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15대 총장이셨던 정창영 총장님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기에 부고를 전합니다.
오늘 오전 9시 30분 저는 입관예식의 집례자로서 그분을 환송하는 의식에 참여했습니다. 고 정창영 총장님과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위로하심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며, 설교내용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 빈소 :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 장례예식
2024년 5월 15일 수요일 오전8시
연세대학교 루스채플 예배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고 정창영 총장님의 입관예식을 시작하는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부활의 소망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고 정창영 총장 입관예식 설교(2024.5.13.)
산 제물 (로마서 12:1-2)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고 정창영 총장님께서 2024년 5월 11일(토요일) 오전 11시 15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지난달 정 총장님께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입원실을 방문해서 병문안을 드릴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실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정 총장님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속히 해방시키시어 당신의 품에 안아주시려고 크게 배려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이별로 인해서 슬픔과 안타까움이 크실 사모님과 자녀분들을 비롯한 모든 유가족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하심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고 정창영 총장님께서는 우리 연세대학교 15대 총장으로 취임하시어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던 것을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연세대학교가 송도에 넓은 부지를 마련하고 국제캠퍼스를 통해 제3의 창학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정 총장님의 결단과 리더십의 결과였습니다. 우리 교목실의 경우에는 정 총장님 시절에 루스채플의 부속건물 원일한홀이 건축되어 교목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대학 운동선수들이 연습장으로 주로 활용하던 일산 삼애캠퍼스를 정비해서 배민수 목사 기념관과 기념교회인 삼애교회를 시작했던 것, 연합신학대학원 내에 배민수 목사기념 장학생 제도를 운영했던 것, 이러한 가시적 조치를 통해서 배민수 목사 유가족과 학교와의 불편했던 관계가 정상화될 수 있었던 것은 정 총장님의 판단과 추진의 성과였습니다.
특히 정 총장님께서는 연세대학교에 재학하던 탈북민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셨습니다. 부모 형제와 고향을 떠나서 힘들게 생활하는 탈북민 학생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총장님께서는 매년 최소 한 번은 20여 명의 탈북민 학생들을 알렌관에 초대하시어 맛있는 오찬을 제공하셨습니다. 탈북민 학생들의 애로사항을 일일이 청취하셨고, 학교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것들을 해당 기관장들과 의논하시어 제도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찬 모임이 끝날 때는 선물까지 챙겨갈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2005년 제가 총장실을 방문하여 탈북민 학생들이 제주도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곧바로 아시아나 박삼구 회장께 전화를 거시어 왕복 비행기표 20장을 즉시 마련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작년 11월 18일 토요일 오후 5시 탈북민학생들 동아리 ‘통일한마당’ 20주년 기념식을 할 때, 총장님께서는 축사를 약속하실 만큼 관심이 크셨습니다. 그날 탈북민 학생들은 총장님께 진심 어린 감사패를 준비했는데, 최근 병실에서 제가 전달해드렸습니다. 총장님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지금 적지 않은 탈북민 연세 동문들은 변호사나 기자로, 연구원이나 은행원으로, 교수나 평화운동가로, 이 외에도 다양한 자리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통일한마당 동아리 지도교수를 해온 저는 정 총장님께서 탈북민 연세동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셨는지, 그들 탈북민 동문들이 총장님에 대해서 얼마나 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정 총장님께서 은퇴하시고, 북한 영유아 아동들을 돕기 위해서 재단법인 “함께 나누는 세상”을 설립하시어 이사장으로서 크게 노력하셨던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 총장님께서 총장님으로 재임하시던 시절 저는 연세대학교 교수평의회 12대 부의장으로 활동했던 시기입니다. 저는 교수평의회 일로도 총장님을 뵐 기회가 적지 않았습니다. 총장님께서는 교수평의회의 주요 임원들을 초대하시어 대화로써 시너지를 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언제나 소통의 통로를 만드시어 서로 오해가 없도록 학교 본부의 정책을 공유하셨습니다. 당시 교수평의회가 제안했던 상임이사제도를 없애고 법인 본부장제도를 세팅하는 안, 신촌캠퍼스와 의료원캠퍼스, 미래캠퍼스까지 모든 교직원이 상호 주차가 가능하게 하는 안, 교직원들의 복지를 더욱 향상시키는 안, 학내 구성원 간에 찬반이 심했던 신과대학 건축과 전파천문대 설치 관련 추진안, 등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정 총장님께서는 겉보기로나 실제로나 고고한 선비의 성품을 지니셨습니다. 총장님은 영국의 젠틀맨보다 더 젠틀하셨고, 은퇴 이후에도 상경대학 명예교수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시는 것을 한시도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학교 구석구석까지 돌아보시며 세심하게 챙기셨습니다. 심지어 총장님께서는 아침 일찍 교정을 둘러보시다가 쓰레기가 발견되면, 직접 쓰레기를 치우기까지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출근하면서 가끔 목격했기 때문에 아는 사실입니다. 총장님은 참 겸손하셨습니다. 어깨에 힘을 주시거나 목소리가 커지시거나 하신 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 총장님께서 우리 연세대학교 제15대 총장으로 재임하셨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입관예식의 설교를 위해서 제가 선택한 성경 말씀은 정 총장님께서 평상시 의미있게 생각하셨던 말씀이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말씀입니다. 