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비한(耳鳴鼻鼾)이라는 말이 있다.
물놀이하던 한 아이 귀에 물이 들어가 귀에서 자꾸 파리 소리가 들린다. 신기해서 제 동무더러 귀를 맞대고 그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고 하자, 자기와 공감해주지 않아서 안타까워 했다. 자기에게만 이명의 병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인데 말이다.
시골 주막에 여러 과객이 한 방에 투숙했다. 한 사람이 코를 심하게 골아 다른 사람이 잘 수가 없다. 견디다 못해 그를 흔들어 깨워 '코 골지 말라'고 했더니,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느냐'고 발끈 성을 냈다. 다 듣고 괴로워하는데 막상 본인 자신은 못 듣고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공작관문고자서'(孔雀棺文稿自序)에서 들려준 이야기이다. 귀울음(耳鳴)과 코골기(鼻鼾)가 항상 문제다. 이명은 자기만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골기는 남은 다 듣지만 자기만 못 듣는다. 분명히 있는데 한 쪽은 모른다. 내게 있는 것을 남이 알아주지 않거나, 남들은 다 아는데 자기만 못 듣고 몰라서 문제다.
연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자기가 병적인데도 남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고, 비한은 그다지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알고 싫어하는 것에 화를 낸다. 그러니 자기가 가진 정말 좋은 것을 남이 안 알아주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또 반대로 코골이 정도가 아니라 진짜 치명적인 약점을 남이 지적하면 그 분노가 어떻겠는가.
자기가 코 고는 것을 몰랐는데 남이 지적해주면 깨닫고 고마워해야 하는데 거부하고 역정을 낸다. 성현들은 "자기를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그를 참 스승으로 알라"고 가르치는데 말이다.
하지만 ‘소통’이 쉽지 않다. 내 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맘을 잘 헤아려 내 맘같이 생각을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좋은 의견, 생각을 지녔는데도 남이 안 알아주면, 또 내가 지닌 치명적인 약점을 남이 지적하면 ‘소통’이고 뭐고 모두 ‘먹통’이 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예로부터 성인군자들도 늘 이명비한을 경계하는 말씀을 많이하셨다. 우리가 늘상 듣는 방하착(放下着-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니 하심(下心-마음을 크게 비우는 것)이니 이런 말들이 자신을 돌아 보고 허물을 짓지 않도록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심의 마음에서야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 않을까?
- 계숙히 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