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전 감사원장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민의힘에 입당한 오늘은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가 죽은 날입니다. 대한민국 감사원의 존재 의의가 뿌리째 흔들린 가장 치욕적인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은 날 똑똑히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은 고 김재윤 시인의 판사였고, 시인에게 돈을 주었다는 서울예술종합학교 이사장의 학교 현장검증에서 당신은 판사 자격으로, 나는 시인의 동지로 만났습니다. 시인의 억울함을 풀어주리라 기대할 만큼 당신은 선한 얼굴이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동석했던 변호사와 시인의 동생도 똑같은 생각이었기에 무죄 선고를 기대했습니다. 당시 돈을 주었다는 이사장의 진술 외에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이사장은 교비 횡령혐의로 구속당할 위기에 놓여있어서 구속을 면하기 위해 충분히 허위 진술을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습니다.(김재윤 의원의 사건에 많은 의구심을 가졌던 KBS '시사직격'에서 작년 10월에 이 사건이 이사장의 허위 진술과 검찰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 적이 있습니다. 서울예술종합학교 김민성 이사장은 시인이 출옥한 후 만나자고 하여 용서를 구했습니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은 당시 공안정국을 획책하며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죄는커녕 시인에게 1심 3년보다 1년을 높여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돈을 주었다는 사람의 진술만으로 야당 3선 국회의원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정치적 탄압이라는 사실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가 2015년 여름 사법농단이 유난히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시인은 33일간 목숨 건 옥중 단식과 독방에서 꼬박 4년 옥살이를 했고 우린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당신이 뻔뻔하게도 본색을 숨기고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시인은 분개했습니다. 2018년 겨울 국회 행사장에서 당신과 내가 두 번째 만났을 때 망신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느라 힘들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나의 시선을 억지로 외면했지요.
당신이 대권에 눈멀어 감사원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다음날 시인은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갈망했던 선하디 선한 시인은 당신의 감사원장 사퇴를 보며 절망했습니다. 혹시나 고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조문을 오지 않을까 헛된 기대도 했지만 역시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당신을 용서하라 했지만 나는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타살을 당한 고 김재윤 시인께 사죄하십시오. 시인의 삶과 됨됨이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를 아는 이들에게 물어보세요. 모두가 '정치인 중 가장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 말할 것입니다. 대권은 사람 노릇하는 사람이 도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임명권자와 국민을 배신하고 스스로 신의를 팽개친 당신 같은 사람이 넘보는 탐욕의 자리가 아닙니다. 대권 도전에 앞서 먼저 망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사람의 도리입니다.
정중히 요청합니다.
- 안민석 의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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