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의료원 교직원수요예배에 설교자로 초청받았다. 그곳에서 보직하던 시절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 가지를 제안했다. 연세의료원의 리더들이 수용하면 참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 정종훈 목사 (연세대 교수)
세브란스다움 찾아가기 (누가복음 2:52)
올해 8월 말 정년을 앞둔 저를 어린이병원이 주관하는 교직원수요예배에 설교자로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어린이병원을 비롯한 세브란스병원과 연세의료원의 모든 교직원과 기관 위에 언제나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병원 주관 예배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감사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첫째는, 2015년 9월 아들을 결혼시킨 기념으로 어린이병원에 500만 원을 기부하고, 기부자의 벽에 아들과 자부의 이름을 등록했던 것입니다. 최근에 기부자의 벽을 방문해 보니, 기부자 벽의 시스템이 바뀌어서 아들과 자부의 이름 대신에 제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하여튼 어린이병원이 존재하는 한 저의 이름이라도 계속 남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흐뭇했습니다. 2019년 8월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에서 손자가 태어났고, 손자가 잔병치레할 때는 어린이병원을 방문해서 치료받았습니다. 지금 손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성장하고 있어서 매우 감사할 따름입니다.
둘째는, 필리핀 출신 외국인 노동자 부부의 아기 안젤리카가 작년 12월과 올해 4월에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것입니다. 안젤리카는 작년 12월 8일 백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인데, 심장에 문제가 있어 세브란스병원으로 전원했고 두 번의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하는 서울디아스포라교회 담임목사님이 저에게 전화하셔서 엄청난 병원비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를 문의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세브란스병원 사회사업팀 선생님께 토스했는데, 면밀히 검토한 후 상당한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기는 건강을 회복했고, 아기의 이주노동자 부모들은 기적적인 치료를 해준 어린이병원과 1억 원이 넘는 엄청난 치료비의 감면을 도운 사회사업팀에 큰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브란스병원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라는 자신의 사명을 유감없이 실천한 사례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연세대학교 20대 총장이신 윤동섭 총장님께서는 ‘연세다움’을 수시로 강조하고 계십니다. 한국 최초의 대학인 연세대학교가 기독교대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계승하고 강화하며 발전시켜야 함을 과제로써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연세의료원에서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으로서 6년 6개월을 생활한 제가 볼 때, ‘연세다움’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세브란스다움이 존재합니다. 제가 경험한 세브란스 구성원들의 특징은 기독교적인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고, 공동체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과 더불어 헌신성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규직 교직원들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직원들이나 용역업체 직원들까지 유사한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세브란스에서 이런 구성원들과 6년 6개월을 함께한 것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는지 여러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연세의료원에서 보직을 감당하면서 경험했던 세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는 세브란스 직원수양회를 새로운 컨셉으로 열한 번 개최했던 것입니다. 이전의 직원수양회는 교육 프로그램의 성격과 과제수행의 성격이 강해서, 직원들이 참석하기를 회피했다고 합니다. 저는 아카데미팀장과 조직문화팀장, 노조위원장 등을 원목실장실에 초대해서 직원들의 힐링과 충전에 비중을 둔 직원수양회를 제안했습니다. 기독교적인 정체성의 확인과 공동체성의 강화는 부수적인 목표였습니다. 봄과 가을, 각각 120명에서 150명의 직원을 초청해 2박 3일의 직원수양회를 개최했는데,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95점에서 98점을 기록했습니다. 참가했던 두 분의 소감이 기억납니다. 미화 여사 한 분은 저에게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인생 처음으로 인간다운 최고의 대접을 받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정년 은퇴를 바로 앞둔 어느 팀장은 “교직원수양회에서 세브란스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브란스에서 30여 년 생활하는 동안 최고의 행사였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며 교직원수양회가 중단되었는데, 속히 재개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다른 하나는 연세의료원 생명의료윤리 포럼을 만들어 운영한 것입니다. 어느 날 교수회의의 시작 기도를 위해서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방문했고, 회의가 끝난 후 강남세브란스 교수님들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취과의 한 교수님이 저에게 오셔서 약간은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세브란스 병원에 치료의 어떤 기준이 있습니까. 우리가 기독교병원이라고 말하지만, 임상교수들이 기독교적인 정체성에 근거해서 치료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교수마다 치료하는 기준이 다른 데, 기독교 병원이 이래도 되는 것입니까?” 그 교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머리에서 쿵 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제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자책이 따랐습니다. 다음 날 점심에 평상시 신뢰하던 의료선교센터 소장 안신기 교수님과 의료윤리를 전공한 이일학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저 역시도 기독교윤리학을 전공하는 교수입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서 만든 것이 ‘연세의료원 생명의료윤리 포럼’이었습니다. 우리는 학기 중 네 번, 일 년 여덟 번의 포럼을 개최했고, 내부 교수님들과 실무자들 중심으로, 때로는 외부 전문가를 모시기도 했습니다. 매번 30명 내외의 교직원들이 참석해서 강연을 들었고, 진지하게 토론하며 생각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포럼을 4년간 운영하고, 결과물을 모아 출판한 것이 <생명윤리의료포럼: 의학, 법학, 신학의 대화>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연세의료원 임상 치료의 기준일 수는 없겠지만, 의료행위의 기준을 잡으려는 나름대로의 몸부림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제가 보직을 마감하며 <세브란스 감동이야기>라는 저서를 출판한 것입니다. 저는 연세의료원에 있으면서 감동적인 사건들을 적지 않게 경험했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적지 않게 들었습니다. 