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후보의 당내경선 당시에 나는 후원회장을 맡았는데 유감스럽게도 본선에서는 도와드릴 수 없게 됐다. 당내경선 지원은 문제가 안되지만, 내가 강원문화재단과 사단법인 선 등 비영리법인 이사장직을 맡고 있어서 선거운동에 제약을 받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후원회장을 맡은 후 만나는 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질문받은게 이후보님과 어떤 인연으로 알게된 것이냐였다. 나도 별 인연이 없다. 올해 6월 경기도 기후대응 산업전환 특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게되어 그 한달 전쯤 당시 도지사이던 이후보님과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눌 기회가 한번 있었다는것. 그전에는 2018년에 이화영 평화부지사실에서 처음으로 인사 한번 드린게 전부.
나도 원래는 성남시장 하실 때 포퓰리스트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다. 내 생각이 바뀐건 경기도지사가 되신 후 악성사채 피해근절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을 때였다. 때로 우리는 드라마에서 사채업자들이 형편이 열악한 채무자를 찾아가서 난동을 피우는 것을 보곤 한다. 실제로 사채업은 조폭과 많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안다. 악성사채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다는건 정말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모르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실제로 큰 성과를 내시기도 했다. 그 때 이 분은 정말로 현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알고 정책을 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감탄을 했다. 또 이후보님이 재판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계곡 주변 정화를 위해서 가게가 철거된 상인들이 앞장서서 탄원서를 제출해줬다는 일화를 줏어듣고서 이 분은 대화와 타협, 설득의 정치력을 갖고 계시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도지사실에서 이후보님과 한번 미팅할 당시에 느꼈던건 여러 현안-국내외, 외교문제까지-을 잠깐 서로 염려하는 부분들 거론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지 똑똑하시다”는 거였다. 똑똑하다는건 판단력을 뜻한다.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고 대처방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으면 실패할 수가 없다. 이런 연유로 내가 이후보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후원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의 여러 처지를 점검하고 정치권을 오래 떠나 있었기에 좀 망설여졌지만, 이렇게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주위 분들께 이런 경위를 대강 말씀드리며, 이후보님은 무지 똑똑하시고, 실용주의자이시라고 두 포인트를 알려드리면, 부정적인 반응도 대체로 두가지였다. 하나는 품위가 없다는 것(구설수 많다)과 어떤 분인지 모르겠어서 무섭고 웬지 과격한 인물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거였다. 첫번째 부분에 대해선 딱히 옹호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나는 소신을 갖고 이후보님이 "광주대단지사건"을 겪은 성남 빈민층출신이란 것. 성남의 특수성과 빈민층 환경의 매우 척박한 어려움을 감안할 때, 이분의 구설은 대체로 역경을 뚫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며, 이후보님의 성장배경을 우리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곤 한다.
나도 후원회장이 된 후 "소년공 다이어리"를 읽고서야 이후보님이 성남에서 활동하다 성남에서 정치를 시작하고 기초단체, 광역단체를 거쳐 대선에 나왔다는 경로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 최초의 특별한 정치경력기록을 쓰고 있지만, 광주대단지사건이 있은지 5년 뒤에 성남에 들어가 극빈민생활 속에서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했고 소년시절부터 성남에서 성장했다는걸 비로소 알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은 1968년부터 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전기도 수도도 화장실도 없는 야산에 텐트 하나 나눠주고 버리다시피 해서 굶어죽고 범죄에 시달리고 어려움을 겪다가 1971년에 폭발한 사건이며 아직까지도 그 역사적 평가에 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 사건 이후 성남개발과정은 부동산투기가 엄청 들끓은 기록을 남긴다. 나중에 분당신도시 개발 후 성남의 이미지가 회복됐고, 이후보님은 성남과 분당의 양면을 모두 체험하며, 성공한 정치인의 경력을 탄탄히 쌓은 분이시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스로 가능한 현실을 만들면서 여기까지 온 대한민국의 한 정치인. 나는 이후보님의 모든 것을 나와는 전혀 다른 성장의 그늘 속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인물이 수렁 속에서 끈질기게 올라온 이력으로 보고 그 개인사적인 면보다는 그의 기적같은 현존에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이후보님의 실용주의적 정치력은 이제 차츰 알려지기 시작하는듯 한데, 실용주의란, 사실 국민을 위한 정치의 기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에서 다수 국민의 합의된 의견을 따라 정치를 해야 하며 소수가 소외되지 않도록 존중해서 보호해야 하는게 정치의 기본이다. 실용주의는 국민의 일꾼으로서의 정치인이 국민의 의견을 듣고 다수 견해를 좇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 지지자들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이다. 이후보님의 발언들을 보면 이와 같은 국민대리인으로서의 정치철학이 매우 확고하다.
요즘 걱정은 지금부터 2030년까지 기후위기로 인한 대전환의 매우 중요한 국면을 겪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나도 나라걱정을 한다. 보수냐 진보냐 싸우는 것도 별 의미가 없고, 국민들의 의견을 잘 모으고, 잘 설득하고, 대타협을 이끌어내고, 가장 최선의 경로를 찾아서 에너지와 산업전환, 정의와 공정이 실현되는 전환을 이뤄나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제1국면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정치학습을 많이 했다. 대선은 국민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선 승패를 떠나서 이재명이라는 탁월하고 유니크한 한 정치인이 이 나라를 위해서 길이 크게 기여해주시길 기대한다.
