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님께
오랜만이네. 민웅이야.
요즘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겠다.
그래도 품격있게 나이들어가는 모습, 보기에 좋구나.
이런 공개편지를 받아 읽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나 또한 이런 글을 쓰게 될지 꿈에라도 생각하지 못했다네.
덕담과 인생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세월에 이런 편지를 공개적으로 쓰게 되어서 마음이 편치 않네. 그간 무슨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닌데 불쑥 쓰게 되는 것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망설여졌다.
나도 이 편지가 쉽지 않은 결정이네. 이게 의미가 있을까 했지만 많은 기도 끝에 쓴다네. 사적 인연에 기대어 쓴 공인에 대한 공개편지니 불편하더라도 참고 그리 읽어주시기를 바라네. “공적 가치의 운명”에 대한 것이니 그런 각도에서 살펴 보아주기를.
아득한 시절의 동창. 나이 들어 본 것도 벌써 몇 년이 흘렀구나. 자네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좋았다. 어릴 때 공부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단정한 모범생이었으니. 더군다나 나중에 보니 깊은 신앙과 입양까지 하는 개인의 삶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 말일세.
감사원장에 임명되었을 때 참으로 자랑스러웠다네. 그럴 위치에 갈 만한 인물이지 하고 말이야.
그런데 어제 국회에서의 답변을 보았다네.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 논란에 대해 “다양한 판단이 있을 수 있다”라는 대답을 들으면서 이게 뭘까? 했다.
이런 답변이 재형이 자네 자신의 철학과 과연 맞는 것이었을까? 그간 살아온 삶과 어울리는 자세였을까? 그렇다면 내가 자네를 잘 못 본 거고 아니라면 자네에게 책임이 돌아가네.
그 장면을 보는 이들에게 당당한 느낌을 주긴 했을까? 이미 속으로는 답이 있는데도 즉답을 회피하면서 혹여 현장을 모면하고 다른 궁리가 있다는 인상을 주진 않았을까? 스스로 보기에는 어떻던가?
최강욱 의원의 질문은 분명했지 않았는가? 엄격한 정치적 중립의 자리에 있어야 할 감사원장이 대선으로 직행한다면, 그간의 감사원장으로서 해온 일들은 당연히 의혹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되는 것은 자네의 인격 그리고 명예와 공적 위신을 해치지는 않을까? 함께 했던 사람들은 또 뭐가 되는가?
그걸 감수하고라도 대선에 출마하겠다면 그건 자네를 부추긴 자들로 생겨난 욕심은 아니었을까? 입장을 달리해서 감사원장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공적 가치를 훼손한 사람이 대선에 나가 국가 지도자로 나서겠다고 한다면 자네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보게 될까? 다른 누가 아닌 “최재형”이라 이런 공적 허물이 용서되는 걸까?
더 큰 이상과 시대적 책임 때문이라면 그런 “역사적 삶”을 살아왔어야 해. 그랬던가?
자네와 이름이 같은 독립지사가 계시지. 알고 있을 거야. 최재형 선생. 일명 최뻬찌까. 1860년에 태어나 1920년에 돌아가신 함경도 출신의 러시아 한인사회의 지도자. 블라디보스톡에서 자신의 전재산과 목숨을 걸고 독립항쟁에 나섰다 순국하셨던 분. 견주어보면 어떤가?
그만한 삶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의 흐름이라도 알고 살아온 지난 시간이었는가를 한번 돌아보면 어떨까 해서 하는 말이네.
감사원장 현직을 가지고 대선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감사원장이라는 위치를 발판으로 삼아 하겠다는 건데 국민들의 노고로 세운 공적 가치를 밟고 다음 수순으로 뭔가에 올라서려는 건 이미 자격을 상실해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선례를 만들어버리는 자리에 자네가 있게 된다는 것은 자네 자신과 자네를 진정 아끼는 이들에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좀 다른 차원의 질문이 있다네.
해직되었던 전교조 교사의 복직과 역할을 새롭게 마련해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공수처 수사대상이 되는데 자네가 일조한 것을 보면서 내가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은 할 수 있을까?
