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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대영의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생각비행

ree610 2017. 6. 1. 15:13

 류대영의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생각비행

본문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놀이하는 인간』에서 시인(詩人)을 ‘아는 자’라고 말한다. 시인은 피안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남들보다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시(詩)는 제의적인 말하기의 일부였고, 시작(詩作)은 정신의 놀이작용이라는 점에서 시인을 사제와 같은 차원에서 보았다. 시는 종교적인 언어였고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놀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사회는 자연과학이 지배하게 되었고, 자연과학은 진실을 말하는 인간의 언어를 기계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논문은 학자들의 언어를 기계적으로 바꾸어놓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래서 논문 검색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 학위를 수여하고, 이들의 말하기 방식(논문)만이 진실한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좀 과하게 말하면 학위는 근대사회의 지식권력이 부여한 작위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사회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논문 검색대를 통과한 사람들을 불러내 마이크를 들려준다. 근대사회는 소위 ‘학자’라 불리는 지식인 집단에 진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독점적 권위를 부여하였다.
또한 근대적 학문이 체계화되면서 문자 문화가 구술 문화로부터 물려받은 말하기 방식으로서의 에세이는 뒷방 늙은이처럼 홀대받게 되었다. 사물의 내면과 피안의 세계를 관통하는, 영감으로 가득 찬 우리의 오래된 말하기 방식은 유폐되고 말았다. 이제 근대성의 세례를 받은 학자들의 말하기는 사물의 이면이나 피안의 세계를 담지하지 않는다. 예감과 비의로 출렁이는 시인의 언어, 그리고 세계의 기원을 상상하고 현실의 부조리를 조롱하는 예언자의 언어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학술 언어로 대체되었다. 학자들은 회칼처럼 차갑게 날 선 언어로 해부학적인 기술을 현란하게 뽐내는 것으로 진실이 말해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데는 많은 정보나 지식, 또는 해부학적인 논리가 필요치 않다. 자연과학적인 논리체계로 따지고 분석하여 그것을 꾸러미로 꿰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이성은 오랜 시간을 거쳐 훈련돼왔다.
류대영 교수의 책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는 학자들의 언어에 대한 자기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에서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 문학과 역사, 현상과 본질, 기억과 인식” 같은 문제를 “시간의 지층 밑”에서 인양하는 것이라고 이번 책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학자가 굳이 학술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책을 쓰는 데 대한 변명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이 아니라 언어에 대한 그의 패러다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굳이 저자의 변명(?)이 아니더라도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는 제의적인 언어, 시적 언어로 풀어낸 세계와 존재에 대한 통찰이며 성찰이다.
그는 안식년을 맞아 프린스턴 대학 중앙도서관인 파이어스톤에 간다. 학자에게 강요되는 연구 결과물이나 논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학문을 하기 위해 장서가 풍부한 도서관에서 수많은 자료를 섭렵할 기회는 복된 시간이다. 하지만 그가 파이어스톤 도서관의 크기와 장서의 방대함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층위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방대한 지식의 층위들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에 소장된 700만 권의 책 하나하나는 불완전한 관찰력과 이해력과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불완전한 도구인 언어를 사용하여 만든, 그런 엉성한 약도들이다.(111쪽, 강조는 필자의 의도임)