ㅡ 후원회장 강금실
후원회장을 맡은 후 만나는 분들로부터 가장 많이 질문받은게 이후보님과 어떤 인연으로 알게된 것이냐였다. 나도 별 인연이 없다. 올해 6월 경기도 기후대응 산업전환 특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게되어 그 한달 전쯤 당시 도지사이던 이후보님과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눌 기회가 한번 있었다는것. 그전에는 2018년에 이화영 평화부지사실에서 처음으로 인사 한번 드린게 전부.
나도 원래는 성남시장 하실 때 포퓰리스트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었다. 내 생각이 바뀐건 경기도지사가 되신 후 악성사채 피해근절을 위한 정책을 내놓았을 때였다. 때로 우리는 드라마에서 사채업자들이 형편이 열악한 채무자를 찾아가서 난동을 피우는 것을 보곤 한다. 실제로 사채업은 조폭과 많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안다. 악성사채 문제에 대한 정책을 내놓는다는건 정말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모르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실제로 큰 성과를 내시기도 했다. 그 때 이 분은 정말로 현실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알고 정책을 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감탄을 했다. 또 이후보님이 재판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계곡 주변 정화를 위해서 가게가 철거된 상인들이 앞장서서 탄원서를 제출해줬다는 일화를 줏어듣고서 이 분은 대화와 타협, 설득의 정치력을 갖고 계시구나 하는 놀라움을 느꼈다.
도지사실에서 이후보님과 한번 미팅할 당시에 느꼈던건 여러 현안-국내외, 외교문제까지-을 잠깐 서로 염려하는 부분들 거론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무지 똑똑하시다”는 거였다. 똑똑하다는건 판단력을 뜻한다. 상황판단을 정확히 하고 대처방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으면 실패할 수가 없다. 이런 연유로 내가 이후보님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후원회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의 여러 처지를 점검하고 정치권을 오래 떠나 있었기에 좀 망설여졌지만, 이렇게라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주위 분들께 이런 경위를 대강 말씀드리며, 이후보님은 무지 똑똑하시고, 실용주의자이시라고 두 포인트를 알려드리면, 부정적인 반응도 대체로 두가지였다. 하나는 품위가 없다는 것(구설수 많다)과 어떤 분인지 모르겠어서 무섭고 웬지 과격한 인물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거였다. 첫번째 부분에 대해선 딱히 옹호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나는 소신을 갖고 이후보님이 "광주대단지사건"을 겪은 성남 빈민층출신이란 것. 성남의 특수성과 빈민층 환경의 매우 척박한 어려움을 감안할 때, 이분의 구설은 대체로 역경을 뚫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며, 이후보님의 성장배경을 우리가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곤 한다.
나도 후원회장이 된 후 "소년공 다이어리"를 읽고서야 이후보님이 성남에서 활동하다 성남에서 정치를 시작하고 기초단체, 광역단체를 거쳐 대선에 나왔다는 경로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 최초의 특별한 정치경력기록을 쓰고 있지만, 광주대단지사건이 있은지 5년 뒤에 성남에 들어가 극빈민생활 속에서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했고 소년시절부터 성남에서 성장했다는걸 비로소 알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은 1968년부터 십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전기도 수도도 화장실도 없는 야산에 텐트 하나 나눠주고 버리다시피 해서 굶어죽고 범죄에 시달리고 어려움을 겪다가 1971년에 폭발한 사건이며 아직까지도 그 역사적 평가에 관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 사건 이후 성남개발과정은 부동산투기가 엄청 들끓은 기록을 남긴다. 나중에 분당신도시 개발 후 성남의 이미지가 회복됐고, 이후보님은 성남과 분당의 양면을 모두 체험하며, 성공한 정치인의 경력을 탄탄히 쌓은 분이시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스로 가능한 현실을 만들면서 여기까지 온 대한민국의 한 정치인. 나는 이후보님의 모든 것을 나와는 전혀 다른 성장의 그늘 속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인물이 수렁 속에서 끈질기게 올라온 이력으로 보고 그 개인사적인 면보다는 그의 기적같은 현존에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이후보님의 실용주의적 정치력은 이제 차츰 알려지기 시작하는듯 한데, 실용주의란, 사실 국민을 위한 정치의 기본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에서 다수 국민의 합의된 의견을 따라 정치를 해야 하며 소수가 소외되지 않도록 존중해서 보호해야 하는게 정치의 기본이다. 실용주의는 국민의 일꾼으로서의 정치인이 국민의 의견을 듣고 다수 견해를 좇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대통령은 당선되는 순간 지지자들의 대리인이 아니라, 국민의 대리인이다. 이후보님의 발언들을 보면 이와 같은 국민대리인으로서의 정치철학이 매우 확고하다.
요즘 걱정은 지금부터 2030년까지 기후위기로 인한 대전환의 매우 중요한 국면을 겪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나도 나라걱정을 한다. 보수냐 진보냐 싸우는 것도 별 의미가 없고, 국민들의 의견을 잘 모으고, 잘 설득하고, 대타협을 이끌어내고, 가장 최선의 경로를 찾아서 에너지와 산업전환, 정의와 공정이 실현되는 전환을 이뤄나가야 하는 매우 중요한 제1국면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정치학습을 많이 했다. 대선은 국민의 현명한 판단에 맡기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선 승패를 떠나서 이재명이라는 탁월하고 유니크한 한 정치인이 이 나라를 위해서 길이 크게 기여해주시길 기대한다.
ㅡ 후원회장 강금실
'모리아 > 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근육 (0) | 2022.03.07 |
---|---|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0) | 2022.01.22 |
‘감사의 씨앗’을 심자 (0) | 2021.11.16 |
노태우 국가장에서 노재봉의 말 (0) | 2021.11.01 |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적 도전 (0) | 202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