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구약성경 한글 번역자인‘피터스 목사’에 대하여”
“신약성경의 경우 신약을 최초로 번역한 분이 존 로스(John Ross) 목사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을 최초로 번역해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의외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목사들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입니다.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는 우리 민족이 한글로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신 분입니다.”
지난 11월 17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준서 교수(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가 전한 이야기이다. 박준서 교수는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1898년, 시편촬요)이자, ‘개역’ 구약성경 완성자(1937년)인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한국명 피득)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
박준서 교수는 “피터스 목사는 1871년 제정 러시아(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이사 프룸킨(Isaac Frumkin)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대교 회장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시편과 기도문을 히브리어로 암송하며 자라났다. 어학에 특출한 재주가 있었던 그는 히브리어에 통달했다. 그는 23살이 되었을 때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차별과 박해가 심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그는 동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거리를 찾아 이집트, 인도, 싱가포르를 전전하다 일본까지 가게 된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그는 교회를 찾아갔다. 정통파 유대인이 교회를 찾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고 믿는다. 당시 그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독일어는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했다. 그가 찾아간 교회는 미국에서 온 선교사가 목회하는 교회였다. 그 선교사는 미국인이었지만 마침 독일어에 유창한 목사였고, 그를 찾아온 유대인 청년에게 독일어로 기독교에 대해서 2주 동안 가르쳐 주었다. 선교사 목사의 가르침을 받은 이삭 프룸킨은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선교사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으며 새사람이 된 징표로 세례를 준 목사의 이름을 따라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라고 개명했다. 유대인 청년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세례식에 함께 참석했던 미국성서공회 일본 책임자 헨리 루미스 목사는, 그에게 한국에 나가 권서로 일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피터스 목사는 1895년 한국에 오게 됐다”고 피터스 목사에 대해 소개했다.
“피터스 청년이 한국까지 오게 된 일련의 사건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히브리어에 능통한 피터스 청년을 택하시고, 섭리의 손길로 그를 한국까지 이끄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시편촬요(1898년)
“권서로서 한국에 온 피터스 청년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신약성경 쪽복음을 파는 일을 했다. 언어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던 그는 한국에 온지 2년이 지나자 한국어에 완전히 능통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구약성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는 권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그가 히브리어로 애송하던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영어 혹은 중국어에서 중역한 것이 아닌, 능숙한 히브리어로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다. 그 결과, 예순 두 편의 시편을 번역했고 한시라도 빨리 한국 사람에게 구약성경을 읽히겠다는 일념으로 1898년 ‘시편촬요’(촬요:선집)를 출판했다. ‘시편촬요’는 한국 역사상 한글로 번역된 최초의 구약성경이며,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순 한글로 번역했다. 피터스는 한국에 온 지 불과 2년 만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구약책 중 번역하기 가장 난해한 시편을 유려한 한국어로 띄어쓰기를 사용하여 번역했다. 이 때는 아직 띄어쓰기가 보편화되기 전이었다”며 피터스가 ‘시편촬요’를 번역하고 전한 배경을 이야기했다.
“이로써 우리 민족은 처음으로 구약의 말씀을 우리말로 읽게 되었습니다. ‘시편촬요’가 출간되었을 때 곧 매진되었고, 2000부를 추가 인쇄했지만, 그것도 곧 매진되었죠. 당시 한국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에 얼마나 갈급해 있었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찬셩시(1898년)
박 교수는 ‘시편촬요’와 더불어 함께 작업한 ‘찬셩시’에 대해서도 전했다. “피터스는 시편을 번역하면서, 동시에 찬송가 가사도 작곡했습니다. 유대인 전통에서 시편은 읽는 책이 아니라 노래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는 그가 번역한 시편을 주제로 17편의 찬송가 가사를 작사했고, 이들은 ‘시편촬요’와 같은 해에 출간된 초기 찬송가 ‘찬셩시’(1898)에 수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75장(주여 우리 무리를…), 383장(눈을 들어 산을 보니)이 대표적인 피터스의 작사곡입니다.”