정 총장님 재임 시절에 이 성경말씀의 내용을 언급하시면서 이 내용이 성경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채플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봉독해드린 로마서 12장 1절과 2절 말씀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 총장님의 삶의 흔적을 여실히 발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고 정창영 총장님께서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시고자 노력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정 총장님은 감리교회의 권사님이셨습니다. 섬기시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우리 신과대학의 동문이셨는데, 참 깍듯하게 진심으로 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목실의 활동에 대해서도 언제나 지지하며 도와주려고 하셨습니다. 온누리교회가 국제캠퍼스에 대강당을 지어주고 자신들의 지교회로 사용할 것을 제안했을 때, 총장님 입장에서는 큰 업적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교목들의 제안을 그대로 수용하셔서 없었던 일로 처리하셨습니다. 총장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총장으로 세우셨다고 고백하시며 당신의 총장직무는 물론이고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둘째로, 고 정창영 총장님께서는 이 시대의 풍조를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을 따르고자 노력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은 권력을 좋아하고, 재물을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합니다.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들 행동의 기준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공적을 자신의 업적으로 강탈하고, 자신의 과오를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이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 총장님은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셨습니다. 당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성과를 함께 일한 실처장들과 교직원들에게 돌리셨습니다. 연세 교직원들의 경조사는 물론이고 작은 일에도 관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총장님께서는 자기 자신보다는 학교를, 자신의 관심보다는 교직원들의 관심을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을 언제나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노력하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셋째로, 그러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신 고 정창영 총장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2000년에 연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교목실에서 일한 지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연세대학교 제14대 총장님으로부터 지금 20대 총장님까지 일곱 분의 총장님을 경험했습니다. 일곱 분의 총장님들 한 분 한 분의 면면을 보면, 연세대학교를 연세대학교답게 만드는 데 그 시점에 꼭 필요한 분들이 선택되셨다고 여겨집니다. 고 정창영 총장님은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또는 인간적으로 교수들에게든 직원들에게든 보편적으로 인정받으셨던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총장님을 기뻐하셨다고 봅니다. 그리하셨기에 은퇴하신 후에도 ‘삼성언론재단’에서든, ‘삼성경제연구소’에서든, 그리고 ‘함께 나누는 세상’에서든 재임 시절 못지않게 활발히 활동하셨고, 많은 교직원과 지인들이 총장님의 활동을 지지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정 총장님을 인정하신 결과였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제 설교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잠시 후 입관실에서 총장님을 입관하고 나면, 우리는 세상에서 총장님의 인자하고 온화하신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됩니다. 화장을 하시게 되니 봉분이 있는 무덤조차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총장님은 우리의 기억과 마음 속에, 우리 연세의 역사와 전통 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입니다. 오늘 입관예식에 참석하신 유가족과 우리 연세가족 역시 고 정창영 총장님의 아름답고 고고한 삶을 기억하며, 그 길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총장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며 전심전력하셨던 연세를 사랑하며 잘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총장님께서 최선을 다해 섬기셨던 학생들을 사랑으로 섬기며 지도적인 인재들로 배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총장님처럼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물로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시대의 풍조를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최윤희 사모님을 비롯한 모든 유가족과 이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가득 넘치기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지금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연세를 세우시고 15대 총장으로 정창영 총장을 세우시어 큰 발전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이별의 슬픔 가운데서도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용기있게 살아가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이 최윤희 사모님을 비롯한 모든 유가족과 우리 연세가족들 위에 그리고 연세대학교 위에 영원토록 함께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 정종훈 목사(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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