공개적으로 이리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이걸로 자네의 판단, 그 수준과 내용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였다고 생각해. 조희연 교육감의 조치는 칭찬을 받아야 하고 사회적 모범사례로 부각되어야 하는 것을 자네는 순식간에 지탄의 대상처럼 만들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일세.
한국사회의 교육 현실에 대해 이런 정도의 사회적 이해능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감사원장 자리도 사실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 이런 이야기가 듣기에 혹독한 말이겠지만, 아는가? 자네가 조희연 교육감에게 한 행위는 평생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위해 살아온 한 지식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해직되었다 새 역할을 갖게 된 교사들의 삶에도 커다란 상처를 준 것이네. 누가 더 혹독한 걸까?
이런 비판이 수긍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건데 대선출마는 제쳐두고 감사원장의 자격도 깊이 돌아보았으면 하네. 정말 자신도 모르게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하고.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자네에 대한 공개비판이 되어서 안타깝지만 조희연 교육감 사례는 더 깊은 고뇌가 필요했던 일이었다는 것만큼은 강조하고 싶네. 울산원전 사건은 세세히 거론하지 않겠네. 탈원전을 위한 안전정책과 생태계 보존을 위한 대안적 사유까지 거론해야 할 텐데 지금 그럴 여유는 좀 없네. 그 사건은 자네의 출마에 정치적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 정도만 말하겠네.
나는 이번 조희연 교육감 공수처 수사를 보면서 자네가 대선 출마용으로 진보교육감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미리 준비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네. 이건 새로 생겨난 판단이야, 자네가 만든. 나의 이 의구심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해보게나.
공수처는 촛불시민들이 검찰개혁을 목표로 어렵게 이룩한 성과인데 이런 결과를 보면서 너무나 당혹해하고 있다네. 게다가 대통령이 신임하는 감사원장이 이런 과정을 만들어냈다는 것에도 무척 경악하고 있고 말일세.
그런 감사원장이 대선에 나가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무슨 생각이 들게 될까? 대통령이 걸었던 기대를 이런 식으로 저버리는 것에 대한 자기모순은 없을까?
믿음을 가진 사람이니 기도하고 마음의 결정을 하려는가? 당연히 그러겠지. 그렇다면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로서 다음의 성서 말씀을 자네에게 전하고 싶다네. 자네도 잘 알고 있을 시편 1편의 첫머리일세.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로다.”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같은 시류에 들뜨다가 잎이 시든 상수리나무가 되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겨처럼 되지는 않기를 바라네. 자네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소중한 우리 사회의 자산이지 않은가?
삼가 진중하게 자신을 보존하시구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날로 얕아져 가는 권위의 민망함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는 데 거기에 자네가 추가로 가담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검찰총장을 지낸 자가 보이고 있는 행태를 보게나. 자신의 삶을 추락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명예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지 않은가? 좋게 보이던가?
진정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정작 싸워야 할 자들은 예언자 이사야가 말했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이 뭉개고 있는 자”들과“의로운 이들이 빠질 함정을 파는 자들”이지 않을까? 자네와 손을 잡고 움직이겠다는 이들은 과연 어떤 쪽에 속할까?
“이제 최재형은 국가를 맡을 식견과 경륜이 준비되어 있으니 내 백성을 구하라”라는 광야의 떨기나무 불꽃 속 하나님의 음성을 받았다면 그걸 말하게나. 그러면 믿겠네. 아니면 접고.
접는 것만으로도 자네는 큰 일을 하는 거네. 감사원장의 공적 가치를 지킨 사람이 될테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않는” 인생을 권하네. 온유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면 더욱 명예로운 길이 열릴걸세. 일생을 통해 쌓아온 인격의 존엄함을 잘 지켜나가기를 비네. 자신과 가족들이 부질없고 하염없이 상처를 입게 될 늪으로 덥썩 걸어 들어가지 말고, 부디.
주님의 이름으로.
남산 초등 시절의 벗이.
훌륭한 인격을 가진 최재형을 아끼는 마음에.
2021년 6월 19일
김민웅 교수(경희대학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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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다.
자네 어린 시절 사진도 올릴까 하다가 허락도 없이 그럴 수는 없어 초등 아마 3학년? 4학년? 내 모습만 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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