▐ 개역구약성경(1937년)
박준서 교수는 “피터스는 미국 맥코믹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선교사 자격을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황해도 재령, 평북 선처에서 선교사역을 했다. 1926년 구약개역위원회의 평생위원으로 위촉을 받고, 통달한 히브리어를 활용하여 11년간 구약개역 작업에 헌신했다. 병 치료를 위해 1년간 미국에서 지낸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10년간 구약개역 작업에 몰두한 것”이라며, “1937년 개역 작업이 완료되었고, 한국성서위원회는 피터스 목사가 완성한 개역구약성경을 한국교회의 공인된 ‘개역구약성경’으로 공식 선언했다. 그 후 개역구약성경은 새 맞춤법에 따라 고쳐지고, 고어체 문장(‘가라사대’ 등)의 수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교회가 공인된 구약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개역구약성경이 완성되기까지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호칭에 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 개역구약성경에서 피터스 목사는 ‘하나님’으로 사용했고, 그 후 개신교에서는 호칭이 ‘하나님’으로 확정되었다”며 피터스 목사가 한국교회개역 구약성경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개역구약성경을 완성함에 있어서 피터스 목사를 도운 연동교회 ‘이원모 장로’의 공헌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그밖의 사역들
“피터스 목사는 ‘시편촬요’, ‘찬셩시’ ‘개역구약성경’ 외에도 한국에서 많은 사역을 했다”고 박 교수는 전한다.
“피터스 목사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애양원의 전신인 ‘비더울프 한센병자 주거 단지’를 위한 봉사활동입니다. 피터스 목사는 나병 환자 거주지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시간이 나는 대로 그곳을 방문해서 설교하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또한, 선교사라는 직업의 박봉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한센병 환자와 가족을 위한 40채의 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후원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피터스 목사는 제임스 게일 목사(한국명 기일, 연동교회 목회)가 출간한 ‘한영자전’(1897)에 7천 개의 단어를 추가하여 8만 2천 단어, 1760쪽 분량의 방대한 한영사전을 편찬했다. 또한, 1927년부터 1941년 은퇴할 때까지 13년 동안 남대문교회, 묘동교회 등에서 설교했던 219편의 설교 육필 원고를 남겼다. 박준서 교수는 이에 대해 “이는 한국 교회사에서 아주 귀중한 자료이며, 앞으로 출판되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준서 교수는 “몇 년 전, L.A 근교 패서디나(Pasadena)에 있는 풀러 신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지낸 일이 있었다. 패서디나는 피터스 목사가 은퇴 후 미국에서 말년을 보낸 곳이기에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 지역 목사님들께 묘소의 위치를 물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그가 누구인지 되묻는 질문을 받았다. 그렇게 내가 직접 수소문해 어렵사리 피터스 목사님의 묘소를 찾았지만 작은 묘비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평생 구약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그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 후 한인 목사님 모임에서 피터스 목사님 묘소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때 한 목사님이 ‘그렇게 중요한 인물에 관해서 왜 교수님이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 순간 한국 교계와 사회에 피터스 목사님의 공적을 알리는 것이 교수로서 나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며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는 2018년 12월 피터스 목사의 묘소가 있는 묘원 추모관에 ‘피터스 목사 기념동판’을 설치하고 매주 아름다운 꽃으로 목사님 묘소에 ‘꽃봉헌’을 해오고 있다. 금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피터스 목사에 관한 최초의 전기가 되는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 목사’를 출간했고, ‘시편촬요’와 ‘찬셩시 영인본’을 출간했다.
박준서 교수는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는 이번 출간일 계기로 ‘설교집’, 미국·영국 성서공회 등에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출판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한 기념 강좌 개최, 영상물 제작, 피터스 목사 자료 기념관 건립 등 피터스 목사에 대해 더욱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주님의 뜻과 계획하심
“성경은 원래 히브리어(구약)와 희랍어(신약)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성경을 한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총입니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보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일꾼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한글 성경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한글 성경은 한글의 대중화, 자유와 평등사상의 확산, 민족 독립 정신의 고취 등 국민 계몽과 근대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해 주신 피터스 목사는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크나큰 공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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