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라는 선물”
이국운 국회보. 통권615호 (2018년 2월), pp.64-65 국회사무처 2018.02.06.
헌법 읽기
지난 연말 이런저런 모임에서 참 반가운 선물을 두 차례나 받았다. 대한민국 헌법이 수록된 작은 책자였다. 양복 주머니에 넣으면 딱 좋을 만한 포켓용 헌법으로, 그 안에는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과 130개 조문이 오롯이 수록되어 있었다.
"헌법이라는 선물"
흐뭇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한민국 헌법 읽기를 추진하는 시민단체들에서 시민들에게 헌법 선물하기 운동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재작년 촛불집회 이후 시민들 사이에 헌법에 대한 관심이 커진 탓이리라. 반가운 선물을 받고 보니 자꾸 그 의미를 반추하게 된다. 헌법 교수의 생업은 시민들, 특히 아직 학생인 동료 시민들에게 대한민국 헌법의 내용과 그 해석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어쩌면 헌법 현상의 가장 감동적인 국면 하나를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헌법이란 근본적으로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 말이다. 늘 더 안다고 생각하고, 더 주어야 한다고, 특히 더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헌법 현상의 본질적인 차원을 잠시 잊어버렸던 것 같다.
헌법은 선물이다. 그렇다면 이 선물은 누구로부터 온 것인가? 예상치 못한 반가운 선물을 양복 주머니에 챙겨 넣으면서, 곧바로 이 질문에 답하고 또 그 결과를 동료 시민들에게 나누게 될 것을 예감했다. 헌법 교수의 숙명이랄까? 어쨌든 이 자리를 빌려 지난 몇 주간 고민해서 얻은 작은 결론을 나누고 싶다. 답변의 실마리는 헌법의 주어를 찾는 곳에 있다.
헌법 전문의 주어 ‘우리 대한국민’매년 봄 학기 헌법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학생 한 명에게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큰 소리로 읽어보라고 부탁하곤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열이면 예닐곱은 전문의 첫 부분을 읽다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이라고 읽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헌법 전문의 주어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이다. 이는 헌법 전문의 주어인 동시에 그 뒤에 나오는 130개 조문을 선포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대한국민’의 작품임이 명백하다. 헌법 전문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개정한다’라는 동사로 끝나고 있지 않은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중략)…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선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헌법의 주어, 즉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을 선물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선물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헌법 조문을 따라 읽으면, 이 점을 드러내는 용어를 금세 발견할 수 있다. 헌법 제2조 1항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은 헌법에 의하여 탄생하는 존재로서 헌법의 주어인 ‘우리 대한국민’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논리적으로 후자는 헌법보다 먼저 존재하고, 전자는 헌법 이후에 나타난다. 게다가 전자는 오로지 후자의 선물인 헌법에 의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헌법을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헌법의 주어가 ‘우리 대한국민’이며, 헌법은 바로 그 ‘우리 대한국민’의 선물이라는 점을 깨닫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헌법적 위상을 자문하게 되는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국민일 뿐인가? 아니면 우리 대한국민의 한 사람이기도 한가?” 이 질문은 헌법이라는 선물의 양 당사자 중 어느 편인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선물을 받는 사람일 뿐인가? 아니면 선물을 주는 사람이기도 한가?” 이와 같은 질문들이야말로 시민들의 내면에서 헌법 현상이 비롯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관하여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찾은 답을 간단히 말해보자면 이렇다.
우리는 결코 헌법이라는 선물을 받는 ‘대한민국의 국민’의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선물을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우리들 또한 헌법의 주어인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 사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에서 출발해 헌법이라는 선물을 주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대한국민으로서 이제 우리가 헌법을 선물해야 할 상대방은 다른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헌법을 읽다가 자신들이 헌법의 주어, 즉 ‘우리 대한국민’의 한 사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지금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 대한국민’의 자리로 나아가 다시 또 다른 사람들에게 헌법이라는 선물을 전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선순환, 즉 ‘대한민국의 국민’을 ‘우리 대한국민’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흥미로운 과정이야말로 헌법 현상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지난 연말 내게 포켓용 헌법을 선물한 분들은 이 점을 꿰뚫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는 단지 헌법 교수의 직분에 따라 그분들의 뜻을 간략히 풀어보았을 따름이다.
헌법의 주어에 관한 내 나름의 사유를 선물의 관점에서 다시금 성찰하게 해 주신 그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글.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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