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정과/설교 자료

예레미야애가 2:11~22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찬송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Ⅱ. 시온의 슬픔 (애 2:10-22)

ree610 2024. 10. 19. 16:02

예레미야애가 2:11~22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찬송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Ⅱ. 시온의 슬픔 (애 2:10-22)

(1) 그들의 슬퍼하는 모습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아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1) 항상 당당한 제복을 입고 다니던 재판관들과 행정관들이 그 옷을 벗고 애통하는 자의 옷을 입었다. 장로들은 이제 더 이상 다윗의 집의 보좌인 재판석에 앉지 않고 땅에 앉았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할 말을 잃고 `잠잠히` 앉아 있었다. 티끌을 머리에 무릅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2)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항상 쾌활하던 그들은 이제 슬픔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3) 선지자 자신이 애통하는 자의 한 본보기가 된다(11절). 눈이 눈물에 상하며. 그는 더 이상 울 수 없을 때까지,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예레미야 자신은 이웃들에 비하여 한결 나은 상태이며 오히려 전에 그 백성에게 당하던 때보다 훨씬 편한 상태였다. 백성들의 멸망이 자신의 구원이 되겠지만 그는 공공의 유익에 신경을 쏟아 개인적인 유익은 묻어 버렸다. 그는 흡사 자신이 이 재앙의 가장 큰 피해자라도 된 듯이 `백성이 패망한` 것을 애통해 하였다.

(2)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18절). 혹자는 이것을 쓰라린 고통의 외침이라고도 하나, 그들 대부분은 고통 중에서 진실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그들에게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처녀 시온의 성곽아. "성벽 위에 서 있는 파숫군(사 62:6) 이 원수들이 포위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거나 성벽의 무너짐(성이 함락된 후 약 한 달 뒤에 무너졌다) 때문에 처녀 시온으로 하여금 애곡하게 하라." 오랜 후에 느헤미야도 같은 이유로 애통하게 된다(느 1:3,4).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끊임없이, 쉬임없이 애통하게 하라."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이 재앙은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슬픔의 원인도 자주 생길 것이다.

(3) 슬픔의 원인에 대하여 설명한다.

1) 많은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었다. 하나님은 얼마전에 심한 한발로 식량 부족을 일으켜 그들을 바로 잡으셨었다(렘 14:1). 그리고 이제 그들은 엄중하게 포위하시사 기근을 극한 상태까지 몰아 넣으셨다. 따라서 어린 자녀들이 어미의 품에서 굶어 죽어갔다(11절). 이것은 19절에 다시 반복된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 자기 어미의 손에 죽어서 먹히운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20절).

2) 많은 사람들이 칼에 살육당하였다. 칼은, 갈대아인들같이 잔인한 원수들 손에 있을 때에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된다. 그들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아이나 노인이나 모두 죽였다. 그 칼날을 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똑같이 `칼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내 처녀들과 소년들이 칼에 죽었나이다(21절).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다.

3)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았다(14절). 예레미야는 오래 전에 이 사실을 알고 애통해 하였으며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렘14:13).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그는 이 말을 애가에도 삽입하였다. 그들의 묵시는 모두 그들 자신의 공상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꾸며낸 그 묵시가 가짜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4) 이웃이 그들을 조롱했다(15절).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이 고작 이것이냐(시 50:2) 어찌하여 이제는 온전히 추하게 되었느냐 아름다움은 모두 어디로 갔느냐"

5) 원수들이 그들을 정복하였다(16절). 예루살렘에 대하여 좋지 않게 생각하던 이들은 이제 그들의 `입을 벌렸다.` 아니 `입을 넓혔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들은 경멸하고 모욕하는 듯이 `비소하고 이를 갈았다.

6) 이 모든 일로 보아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이키신 것처럼 보이셨다(17절).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적대하여 정하신 일들은 실상 그들을 위한 것이다. 이 사실은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율법을 범하면 어떠한 심판이 내려질 것인지 말씀해 주셨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그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에 이미 선포하신 것을 집행하셨을 뿐이다.

(4) 그들은 이 슬픔을 치료하기 위한 위안을 구했는데, 그 위안이 여기에서 처방되어진다. 그들은 위안을 구하였다(13절).  `내가 무엇으로 비교하여 너를 위로해 주랴.` "어느 성, 어느 나라가 너와 비교할 만한 고통을 받고 있겠느냐. 아! 그런 곳과 그런 슬픔은 아무데도 없도다. 왜냐하면 너만큼 존귀함을 입었던 곳이 없기 때문이라."  여기에 처방된 치료 방법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이끌어 내어 회개하는 기도로써 하나님께 그 상황을 완전히 맡기는 것이다(19절). 그 기도는 즉시 시작해야 하며 또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혼란과 절망에서 일어나 `밤 초경에 부르짖도록` 하여라. 남들이 잘 때에 너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그 자비하심을 끈질기게 구하라. 밤의 4경중 초경에,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쏟듯 하여라.` 마음을 열어놓고 자유롭고 완전하며 성실하고 진지하게 기도함으로 네 처지를 하나님께 모두 펼쳐 놓아라. 하나님을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손을 들어 그를 향하고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라.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예레미야 애가 2장 11절/ 개역개정)

** 배고픔의 고통

* 예루살렘 패망에 대한 탄식(2:11-16)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패망으로 인한 슬픔을, 눈이 눈물에 상하며 창자가 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졌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기가 막힐 처지와 원수들의 조롱을 묘사합니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역할 때문에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고, 사실 말씀의 기근 때문에 굶주리며 상한 심령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현실을 보고 예레미야와 같은 탄식과 슬픔, 긍휼을 가지며, 하나님 때문에 소망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2:17)
이는 율법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는 저주나 위험을 말합니다(레26:14; 신28:15-19). 또한 포로기 이전의 심판 예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이며 계획하신 일이라면, 이는 그 고난이 제거될 날이 있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른 유다의 멸망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소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 속에 있는 것임을 고백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경책은 우리의 골수가 녹고 육체가 핍절하여 메마르나 생명은 주께 있사오니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