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신자는 수동적으로 예배한다.
참석하면서 기대로 설레지 않는다.
습관 또는 의무적이다.
다윗은 능동적이었다.
가고 싶어 했고 기대했고 기뻐했다.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고 복 주심을 믿으면
자발적으로 된다.
그저 시키는 대로 순서대로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고 설교를 듣는다.
인도자는 예배의 의미와 유익을 설명하며
능동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혼자 앞서가며 기도하고 찬송하는 게 아니다.
참여자들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예배하도록 도와야 한다.
대표 기도하는 이는 물론이요,
찬송하는 청중이나 성가대도 모두가
하나님을 향해 하게 하라. 감사하고 찬양하라.
묵도할 때, 찬송할 때,
아니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을 느끼라.
교독은 함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하나님을 접한다.
대표기도를 마음으로 따라하라.
설교를 감상하고 평가하지 말고
하나님 접하는 수단으로 삼으라.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 주심을 느껴보라.
모든 순서가 하나님 경험하는 과정이다.
세례를 받고 보면서 옛사람이 죽고
다시 살아남을 확인하라.
성찬을 받으면서 일 세기 다락방을 느끼라.
빵이 예수의 몸이 되어
내 안에 들어와 한 몸 됨을 느끼라.
잔이 내 피와 한 피 됨을 확인하라.
그러면서 옛 내가 예수로 인해 영원한 존재 영광과
능력의 새 창조물이 되었음을 믿으라.
나는 질그릇이나 하나님을 보배로 모셨다.
찬양대 역시 성육신의 신학으로 해야 한다.
물론 듣기 좋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 개념의 연주로 그치면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연주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드러내 느끼게 한다.
음악성을 자랑하는 데 그치면 육신적이다.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높이는
경배가 되어야 하나님의 복이 내린다.
목회자는 자신이 인도하는 주의 지체가
생명으로 넘치도록 연구하고 주도해야 한다.
성육신의 주는 연약해 보이나 하나님이셨다.
우리의 목회도 그러하다.
겉만 화려하고 강하게 보이려 하지 말라.
교인수 많고 건물 큰 것 자랑하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성육신의 목회는 될 수 없다.
하나님의 강하고 풍성함을 누려야 겉도 그렇게 된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
사람에게는 없는 위엄이 넘쳤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 예배자의 속에서 빛나게 한다.
그 빛이 모든 것을 밝히고 변화시킨다.
그래서 삶도 가정도 교회도 빛나게 한다.
이 사실을 믿으면 항상 예배하라.
그리고 함께 예배할 때
이 사실을 알려주고 함께 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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