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영성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ree610 2021. 7. 23. 07:33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  함 석헌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네거리 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대는 님 어디다 모시려는가?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남이 보는 줄 아시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애를 태우고 도 눈물흘려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보는 그윽한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의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문 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극진하신 님의 꿈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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