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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9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 형통한 삶> 1. 여호수아의 등장과 땅에 대한 약속(1-4)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서가 시작..

ree610 2025. 1. 1. 11:59

여호수아 1:1-9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 형통한 삶>

1. 여호수아의 등장과 땅에 대한 약속(1-4)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서가 시작됐으며, 여호수아가 죽자 여호수아서가 끝났다.
철저히 여호수아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쓰인 것이 바로 여호수아서다. 여호수아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약속과 성취에 대한 기록이다. 신명기를 통해 약속하신 것이 여호수아서에서 비로소 성취되었다.
본서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과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거룩한 전쟁과 헤렘 사상이 깃들어 있다. 이것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량학살로 오인하며, 현재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여 폭력을 정당화하는 본문으로 사용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결국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땅이라는 큰 물줄기 속에 흐르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 다운 삶,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에 순종할 때 그들은 땅을 얻을 수 있었다.(개관)

모세의 죽음으로 여호수아 시대가 막을 열게 된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백성들과 일어나 요단 강을 건너서 그들에게 내가 허락한 땅으로 가라고 하신다. 여호와의 종인 모세에서 그를 수종하던 여호수아에게 모세의 모든 사역이 위임된 것이다. 이것을 주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니 여호수아는 이미 이스라엘을 이끌 모든 준비를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차지할 구체적인 지명까지 알려주셨다. 그들이 닿는 곳은 어디가 되든지 모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남쪽으로 시작하여 북쪽, 서쪽에 이르기까지 그곳에 속한 땅을 주시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셨다. 그러나 아직 언급은 되지 않았지만, 말씀에 대한 그들의 순종과 믿음의 여부에 의해서 그 땅의 소유는 결정된다.(1-4)

2. 하나님의 약속, 말씀 순종, 담대함(5-9)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 한 개인에게 너를 앞으로 막을 자가 없으며 모세와 함께 한 것처럼 너와 함께 하며 너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을 당해낼 사람은 없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얻었기에 모든 것을 얻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절대적 지지와 같은 편이 되어주신다는 의미다.
전쟁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의 편이 되어주어 이기게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즉, 함께 하심은 그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보증수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모세가 함께했던 믿음과 승리의 흔적이 이젠 한 세대를 지나 여호수아를 통해 드러날 것을 암시한다.(5)

하나님을 얻은 자가 갖춰야 할 것은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다. 담대함을 강조하는 것은 머지않아 이뤄질 전쟁 때문이다.
전쟁은 언제나 두려움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전쟁의 승리의 주인이 바로 여호수아가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담대함은 근거 없이 가지라는 용기의 선언이 아니었다. 그 기저에는 말씀에 대한 순종이 강조되고 있다.
단순하게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밤낮으로 읽고 묵상하고 공부할 뿐 아니라 그 말씀을 삶으로 지키고 행한다면,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믿음과 담대함을 얻게 되어 가는 길이 순조롭게 될 것이라 하셨다. 세속적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형통의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며, 그것이 바로 평탄함과 형통함의 길이다.(6-9)

3. 삶 속으로...
2025년도 새해가 밝아왔다.
매일 말씀 묵상을 올린 지 어느덧 6년째다. 아버지 소천과 코로나 발병으로 인해 각각 2주씩 총 한 달을 제외하고는 매일 말씀을 올렸다. 휴가를 가거나 새벽부터 장례 인도가 있는 경우는 전날 미리 묵상을 해놓고 당일 날 올리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부교역자라는 치열하고 분주한 삶 속에서 말씀 묵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특히 게으르고 시간 활용을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묵상의 습관을 들인 것은 더 놀라운 일이다. 주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매일 묵상을 할 수 있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간단하게 답한다. “그냥 해야 되니까 한다”고. 사실 나라고 어떻게 매일 기쁨으로 했겠는가! 그런데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서 그날 날짜를 빨리 써버린다. 그러면 “아 오늘도 해야 하는구나” 하면서 그냥 하게 되었다.

내가 매일 말씀을 묵상한다고 해서 묵상 제일주의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묵상을 해야 한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나님과의 접촉점을 찾으면 된다. 매일 말씀을 묵상한다고 해서 특별한 신앙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도 여전히 매일 넘어지고 시험에 드는 똑같은 신자일 뿐이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니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이나 사건들을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잠시 멈추게 되더라. 이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혹시 다른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 라며 고민하며 질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묵상은 생각과 행동을 한 템포 늦춘다. 쉽게 판단하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삶의 양식의 속도를 늦추게 한다.
우리가 항상 넘어지고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제나 선택 때문이다. 생각나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때문에 우리는 매번 넘어지고 실패하지 않는가? 그러나 말씀은 이런 우리의 성급함과 조급함을 유보시킨다. 과연 그것이 맞는 것인지 다르게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인지 멈추게 하고 묻고 또 묻는다.
한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곤고함과 환난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 안에 길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는 것이다.
희미하더라도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오직 말씀임을 나는 믿는다. 혹여나 말씀을 통해 그 길을 찾지 못하더라도 말씀 안에 푹 잠겨 살아가는 것 자체가 가장 의미 있는 삶임을 나는 믿는다.
매일 말씀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두려움과 불안함을 넘어 어떤 곳이라도 도달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 앞에 서 있다. 비록 인생이 평탄하게 되지 않거나 형통하지 않아도, 말씀과 함께 라면 그것이 평탄한 길이고, 그것이 형통한 삶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