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편지 76

친구에게

[친구에게] ㅡ 이 해인 부를 때마다 내 가슴에서 별이 되는 이름 존재 자체로 내게 기쁨을 주는 친구야 오늘은 산숲의 아침 향기를 뿜어내며 뚜벅뚜벅 걸어와서 내 안에 한 그루 나무로 서는 그리운 친구야 때로는 저녁노을 안고 조용히 흘러가는 강으로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메마름을 적셔 주는 친구야 어쩌다 가끔은 할말을 감추어 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기침을 계속하는 보고 싶은 친구야 보고 싶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그리움과 설레임 파도로 출렁이는 내 푸른 기도를 선물로 받아 주겠니? 늘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빙긋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주던 따뜻한 친구야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모였다가 어느 날은 한 편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나 보다 때로는 하찮은 일로 너를 오해하는 나의 터무니없는 ..

모리아/편지 2021.07.18

최재형 감사원장께

최재형 전 감사원장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오늘은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가 죽은 날입니다. 대한민국 감사원의 존재 의의가 뿌리째 흔들린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은 날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은 고 김재윤 시인의 판사였고, 시인에게 돈을 주었다는 서울예술종합학교 이사장의 학교 현장검증에서 당신은 판사 자격으로, 나는 시인의 동지로 만났습니다. 시인의 억울함을 풀어주리라 기대할 만큼 당신은 선한 얼굴이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동석했던 변호사와 시인의 동생도 똑같은 생각이었기에 무죄 선고를 기대했습니다. 당시 돈을 주었다는 이사장의 진술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이사장은 교비 횡령혐의로 구속당할 위기에..

모리아/편지 2021.07.16

능소화 편지

[능소화 편지] ㅡ 이 향아 등잔불 켜지듯이 능소화는 피고 꽃지는 그늘에서 꽃빛깔이 고와서 울던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싸웠어도 내가 먼저 말을 걸 것을 여름이 익어갈수록 후회가 깊어 장마 빗소리는 능소화 울타리 아래 연기처럼 자욱하다 텃밭의 상추 아욱 녹아버리고 떨어진 꽃 빛깔도 희미해지겠구나 탈없이 살고 있는지 몰라 여름 그늘 울울한데 능소화 필 때마다 어김없이 그는 오고 흘러가면 그뿐 돌아오지 않는단 말 강물이야 그러겠지 나는 믿지 않는다

모리아/편지 2021.06.23

최재형 감사원장님께

최재형 감사원장님께 오랜만이네. 민웅이야. 요즘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겠다. 그래도 품격있게 나이들어가는 모습, 보기에 좋구나. 이런 공개편지를 받아 읽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나 또한 이런 글을 쓰게 될지 꿈에라도 생각하지 못했다네. 덕담과 인생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세월에 이런 편지를 공개적으로 쓰게 되어서 마음이 편치 않네. 그간 무슨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닌데 불쑥 쓰게 되는 것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나도 이 편지가 쉽지 않은 결정이네. 이게 의미가 있을까 했지만 많은 기도 끝에 쓴다네. 사적 인연에 기대어 쓴 공인에 대한 공개편지니 불편하더라도 참고 그리 읽어주시기를 바라네. “공적 가치의 운명”에 대한 것이니 그런 각도에서 살펴 보아주기를. 아득한 시절의..

모리아/편지 2021.06.19

부부의 날 띄우는 편지

♥부부의 날 띄우는 편지 남편의 실직에, 설상가상 아이가 생겨, 배는 만삭으로 불러왔지만 당장 저녁 끼니가 없고 새벽 인력 시장에 나가는 남편에게, 차려줄 아침거리조차 없는게 서러운 아내는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아내가 우는 이유를, 모를리 없는 남편은, 아내의 그 서러운 어깨를 감싸주며 말했습니다. "당신 갈비 먹고 싶다고했지? 우리 외식하러 갈까? 사실 외식할 돈이 있을리 없지만, 오랜만에 들어보는 남편의 맑은 목소리가 좋아서 그냥 피식 웃고 따라 나섰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데려간 곳은 백화점 식품매장 이었습니다. 식품매장 시식코너에서, 인심 후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부부를 불렀습니다. 아주머니는 "새댁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봐요. 임신하면 입맛이 까다로워진다니까." 하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시..

