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이번 달에는 무슨 내용을 써야할지 꽤 막막했다. 본 코너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 속에서 기독교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을 소개하는 코너로 기획되었는데 갈수록 소개할 수 있는 꺼리가 줄어들고 있다. 필자는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기독교문화공간을 근 10여간 운영해오면서 해마다 가속되는 침체의 경향을 체감하고 있다.
1980, 90년대 대중문화는 속된 것이라며 터부시하던 시기를 지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화의 중요성을 외치며 문화비평, 문화콘텐츠 제작 등에 교회가 힘을 쓰기도 했다.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시도했던 '기독교 뮤지컬', '기독교 영화' 제작 등은 직접 선한 문화를 창조하자는 행동으로서의 큰 의미를 지녔다. 또 우리 교단에서는 총회문화법인을 설립하여 교단차원에서 문화사역에 힘써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개 교회의 입장에서 문화선교는 조금은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코로나 이후에 교인의 회복세가 70%에서 심하게는 50%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라든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든 교회의 숫자가 상당하기에 목회자의 이중직이 신학교의 필수과목이 된다든지 하는 상황이 더 긴급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대중문화 시장은 교회가 따라잡기에 이제 너무 멀리 달아나 버렸다. BTS, 오징어게임 등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세계를 휘어잡았다고는 하지만 제작비와 인력의 규모 등이 이미 교회가 넘보기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 되었다.
그렇다면 문화의 관점에서 우리는 희망이 없는가? 당연하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문화콘텐츠는 줄어들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속에서 복음의 가치를 전문성으로 풀어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 최근 방영종료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신기할 정도로 많은 기독교매체에서 관련 글을 쏟아냈다. '해방' '추앙' '축복' '환대' '구원' 등 기독교적 가치의 핵심을 담아낸 작품으로 많은 목회자들이 설교의 예화로도 활용했다.
"어려서 교회 다닐 때 기도제목 적어 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 관계 …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에요? 나 여기 왜 있어요?'"<나의 해방일지 11회 대사 중>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작가의 진심이 담긴 듯한 이러한 대사는 현대인들의 내면에 영적인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다. 최근 애플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8부작 '파친코'도 기독교적 가치와 신앙이 많이 녹아있다고들 한다. 전 세계 비평가들이 '기생충' '미나리'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한류작품이 될 거라 찬사를 보낸 이 작품은 이민진 작가의 4대에 걸친 신앙의 집안이야기이다. 물론 신앙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 곳곳에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사랑과 용서, 인내와 끈기, 가족사랑 등이 녹아 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놓고 그것이 얼마나 기독교적인가 논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고 소위 잘 된 작품들을 '우리편'(?)이라는 식으로 끌어당겨 해석하는 것은 자칫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도 신실한 그리스도인 창작자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감으로 선한 영향력을 품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이제 기독교라는 간판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반적으로 코로나 이후에 교계가 추운 겨울과도 같은 냉혹한 시기를 겪어 내야할 수도 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다. 기독교문화의 관점에서도 감내해야할 황폐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고의 방향을 약간 바꾼다면 세상 속에 흩어져 들어가 때론 익명의 모습으로 복음의 가치를 풀어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난다면 그것 또한 매우 가치있는 선교적 삶이 될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이재윤 목사/기독교문화공간 나니아의 옷장 대표, 주님의숲교회 담임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동체의 원리, 상호전달 (0) | 2022.10.01 |
---|---|
거룩한 슬픔 (0) | 2022.09.22 |
이젠 '왜'라고 묻자 - 밀란 쿤데라 (0) | 2022.07.07 |
마지막 수업 중에서 (0) | 2022.07.05 |
만남은 도끼입니다.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