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왕기하 25:8~30
<빼앗긴 유다에 봄은 오는가?>
찬송 487장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Ⅱ.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 (왕하 25:8-21)
(1) 예루살렘과 성전이 불탔다(9절), 다윗이 준비하였고, 솔로몬이 이와 같이 막대한 경비를 들여서 건축한 그 집,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고 하신 그 집(왕상 9:3)이 재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성전을 불타게 하심으로써 참된 경건의 생명과 능력이 무시될 때는 예배의 외적인 화려함에는 별 관심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백성들은 죄 가운데 있는 그들을 마치 성전이 보호해 줄 것처럼 성전을 믿었다(렘 7:4).
(2) 승리한 갈대아 군대는 그렇게 오랫동안 예루살렘성 밖에서 있었던 것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벽을 철저히 헐어 버렸다(10절). 그리고 난 후 이 성벽은 느헤미야 때까지 보수되지 못하였다.
(3) 백성 중 남은 자들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아갔다(11절). 백성 중에 유다 땅의 가난한 사람들은 들을 경작하고 갈대아 사람들을 위해 포도원을 가꾸도록 뒤에 남겨 두었다. 어떤 때는 가난이 보호책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4) 금과 은 기물들은 대부분 지난 번에 가져갔고, 이번에는 놋 기물들과 다른 성전 부속물들을 바벨론으로 옮겨갔다. 하나님의 집의 능력과 안정을 상징하던 두 놋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완전히 조각으로 부수어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다(13절).
(5) 귀족중에 몇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이것으로 재난이 마무리되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후 약860년만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21절). 죄는 이스라엘 조상들을 40년간 광야에 잡아두었었고 그 죄가 이제는 그 후손들을 그 땅에서 제거시켜 버렸다.
Ⅲ. 나머지 백성의 무산 (왕하 25:22-30)
(1) 남아 있던 백성들도 제각기 분산되었다. 예루살렘 성읍은 황페된 채 버려져 있었다. 유다 땅에는 소수의 백성들이 있었는데(22절), 이들은 맹렬한 공격에도 살아 남았고, `자기들의 생명을 그들에게 먹이로 준` 사람들이다. 바벨론 왕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그달리야를 그 땅의 보호자와 관할자로 임명하였다. 그는 아주 선한 사람이며, 좋지 않은 상황 가운데에서도 최선을 다하려는 사람이었다(22절). 그의 아버지 아히감은, 모든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할 때에 그를 지지하고 보호한 사람이었다(렘 26:24).
이 그달리야가 예레미야의 조언을 듣고 갈대아 사람들에게 건너가서 스스로 잘 행동하였음으로 바벨론 왕이 그에게 행정을 맡겼을 가능성도 있다. 그는 예루살렘이 아닌 베냐민 땅 미스바에 거하였다. 이곳은 사무엘 시대에 유명하던 곳이다. 그리고 시드기야에게서 도망친 자들이(23절) 미스바로 와서 그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달리야는 비록 주권적인 왕의 권위와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였지만 유다의 대부분의 왕들보다 유다 백성들에게는 더 큰 복이 되었다. 그러나 이 희망에 찬 정착 생활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왕족인 이스마엘이 그달리야가 지도자로 우대된 것과 그의 보호 아래 백성들이 행복하게 정착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그달리야와 그달리야의 지지자이면 유대인이든지 갈대아인이든지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을 야비하게 살해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마지막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장의 마지막 구절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신 28:68).
(2) 포로된 왕이 지위가 회복되었다. 스스로 항복한 여호야긴 혹은 여고냐(24:12)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다.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즉시 여호야긴을 옥에서 석방시켰다(그는 37세에 옥에 갇혔으며, 당시는 55세였다). 그리고 그에게 `선히 말하고`(28절), 죄수복 대신에 왕복을 주고, 왕의 궁전에서 살게 하였고,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하여 그의 신분에 맞게 연금을 허락하였으며, 종신토록 날마다 정수대로 쓸 것을 공급하였다. 정말 오랫동안 수치와 옥에 갇혀 있은 후 명예와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주 캄캄하고 지리한 밤이 지난 후 아침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
에윌므로닥은 자신의 아버지가 포로들의 멍에를 너무 무겁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온유함에 따라, 왕의 명예에 따라, 멍에를 가볍게 해주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미쳤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 기간 동안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들 에윌므로닥을 감옥으로 보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때 옥중에서 여호야긴과 친분을 맺었고, 그 결과 그가 권력에 오르자마자 고통당하는 자인 여호야긴에게 함께 고통당했던 자로서 이 친절을 베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에윌므로닥이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로부터 참 종교의 원리를 배웠다고 주장한다. 이제 70년 가운데 36년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와 같이 대우가 나아진 왕을 보는 것이 포로된 백성에게는 적당한 시기에, 정해 놓으신 시기에 그들 자신들의 해방을 예고하는 위로를 주는 징조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황한 일을 당할 때, 우리도 좌절하지 말자.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열왕기하 25장 16절/ 개역개정)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 유린 당하는 예루살렘
* 멸망한 유다의 상태(25:8-12)
여호와의 전과 왕궁이 불살라졌고, 예루살렘 성벽이 헐렸으며, 백성의 힘 있는 자는 포로로 끌려갔고, 나머지 약한 사람만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이제 사라졌음을 의미하며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것은 그들을 보호할 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예루살렘 성전 파괴(25:9)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교만히 자행자지하는 인생들과 더 이상 교제하기를 원치 않으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성전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각종 제사와 예배도 헛된 일임을 일깨워 줍니다(말1:10). 성전으로 대표되는 구약 율법의 한계를 일깨우며, 동시에 참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대망하도록 만들어 줍니다(요1:14). 이런 형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지존하신 모습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이 주는 교훈 (25:27-30)
인생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살지만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말씀을 거역하면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성도의 마지막 역사도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는데 염소처럼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양처럼 겸손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 때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쓸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금생과 내생에 큰 상급이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죄악을 회개하지 않으면 토하여 버리실 것이요,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옵소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