모리아/편지 2021.05.22

우리의 환경이 혼동될 때

* 우리의 환경이 혼동될 때 : 성경을 통해서, 기도할 때, 또는 환경을 사용해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거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십니다. 그 중에 환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에 환경은 ‘나쁘게’ 보이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이런 ‘나쁘게’ 보이는 환경에 처해서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묻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거나 결코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쁘거나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는 데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렵고 혼돈된 환경에 부딪치면 그것에 의해서 위축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환경에 푹 빠져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비뚤어진 이해를..

모리아/편지 2021.05.20

창백한 손

계수님께 읽을 책이 몇 권 밀리기도 하고 마침 가을이다 싶어 정신 없이 책에 매달리다가, 이러는 것이 잘 보내는 가을이 못됨을 깨닫습니다. 몸 가까이 있는 잡다한 현실을 그 내적 연관에 따라 올바로 이론화해내는 역량은 역시 책 속에서는 적은 분량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가 남의 사고를 반복하는 낭비일 뿐이라는 극언을 수긍할 수야 없지만, 대신 책과 책을 쓰는 모든 '창백한 손'들의 한계와 파당성(派黨性)은 수시로 상기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오늘이 중양절, 그러고 보니 강남 갈 의논으로 전깃줄에 모여 그리도 말이 많던 제비들 모두 떠나고 없습니다. 구름에 앉아 지친 날갯죽지를 쉴 수 있다면 너른 바다도 어렵잖았을 텐데, 무리에 끼어 앉았던 어린 제비 한 마리 생각납니다. 불사춘광 ..

모리아/편지 2021.04.02

계수님께

계수님께 겨울 준비를 하느라고 비닐을 쳐서 바람창을 막고 작업장에 칸막이를 하는 등 서툰 목수일을 하다가 망치로 검지손가락을 때려 하는 수 없이 손톱 한 개를 뽑았습니다. 언젠가의 계수님의 여름처럼 불편한 한 주일이 될 것 같습니다. 손가락의 아픔보다는 서툰 망치질의 부끄러움이 더 크고, 서툰 솜씨의 부끄러움보다는 제법 일꾼이 된 듯한 흐뭇함이 더 큽니다. 더러 험한(?) 일을 하기도 하는 징역살이가 조금씩 새로운 나를 개발해줄 때 나는 발 밑에 두꺼운 땅을 느끼듯 든든한 마음이 됩니다. 형님, 형수님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 작은 가방에 많은 물건을 넣은 듯 두서 없긴 하지만 창문 하나 더 열어준 셈은 됩니다. 생남(生男)을 축하합니다. 낳을까 말까, 낳을까 말까..

모리아/편지 2021.04.02

한 포기 키 작은 풀로 서서

계수님께 자기의 그릇이 아니고서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처럼, 성장환경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자기의 언어가 아니고서는 대화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언어란 미리 정해진 약속이고 공기(公器)여서 제 마음대로 뜻을 담아 쓸 수가 없지만 같은 그릇도 어떤 집에서는 밥그릇으로 쓰이고 어떤 집에서는 국그릇으로 사용되듯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성장과정과 경험세계가 판이한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 맨 먼저 부딪치는 곤란의 하나가 이 언어의 차이입니다. 같은 단어를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그런대로 작은 차이이고, 여러 단어의 조합에 의한 판단형식의 차이는 그것의 내용을 이루는 생각의 차이를 확대한다는 점에서 매우 큰 것이라 하겠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예를 든다면 아마 '책가방 끈이 ..

모리아/편지 2021.03.28

'장기 망태기' 속에서

형수님께 우용이, 주용이 그리고 형수님의 건강을 빕니다. 항상 엽서의 문미(文尾)에 가벼운 인사말로 적던 이 말을 오늘은 엽서의 모두(冒頭)에 경건한 기원처럼 적어보았습니다. 우체국에서 선 채로 써보내신 형수님의 편지는 제게 여러 가지 생각을 안겨주었습니다. 평소 단정하고 무척 강단져뵈던 형수님께서 내면에 그토록 심한 고통을 안고 계신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쇄소(灑掃), 응대(應對), 진퇴(進退)에 있어 좀체로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 형수님께서 "읽고 곧 찢어버리기 바라는" 헝클어진 편지를 띄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심정에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물론 형수님의 건강 상태나 심경을 자상히 헤아릴 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형수님의 예의 그 '단정'(端正..

모리아/편지 202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