지식을 기능적으로 집중시킨 책들, 아니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쌓아놓은 이 거대한 책들의 탑이 세계와 인간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고백이다. 이 대목에서 노자의 일성을 만나게 된다.
노자는 『도덕경』의 첫 장을 열면서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진리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일갈하였다. 비록 내가 장황하게 진리에 대해 말하지만, 여기에 글로 쓰인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내 글에 걸려 넘어지지 말라는 뜻이리라.
류대영 교수의 지성과 학문이 찾은 광맥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 언어의 불완전함과 인간의 한계, 그러나 그 한계 너머에 출렁이는 영원의 바다, 그 바다를 보는 시선, 이것들이 그가 찾은 광맥이다. 그의 시선이 잇닿은 광맥 가운데 ‘바다’는 인간의 언어와 지식의 한계 너머에 있는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시간이며 공간이다.
그래서 이 산문집은 ‘바다’라는 소재로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저자의 말에 의하면 “유년의 바다”이다. 어린 시절 그가 놀던 바다로부터 반세기를 떠나왔지만, 그 바다는 “인간과 다른 차원의 시간”이며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고 말한다. 인간과 다른 차원의 시간, 그리고 세계를 품은 거대한 생명체로서의 바다는 시간과 존재의 원형이며 카오스이다.
그런데 이 “유년의 바다” 앞에 위치한 “외할머니의 등”은 이 책의 일주문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는 유년시절 외할머니의 등에 업혔던 짧은 시기를 회상하며 그가 남기고 간 사랑을 그리워한다. 그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그것은 저자의 경험과 기억 속에 무시간적으로 출렁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저자의 내면에 출렁이고 있는 바다이다. 어머니의 어머니인 외할머니, 그는 세상의 모든 생명을 포태하고 양육하는 자궁이며 모성의 바다이다. 이 세계는 누군가(외할머니 혹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출렁이는 바다이며, ‘나’는 그 바다에 유영하는 존재라는 인식은 이후에 전개되는 모든 글의 기저에 깔려 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나로 이어지는 이 모성의 바다는 모든 존재가 탯줄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의 우주이다.
나는 너 때문에 존재하며 너 역시 나 때문에 존재하는, 이 관계가 세계의 근본 질서라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성이 자아를 지나치게 확장시키고 주체성을 강화시켜 나타난, 폭력적 세계질서에 대한 대안의식이다. 이러한 대안의식은 현상적인 세계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어 두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다. 결국 삶도 죽음도 하나라는 생각은 동양의 오래된 존재의식이며 세계관이다.
저자가 서구 문명의 한가운데서 학문을 하였지만, 그곳 파이어스톤에서 오히려 길을 잃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를 폭력적으로 나누고 지배하며 병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숨은 뜻은 길 잃은 곳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그 길을 찾았다. 하지만 그 길은 항상 옳은 길이 아니며, 여러 길 중 하나일 뿐이다.
지식의 목적은 지성화에 있고, 지성의 궁극은 폭력적 세계질서를 꿰뚫어 보고 현존재의 무상함과 영원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존재와 세계를 진실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저자는 학문적 진실이 아니라 존재론적 진실, 존재의 우주적 지평을 위해 문학의 언어를 사용한다. 이 책이 가진 미덕은 바로 그런 언어의 풍성함이 한여름 녹음이 우거진 숲처럼 문학적 감성으로 넘실대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처음 접한 학문이 영문학이라는 것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 거론되는 수많은 문학작품과 문학적 상상력은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저자의 언어가 문학적이라고 해서 방만하고 무질서하게 무엇을 상상하거나 지나친 관념에 치우치지는 않는다. 그의 문체는 매우 정교하고 잘 다듬어져 있다.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노송을 베어내 멋지고 견고한 가구를 만들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가구는 오래오래 대를 물리면서도 자태가 흐트러지지 않고 사람의 손때가 묻을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빛을 낼 것이다. 저자의 문체에 소나무 향기가 난다. 그리고 단단함과 우아함, 세련미가 있다. 학자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정확성과 선비의 꼿꼿한 태도, 그리고 문학적 기품이 그의 문체에 서려 있다. 문체는 그 사람의 성품이 빚어내는 내면의 향기이다.
그는 학자이며 선비이며 시인이다. 우리 시대에 이러한 기독교 저술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다.

| 김선주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충북 영동에 있는 물한계곡교회를 담임하며 노인과 아이들의 친구로 살아가고 있다. 저서로 『한국교회의 일곱 가지 죄악』, 『우리들의 작은 천국』, 『목사 사용설명서』, 시집 『할딱고개 산적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