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ㅡ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 하나가 있었다
비가 내리고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대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모리아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러기 (0) | 2023.10.29 |
---|---|
안개 속에서 (0) | 2023.10.28 |
사랑이란 (0) | 2023.10.24 |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라 (0) | 2023.10.20 |
예수가 인터넷을 사용했는가 (0) | 2023.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