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 전 오늘...
4시 55분 서도원
5시 30분 김용원
6시 05분 이수병
6시 35분 우홍선
7시 05분 송상진
7시 35분 여정남
8시 05분 하재완
8시 30분 도예종
4.9통일평화재단 이창훈 사료실장이 지어 최근에 펴낸 인혁당재건위 사건 사형수 8인의 약전 <다시, 봄은 왔으나>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은 독재자 박정희에 의해서 고문, 조작된 인혁당재건위 8분이 사형 당한 날.
사형 선고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되었다.
오늘 한겨레에 고경태 기자가 강순희 님을 인터뷰해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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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가 50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우리 변호사가 박정희랑 대구사범학교 동창이었어. 어떻게든 사형만 면하게 해달라 부탁하러 간다고 했는데, 가기도 전에 아침에 죽였다는 말을 전해 들은 거야. (당시 18살이었던) 큰딸이 (서울구치소에 가서) 아버지 시체를 운구해왔어. 까무러쳐 정신없이 울었지.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에 아이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바짝 드는 거야. 그다음부터 안 울었어. 남편을 파주공원묘지에 묻었는데, 아들 하나, 딸 셋 숫자대로 나무를 네 그루 심었지.”
그나마 강씨는 남편의 주검을 인수해 장례라도 치렀다.
사형 집행 다음날 주검을 인수해 미사를 드리려 서울 응암동성당으로 향하던 송상진(1928년생)의 유족들은 크레인을 동원한 경찰에 영구차를 탈취당했다.
경찰은 영구차를 고양 벽제 화장터로 끌어 가 주검을 강제로 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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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50년 전이지만, 우리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윤석열 내란으로 확인했다. 아직 내란 잔불이 꺼지지 않았다. 오늘 고경태 기자의 인터뷰 기사는 꼭 읽어주시길. 그리고 오늘 국회 추모제에 오시면 전시회도 보실 수 있다.
(인터뷰 기사 보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143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