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재 명예교수님 별세]
어제 갑작스레 이교수님 별세소식이 전해왔습니다. 깜짝 놀라고 황망합니다.
작년에 설악산행에도 앞장선 데다, 일행들에게 즐거움을 더해주고, 계곡에서 1인춤까지 선사해주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다시 생각해보니, 1946년생이니 78세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최근까지 탈속한 행보로 짧은 시간 그답게 세상소풍 잘 보내시고 귀천하셨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이교수님은 노동법학자였습니다.
그의 지론을 한마디로 하자면,
"법은 큰 강이다. 그 강은 없는 자에게도 흘러야 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저높은곳을향하여 줄곧 눈을 치켜뜨고 있지 않은가. 낮은 곳이 없으면 높은 곳이 어떻게 있겠는가.
이제는 뜨거운 가슴으로 저낮은곳을 향하여 부드럽게 응시하는 법률가의 눈동자를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노동법에의 기여는 후학들이 되새길 일입니다. "창조적인 노동의 보람을 통해 주체적인 자유로운 삶을 향유할 권리"를 역설하고,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노동법의 의의와 기능은 무엇인가"로 거듭 자문했습니다.
우리 후배들에게 이교수님은 무엇보다 등산으로 기억됩니다. 이교수님은 등산을 통해, 후배 후학들도 동행자/동반자로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언젠가 그가 보여주는 "등산길의 리더십"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이교수와의 등산은 자연스럽다. 요란함이 없고, 장비도 단촐하고, 먹을 것도 필요최소한이다. 쓰레기도 없다. 산행을 마친 뒤 맥주 한잔, 오가는 대화들로 풍성하다.
험한 길을 갈 때, 이교수는 보통 뒤에 서서 앞사람의 무릎의 떨림을 느끼면서 완급과 쉼을 조절하고 전체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때로 앞장설 때는 뒷사람의 가쁜 호흡을 느끼면서 완급을 조절한다.
남이 모르는 가운데 약자를 기준으로 철저히 준비하면서 내색도 않는 것.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면서, 리더십이 있는지도 느낄 수 없게 하는 것들 말이다. "
사진을 급히 모아보니, 등산길에서 그는 늘 빛났는데, 혼자서 빛난게 아니라 모두를 빛나도록 격려해주신 분이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이교수님이 휘파람 불면 새들도 화답, 중창하는 그 순간들이 그립다못해 소중합니다.
생각해보니, 산처럼 물처럼, 오르면서도 낮은 곳으로 다가갔던 분이었습니다.
어느 후학이 쓴 글 한토막. "우리 생에 다시 그런 분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게 이흥재 교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 한인섭 교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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