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깊은 주일, 주님의 자비를 구하며, 몇 가지 질문을 쓴다.
다음 주일(10월 27일),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를 막기 위한 200만 기도회를 준비하고 있는 주최 측에서 발표한 100대 기도 제목을 기자의 요청으로 읽어보았다. 해외에서 많은 과제를 끌어안고 사느라, 여기 뉴스도 한국 뉴스도 듣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제일 큰 원인은 식사 시간에 뉴스를 들을 수 있는 TV가 집에 없다), 기자가 보내준 링크를 열어보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기도회 명목으로 광장으로 나가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세력 과시를 하는 듯한 모양새를 띠는 점에 대해, 기도회의 정치화라는 비판은 이미 많이 있었을 것 같다. 200만이 광장에 모여서, 그것도 주최 측이 정한 100가지 제목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예수님이 비판하셨던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외식하는 사람들과 자기의 의를 내세우던 “바리새인들의 기도”가 떠오른다. 나만 그럴까?
저들이 기도회를 연다고 하는 다음 주일은 종교개혁 기념 주일이다. 스위스 불어권의 종교개혁 확산에 큰 역할을 했던 종교개혁자 기욤 파렐은 기도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구하는 것 가운데 주기도문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이해한다.” 10.27 기도회의 기도 제목들은 과연 주기도문 안에 포함되는 것들인가? 내가 보기엔 저 기도 제목들은 주께서 가르치신 아름다운 기도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삶의 상황과 현실에 대한 무관심, 무관심의 결과인 깊은 연구와 성찰의 결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도 제목들의 나열을 보면서 한국교회가 왜 사회의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새삼 확인하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주일 아침, 하버드대학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데 한국교회 현실이 떠올라 깊은 근심을 가지고 기도했다. 근심이 깊어서인지 몸까지 아팠다.
내게 100개의 기도 제목을 보내준 기자는 그 가운데 한 가지 제목을 정해서 문제점을 써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그 가운데 앞으로 곧 논문을 써야 하는 주제인 동성애 문제에 대한 기도회 주최 측의 기도 제목 관련하여 짧은 생각을 나누고 싶다. 가장 먼저, 기도회 주최 측이 쓴 기도 제목에 나타난 동성애에 대한 이해가 과연 정당한 이해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많은 과제로 시간에 쫓기다 보니, 기자가 부탁한 글을 쓰지 못해 많이 미안했다. 그래도 교회에 대한 염려 때문에 함께 생각해 보기를 희망하는 몇 가지 질문을 쓴다.
한국의 기독교계, 특히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들은 오랫동안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들이 동성애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주된 근거는 성경에 나오는 동성애 관련 구절에 대한 문자적 해석, 자연법에 대한 단순한 이해, 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이다. 그러나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의 근거로 제시된 이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인권 문제에 대한 무관심: 동성애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인데, 이를 반대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 기독교는 본래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묵인하거나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인권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2) 성경의 문자적 해석 문제: 동성애에 대한 반대는 주로 성경의 특정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성경해석은 시대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한 고려를 무시한 문자적 해석은 종종 성경의 근본 원리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해석은 바리새인들의 율법해석처럼 성서의 근본 가르침과 모순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의 삶을 억압할 수 있다. 성경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사랑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특히 강조했던 중요한 성경해석의 원리이다.
3) 동성애가 자연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할 때 전제하고 있는 자연법 이해는 어떤 것인가? 자연법 해석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는가? 자연법을 해석하는 방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 왔다. 현대 생물학과 심리학 연구는 동성애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 동성애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 종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동성애가 자연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맥락에서 거론되는 자연법을 생물학적 성과 번식의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연법을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더 넓은 윤리적 원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법을 보다 포괄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동성애는 성적 정체성의 다양성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성애자의 눈에 동성애는 부자연스러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이성애자라면, 당신은 이성애를 선택했는가? 당신은 동성애자가 동성애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것이 그들의 타고난 본성이라면 당신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자세한 논의는 앞으로 쓸 논문에서...)
4) 사회의 다양성 수용 부족: 현대 사회는 성별, 성적 지향, 인종, 종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복합적인 사회이다. 동성애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5)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와 모순: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은 사랑이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마저 주신 하느님의 사랑 (요3:16). 성서의 하느님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는 분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반대하는 것은 성서의 하느님의 가르침과 양립할 수 있는가?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가 성소수자 그룹을 차별하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는가?
6)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 일부 기독교 단체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은 처벌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침해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특정 그룹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로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우려는 과도한 해석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한국 기독교계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는 종교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신념이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 신념이 성경의 근본적 가르침과 양립가능한 것인가? 좀 더 철저하게 질문하고 배우고 연구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특히 기독교의 '이웃 사랑'과 '정의'의 가르침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차별금지법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 손은실 목사(서울대학교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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