가를 아니면 바알제붑인 파리대왕이 격발시키는 인간의 어둠에 삼키워져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제를 무인도의 아이들처럼 내버린 것은 아닌가를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그 점검은 회개여야 함도 잊어서는 안된다. 교회를 다시 세우는 성령의 역사는 회개의 바탕 위에서만 이뤄졌음을 교회사는 증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로 주신 것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머리 위에서 창조주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다”(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남명 조식이 퇴계에게 후학을 잘 지도하시기 바란다고 편지를 써 진언했다. 그러나 우리교회는 구설수에 오르는 타인지도보다는 본회퍼를 지지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은 파리대왕의 소년들도 아는 것 아닐까. 입맛이 소태같아지신 애독자님들에게는 용서를 구합니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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