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상해죄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캐나다 국적의 A 씨. 그는 교도소에서 다른 수형자에게 상해를 가해 징역 1개월을 추가로 선고받고 교도소 내에서 '일반경비처우급' 수형자로 분류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7월 A 씨는 교도소장에게 어머니와의 전화통화를 신청했으나 처우등급에 비춰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불허 당했다. 3개월간 어머니와 통화하지 못한 A 씨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 2심 모두 승소했다.
2021년 11월 1심 대전지법은 "교도소 내 공중전화 시설이 부족해 수형자들의 전화통화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접견과 편지 수수가 제한되는 특수한 상황에서 월 2회 이내의 전화통화마저 허용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통신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시했다.
A 씨 사례처럼 수용자들이 헌법재판소, 법원 등에 처우 관련 법적 구제를 요구하고 교정행정에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나온 판례를 모은 책이 출간됐다. 국내에서 형집행과 교정 분야 판례선집이 나온 건 처음이다.
8월 30일 출간된 《교정판례백선》(박영사 펴냄)은 교정 관련 헌재 결정 62건, 법원 판결 56건, 인권위 결정례 7건 등 판례 125건을 엮었다. 총 650쪽에 이르는 책에 판례의 사실 관계 및 결정 요지, 상세한 해설이 담겼다.
법률신문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한인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 금용명 교도소연구소 소장,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에게 집필 의도와 발간 의미 등을 들어보았다. 책 집필에는 변호사, 판사, 법학 교수 등 법률가와 교정전문가 등 68명이 참여했다.
책 구상이 시작된 건 2019년이다. 천주교인권위는 형집행법 등 수용자 처우 관련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을 모은 《수용자를 위한 감옥법령집》을 2013년 발간한 데 이어 판례집을 발간하기 위해 2019년 '감옥 판례 공부모임'을 구성했다.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감행하는 교정시설 수용자에게 도움을 줄 판례집을 기획하던 중, '교정판례연구회' 발족을 준비하던 한인섭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한 끝에 판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해설을 제공하는 판례평석집을 펴내자고 의견을 모았고, 출간 작업이 시작됐다.
책은 총 세 갈래로 구성됐다. △수용자의 법적 지위와 소수자 차별, 정보 공개 관련 판례를 모은 '수용자 인권과 기본권' △수용 환경, 물품지급, 위생과 의료 문제 관련 판례들을 엮은 '수용자 처우' △신체검사, 보호장비, 조사 수용(수감자를 징벌 관련 조사 중 분리해 수용하는 것) 등을 다룬 '안전과 질서' 등이다. 김 연구위원은 "형집행법의 편제를 참조하되 법전 체계를 수용자의 권리와 처우 관점에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아래에선 교정기관 수용자의 인권을 주장하며 헌법적·사법적 구제를 시도하려는 발상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1987년 개헌과 헌정체제 수립, 1988년 헌법재판소 설립이라는 흐름 속에서 교정 법령과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점차 활발해졌다. 책은 헌재는 1992년 변호인의 미결수용자 접견시 교도관 참여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시작으로 미결수용자에 대한 사복착용권 인정, 수갑 및 포승시용에 대한 위헌 확인 등 교정행정과 수용자 처우에 많은 변화를 이끄는 결정을 선도했다고 강조한다. 이어 '인권침해 실태 조사 및 구제'를 담당하는 인권위가 교정 현실에 더 밀착해 개별 사건의 조사와 해결뿐 아니라 법률적 지침이 되는 결정례를 만들어 왔다는 설명이다.
책 집필을 이끈 한 교수는 "이러한 추세에 적응해 최근 사법부에 교정 관련 사건들이 밀려드는 추세"라며 "법원은 주로 국가배상, 위자료 재판을 통해 교정의 구체적 현실에 사법적 심사를 하고 있으며 수많은 판례가 쌓이며 이제 모든 수용자는 헌법 및 법률상의 기본권 향유의 주체이고, 자유 제한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는 점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 소장은 "30년간 교정행정과 수용자 처우에 대해 수많은 헌재 결정례가 축적됐고, 사법부 판례와 국가인권위 권고는 교정행정과 수용자 처우에 많은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다"며 "교도관으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그 동안 결정된 판례를 정리하고 이에 대한 평가에 활용함으로써 수용자 처우 방향에 대한 지침 마련과 교정운영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1992년 안동교도소에서 교도관 생활을 시작한 금 소장은 공주교도소장과 안동교도소장을 지낸 뒤 2021년 정년퇴임하고 현재 교정 관련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책은 교정 관련 소송을 진행하며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감행하는 수용자와 교정 분야에 몸 담고 있는 법률가, 행정가 등을 '주요 독자'로 염두에 뒀다.
2008년부터 천주교인권위에서 활동해온 강 활동가는 "헌법재판의 경우 변호사 강제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민사·행정 사건의 경우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용자는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자신의 처우와 관련된 기초적인 법령과 판례에도 접근하기 어려운데, 이러한 환경에서도 ‘나홀로 소송’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변호사 선임이 어려운 수용자의 경제적 사정 △변호사 등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교정시설 위치 등이 수용자의 나홀로 소송을 낳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교정 관련 사건은 소가가 낮은 편이어서 변호사들이 수임을 꺼리는 요인이 된다고도 짚었다.
저자들은 상대적으로 판례 형성이 더딘 교정 분야에 대해 관심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교정 사건은 수용자와 법무부, 교도소장 등 사건 당사자들이 상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대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하고 하급심에서 확정되는 판결이 많아 대법원에서 새로운 법리가 선언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학계와 실무에서도 교정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다 보니 법리의 세분화를 위한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편이고 기존 판례의 논리를 답습하거나 오래된 판례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형집행법과 교정시설 실무는 교정기관장의 재량권을 넓게 인정하고 있는데, 법원에서 '형식적 합법성'만을 고려해 교도소장의 처분 등이 합법적이라는 판결로 귀결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강 활동가는 "범죄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크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교정시설은 재범 방지에 실패해 '범죄의 학교'라는 오명을 지고 있다"며 "교정시설의 존재 이유가 징벌보다는 '교정·교화와 재사회화를 통한 재범 방지'에 있다면 구금의 부작용 해소와 수형자 처우의 인간화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사회의 감옥 현실은 그 사회 인권의 지표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죄를 지은 사람에게 무슨 인권이냐'는 여론이 확대될수록 감옥 안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은 방치되고 감옥 밖에서는 보편적 인권의 토대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 소장은 "2016년 헌재가 과밀수용이 수용자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위반이라고 결정했음에도 현재 대법원과 각급 법원은 과밀수용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노력과 경제사정 등을 고려하여 배상액을 결정하고 있다"며 "교정분야 판례연구에 더 많은 법률가와 시민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사법부의 변화가 교정행정에 대한 국가의 자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