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신앙
※ ‘옥중서신’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1980년, 소위 ‘김대중 등 내란음모사건’으로 육군교도소와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 이희호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한달에 엽서 한장만을 허용 했기에 몇시간에 걸쳐서 깨알같은 글씨로 쓴 글을 모은것입니다.
1980년 9월 17일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므로, 그 해 11월 21일자 제 1신부터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기 전에 쓴 5신까지는 유언이나 다름없다고 하겠습니다. 날조된 죄명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억울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남을 탓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오직 부인에게 감사하는 편지와 함께 모든 걸 하느님의 뜻에 맡기겠다는 눈물겨운 대목은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김대중의 『옥중서신』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감옥에서의 온건, 비폭력 호소는 자신을 무자비한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그의 신념은 억압을 뛰어넘었습니다.
옥중서신 "죽음 앞에서의 결단"
존경하며 사랑하는 당신에게,, 지난 5월 17일 이래 우리 집안이 겪어 온 엄청난 시련의 연속은 우리가 일생을 두고 겪은 모든 것을 합친다 해도 이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신이 맡아서 감당해야 했던 고뇌(苦惱)와 신산(辛酸)은 그 누구의 것보다 컸고 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자제로서 이를 극복해 온 당신의 신앙과 용기에 대해서 나는 한없이 감사하며, 이러한 믿음과 힘을 당신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감사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당신의 힘이 없었던들 우리가 어떻게 이 반년을 지탱해 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번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것은 당신과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정과 주위가 더욱 굳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겪은 두 자식이 큰 믿음의 발전을 보였으며, 대현(大賢:막내아우)이와 기타 고난중인 비서실 동지들의 신앙의 소식을 들을 때 사람의 믿음은 고난 속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 자신이 어느 정도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제 죽음을 내다보는 한계상황 속에서의 자기실존(自己實存)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믿음 속의 그것인가 하는 것을 매일같이 체험하고 있습니다.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공포, 그리고 해결과 의혹의 갈등과 번민을 매일같이 되풀이해 왔고 지금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으며, 그분이 나와 같이 계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그 사랑 때문에 지금의 이 고난을 허락하셨으며, 나를 위하여 모든 사소한 일까지도 돌보시며, 이 시간에도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한 역사(役事)를 쉬지 않고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감정이나 지식으로 해서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통감하면서 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많은 갈등과 방황 속에서 “믿음이란 느낌이나 지식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의지의 결단은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와 찬양도 먼저 의지로써 행하고 감각이 뒤따라가는 것이다”는 판단 아래 오직 눈을 우리의 주님께 고정시키고 흔들리지 않도록 성신께서 도와주시도록 기구(祈求)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지의 결단을 세운 최대의 기초는 주님의 복음이며, 그중에서도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면 하느님의 계심, 죄의 구속, 성신의 같이 계심과 그 인도, 언제나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천국영복(天國永福)의 소망 등 모든 것이 믿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신앙의 신비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로서도 근거가 상당히 객관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수난 때 그분을 버리고 자기 살기 위해서 도망쳤던 사도들이 그분이 그렇게도 비참하고 무력하게 돌아가신 후에 새삼스럽게 목숨을 건 신앙을 가지고 온갖 고난과 죽음을 감수하면서 복음 전달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의 체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예수 생존시는 대면조차 없었으며 그 돌아가신 후에는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그리스도 교도를 박해한 사도 바울의 회심과 그의 초인간적이며 결사적인 포교활동, 그리고 마침내 겪은 순교는 그가 체험한 부활하신 예수 없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것이 현재 나의 믿음을 지탱하는 최대의 힘이며, 언제나 눈을 그분에게 고정하고 결코 그분의 옷소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항시 기도하기를 “하느님은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제가 믿습니다. 저의 현재의 환경도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보실 때 이것이 저를 위하여 최선이 아니면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뜻하심과 앞으로의 계획하심을 알 수는 없으나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순종하며 찬양하겠습니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감정이 어떠하든, 외부적 환경이 얼마나 가혹하건, 내일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며, 나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는 소망으로 일관할 결심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같이 계심과 깊은 사랑은 당신과 우리 자식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정다운 형제들에게도 함께 하심을 믿고 기구하고 있습니다.
세속적으로 볼 때 나는 결코 좋은 남편도 못 되며, 좋은 아버지도 못 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 친척들에게 얼마나 많은 누를 끼쳤습니까? 또한 가슴 아픈 것은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과 고난을 당한 사실인데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어지는 듯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모든 일을 위해서 주님의 은총이 내려지도록 기구하고 또 기구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해서 좋은 남편 노릇을 못한 나의 수많은 잘못을 당신이 관용해 줄 것을 다시 한번 마음으로부터 간구합니다. 집안의 같이 있는 식구들에게도 나의 간곡한 안부 전해주시오.
1980년 11월 21일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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