저 혼자 경험하고 저 혼자 듣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들이라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더욱이 연세의료원 바깥인 본교 캠퍼스에서 생활하던 저의 시각이 내부 구성원들보다는 더 객관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여 개의 항목으로 내용을 정리한 후 제1장에서는 세브란스의 정체성에서 오는 감동을 다루었고, 제2장에서는 돌봄의 과정에서 오는 감동을 다루었으며, 제3장에서는 나눔의 과정에서 오는 감동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제4장에서는 섬김의 과정에서 오는 감동을 다루었습니다. 우리 세브란스는 기독교적인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감동을 연출했고, 환자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가운데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자기 재물과 재능을 기꺼이 나누는 가운데 감동을 연출했고, 국내외 어려운 환자들과 의료기관을 사랑으로 섬기는 가운데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저는 세브란스의 모든 구성원이 세브란스에서 일하며 스스로 감동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책이 출판된 후 저의 소망을 아신 당시 윤동섭 의료원장님께서 <세브란스 감동이야기> 책 14,000권을 주문하셔서 전체 교직원에게 선물하셨습니다. 그 일은 지금도 저에게 큰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이보다 좋은 책이 출판되기 전까지는 신입 교직원들에게 이 책이 지속적으로 나누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정년을 앞둔 제가 세브란스병원과 연세의료원에 바라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제가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으로 보직을 감당하면서 실행하고자 했지만, 이루지 못한 것들입니다.
첫째는, 연세의료원의 모든 기관이 자신이 창출한 순수익에서 1/10의 십일조를 떼어 국내외 환자나 제3세계 가난한 병원, 또는 어려운 국가의 의과대학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대개 자신의 한 달 수입에서 1/10을 교회에 헌금합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심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십일조는 인간의 생명과 삶의 주인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됨을 고백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십일조의 사용처는 제사를 당당하는 레위지파 제사장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것이 일부였고,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위한 사회적 구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세브란스병원은 제중원 이래로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온 전통이 있습니다.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인 박서양 선생이 북간도에서 구세병원을 운영할 때 환자들 중 1/3은 무료 환자였습니다. 개원 이래로 우리 세브란스병원과 연세의료원은 많은 기부자와 국내외 교회, 기관들의 사랑의 지원으로 유지되었고 이습니다. 이제는 그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최근 연세암병원이 중입자센터를 설치했습니다. 비용이 너무 비싸 가난한 환자들이 치료받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의료원장님, 세브란스병원장님, 암병원장님 등 관계자분들이 십일조를 결단하셔서 중입자센터에서 치료하는 환자 열 명 중에 가난한 환자 한 명 정도는 무료로 치료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세브란스가 노사공동결정권을 실행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은 모두 사립 기관이지만, 주인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주인이 없지만, 공동체에 대한 헌신성이 높은 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노사공동결정권이란 노동자가 경영진과 동등한 수준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입니다. 경영의 민주화를 통해서 노사갈등을 예방하고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장점이 큰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산업계에서는 별로 실행이 되고 있지 않지만,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등 선진 국가들에서는 보편적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기관인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은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경영자든 노동자든 모두가 동일한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선진국들의 경우 노동자들이 1/3에서 1/2의 의결권을 갖고 있는데, 서로 신뢰하며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노조 측에 1/5의 의결권이라도 우선 배분하고,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셋째는, 장애인 의무 고용의 비율을 충족시키자는 것입니다. 한국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를 보면, 50인 이상 민간 사업장의 의무 고용률은 3.1%입니다. 미충족 시에는 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1인당 23,712,000원의 페널티를 내야 합니다. 3년 연속으로 미충족할 경우는 부가금 10~30%가 추가로 징수됩니다. 그러나 의무 고용률을 초과할 시에는 월 50만 원에서 12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고, 소득세와 법인세의 5~10%를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비 2억 원까지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적지 않은 기업들이 페널티를 감수하고 있고, 우리 세브란스병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현재 세브란스병원은 장애인 직원 205명을 고용함으로 전년 대비 38.5% 고용률이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미고용인의 수가 여전히 170명이나 됩니다. 이로 인해 40억 원 정도의 패널티를 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은 법적 의무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들이고,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기관인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어느 기관보다 장애인 고용을 앞장서서 실행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연세의료원 교직원 여러분,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에 키와 지혜가 자랐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받았다고 했습니다. 키와 지혜의 자람은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의미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받았다는 것은 영적인 건강과 사회적인 건강을 의미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어린 예수처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욱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도 운영의 모든 측면에서 더욱 건강한 기관으로 우뚝 자리 잡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세브란스다움을 찾아서 실천하기로 작정하는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온 누리에 가득 넘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