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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3:19~39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찬송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Ⅱ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로 (애 3:21-36)

ree610 2024. 10. 21. 18:52

예레미야애가 3:19~39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찬송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Ⅱ.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이로 (애 3:21-36)

여기에서 구름은 흩어지고 하늘이 개이기 시작한다. 즉 본문에는 분위기가 바뀌어 시온에서 애통하던 자들이 조금씩 즐거움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망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찢긴 채로 있다. 선지자는 여기서 완전히 찢어진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회상`한다. 그것은 소망의 근거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21절). 중심에 회상한즉. 어떤 역본에는 `내 마음을 돌이켜본즉`으로 되어 있다. 때때로 우리 마음 속에 지니고 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 마음에 돌려 주실 때까지 잊혀진 상태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마음을 돌이켜본즉 소망이 있나이다. 그것이 저희가 자꾸 절망으로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지켜 주나이다."

(1) 현재의 상황은 좋지 않지만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나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진멸되지` 않는다(22절).

(2) 그들은 비록 깊은 고통 중에 처해 있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 언약의 신실성을 체험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고 여러 번 불평했었다(참조.애 2:17,21). 그러나 이제 스스로를 바로잡고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여호와의...긍휼이 무궁하시므로. 하나님의 긍휼은 진실로 무궁하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자신의 긍휼하심을 닫아 버리신 것같이 보일지라도 실상은 그렇지 아니하다. 그의 자비는 강물 같아서 결코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 넘친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23절). 우리는 매일 아침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새롭게 경험한다. `아침마다 자기의 공의를 드러내시며`(습 3:5). 우리의 위안거리가 끊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긍휼은 끊이지 않는다.

(3) 하나님께서는 현재나 앞으로도 그의 백성들에게 풍족한 행복을 채워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24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가 이 세상에서 갖고 있는 모든 것과 자유, 생활, 심지어 생명 그 자체를 잃는다 해도 하나님께 대한 나의 관심은 잃지 않으리라."

(4)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를 믿는 것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25절).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기도로 `구하여야` 한다. 우리가 그를 구하는 것이 기다리는 자세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이것은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위로와 만족이 될 것이다). 그 구원이 올 것을 바라고 오기를 기다림에 있어서 우리는 고요하고 잠잠한 가운데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지 말고 그 처분을 묵묵히 따라야 한다. `아버지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5) 고통은 사실상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견디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구원을 기다리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이지만 그 사이에 고통을 받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이다(27절).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많은 젊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선지자는 이 포로 생활의 멍에가 그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며 또한 이렇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쓰다 보면 이것이 결국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멍에는 고통의 멍에를 의미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젊었을 때에 이 멍에를 지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멍에는, 그것을 지지 않는다면, 길들여지지 아니한 황소와도 같이 교만하고 방종해지기 쉬운 자들을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6)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그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신 때를 따라서 적절한 위로를 주실 것이다(31,32절). 우리는 다음 사실로 인해 고난을 견디어낼 수 있다.

(7) 하나님이 우리를 슬프게 하신 것은 거룩하고 지혜로운 뜻을 위함이다. 그는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33절).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즉 `본심에서` 그리 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죄인의 죽음이나 성도들의 불안함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마지 못해서 하는 것이다. 그는 피조물 중 어떤 것이라도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는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이 고통스러워하시고, 그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영혼이 슬퍼하신다.

(8)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바로 세우실 때에, 사람들을 그 손이나 또는 그 손의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그들이 저지르는 불의함과 잘못을 기뻐하지 않으신다(34-36절). 하나님의 백성은 두 가지 방법으로 원수들에게 고통을 받는데, 이중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서는 허락지 않으신 것이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예레미야 애가 3장33절 / 개역개정)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 하나님의 본심

* 중심에 있는 소망(3:21)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본문의 말씀은, 내외적인 상황을 보면 전혀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유일한 소망은 여호와께서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주시나 진멸치는 않으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즉, 여호와의 존재 자체가 그의 백성들의 미래를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 성실하심이 크신 주님(3:22, 23)
본문에 언급된 자비는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그의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긍휼은 이 자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주의 크신 성실하심을 고백한 것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언약이 인간의 타락과 불신으로 인해서 파기될 지경에 이르러서도 완전히 깨어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성실성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죄악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즉시 돌이켜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주님! 고난중에도 주님의 긍휼을 바라며 죄를 회개하고 즉시 돌이킬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