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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에 점령당한 한국 개신교] - 우종학 1. 왕(王)자를 손에 쓰고 나와 대선토론에 임하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비상계엄으로 내란을

ree610 2024. 12. 25. 11:43

[무속에 점령당한 한국 개신교]

- 우종학

1. 왕(王)자를 손에 쓰고 나와 대선토론에 임하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비상계엄으로 내란을 일으켰습니다. 배우자 김건희가 ‘나 감옥에 가나요’라고 무속인에게 물었다는 이야기는 이 부부가 얼마나 신령한(?) 분들인지 보여주는 단초가 됩니다.
우주가 도와준다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표현은 귀엽게 봐줄 정도입니다. 이번 비상계엄 내란에 무속의 힘이 뻗쳐 있습니다. 군인들의 점을 봐주던 무속인 노상원 전 정보사사령관이 계엄 실행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무속의 힘을 많이도 빌렸겠습니다. 도대체 과학이 발전한 21세기 선진국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무속에 휘둘리다니 심란합니다.

2. 더 가관인 것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기독교 목사들의 행태입니다. 이분들 중에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근거해서 지구6천년설을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는 출애굽기 말씀이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무당이나 박수나 신접자를 내치고 쫓아내라’는 신명기 말씀은 왜 문자적으로 안 믿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김건희 부부나 그들의 무당패거리는 살려둘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3. 그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목사들이나 무속인들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비상계엄 내란 후에 극우선동가 전광훈이 그랬답니다. 전세금을 빼서라도 윤석열을 도와야한다고. 여신도에게 빤스를 내리라고 해서 말을 들으면 자기신도라고 했던 수준인 전광훈의 선동에 아멘하는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빤스 목사는 개신교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으니 그렇다 치자고요?

4. 그럼 어디봅시다. 예장통합의 장신대 김철홍 교수는 윤석열을 예수에 준하는 인물이라고 칭송했답니다. 계엄은 위대한 발걸음이라고 했다죠. 이 분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도대체 누구일지... 원래 이런 쪽으로 유명한 분이니 무시해도 될까요?

5. 윤석열을 위해 안수 기도하던 목사들은 어떨까요? 구국을 위한 신념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하늘의 권력을 끌어내려 임하게 하는 통로라도 된듯이 신령했던 그 목사들이 비상계엄 내란사태 이후 한마디 반성이라도 했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잘못 봤다고, 아니면 그래도 대통령을 위해 기도했을 뿐인데 기도응답이 없었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나 보다고. 흠... 글쎄요…

6. 다들 탄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기도하자고 합니다. 이분들은 사회현상을 잘 파악도 못하고 인과관계도 알아내지 못하나 봅니다. 탄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인가요? 아닙니다.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내란을 일으켜서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탄핵은 내란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7. 실체도 없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형집회의 핵심 세력인 세계로 교회 손현보 목사는 탄핵으로 대통령이 잘리면 나라 경제 손실이 크다고 했답니다. 이분도 아무래도 사회경제적 현상을 보는 눈이 없나 봅니다.
탄핵 때문이 아니라, 비상계엄 내란 때문에 나라가 휘청거리는 것입니다. 최소 300조 이상의 손실이 생기는 이유는 아무렇게나 비상계엄을 때렸기 때문이죠. 경제적 손실을 줄이는 방법은 빠르게 탄핵하고 이 문제를 정리해서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입니다. 탄핵을 안하고 식물대통령을 질질 끌고 가면 경제적 손실은 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제발 좀 당파적 생각을 버리고 이 나라를 사랑해 주십시요.

8. 아무래도 이분들이 기도만 해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모르나 봅니다. 물론 기도만 하는 게 어찌 나쁜 일이겠습니까? 그럼 계속 기도만 하시지 왜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얘기들을 하시는 걸까요? 그냥 기도만 하시고 성경 읽고 성경에 충실하게 설교하시는 것이 훨씬 낫겠습니다. 어줍잖은 사회현상 분석과 비판 때문에 상식과 지성이 있는 분들이 점점 더 교회를 떠납니다. 밖에서는 개신교가 욕먹습니다. 그저 목사를 무당처럼 모시는 분들만 교회에 남습니다.

9. 기독교가 이 모양이니 저에게 따지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성경에 지구6천년설이 맞다고 써있지 않다고, 그저 창조과학 지지자들이 그런 반과학을 옹호할 뿐이라고, 그렇게 과학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논하면 이렇게 묻습니다. 기독교의 신과 무당들이 믿는 신이 무엇이 다르냐고? 왜 하필 기독교의 신이어야 하냐고?

10. 이성적 답변은 가능하지만, 삶과 사회에서 드러나는 대답은 참으로 궁색합니다. 한국개신교는 이미 많이 무속화되었습니다. 새벽에 물떠 놓고 성공과 복을 비는 그런 기복신앙이 팽배하게 들어찬 기독교가 과연 무속신앙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11. 십자가만 걸어놓았을 뿐이지, 자기 교회의 발전과 성공에 눈이 멀고 각 개인의 축복과 성공에 목이 매인 자들의 집합이라면 이름만 예수교일 뿐, 무속과 다름없습니다. 심지어 이웃사랑을 이야기하고 나눔과 섬김을 이야기해도 결국 그것이 내가 천국에 갈 티켓을 거머쥐기 위함이라면 결국 구원이름으로 포장한 기복신앙일 뿐입니다.

12. 목사들 중에 훌륭한 분들도 많습니다. 용감하게 바른 목소리를 내는 목회자들의 소식을 언론에서 접할 때면 그래도 위안이 됩니다. 하지만 꽤나 많은 수의 목사들이 무당이 굿하듯 막무가내로 말을 쏟아냅니다. 성서를 가장 높이 평가한다는 분들이 일반계시는 무시하고 성서로 과학을 마구 판단하고, 사회정치경제예술을 다 판단한다는 분들이, 보일러가 고장나도 성경에서 해답을 찾을 분들이, 막상 자신들이 하는 허망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반성경적인지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13. 그러니 개신교가, 대형교회 목사들이 무속을 편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습니다. 이들이 무속에 휘둘리는 윤석열을 옹호하고, 영적으로 윤석열을 꽉잡고 있다는 김건희를 밀어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대통령 부부이니 신령한 목회자들이 안수하고 축복하고, 내란을 일으켜도 한 편이 되어주는 모양입니다.

14. 우파기독교는 이미 정치세력화되었습니다. 선동의 근거가 신앙이라고 합니다. 물론 잘못된 신앙입니다. 파시즘의 극치는 그 바탕에 신앙이 있을 때 가장 무섭게 드러납니다. 정치적 신념, 사회적 신념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신이 내 편이라는 맹목적 신앙입니다. 개신교가 무속에 점령당해 신앙의 이름으로 악을 행할 때, 극우개신교 파시즘이 꽃피어나고 결국 나라와 교회를 망하는 길로 이끌 것입니다.

15. 성탄절을 맞아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범처럼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지 못하고, 끝없이 나의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이기심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교회가 망하더라도 고통받는 이웃을 보호하고 감싸는 대신, 당파적 이기심으로 내 교회가 잘되어야 한다며 이웃을 소외시키는 교회, 기복신앙으로 물들은 무속화된 교회를 긍휼히 여기소서.

망해가는 한국개신교로부터 주의 얼굴을 돌리지 마시고, 무속에 무릎꿇지 않은 자들을 살려두시고, 우리가 내 안의 악과 싸우다 지칠 때 우리를 도우시고 이 땅의 악과 싸울 때에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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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자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샌타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 항공우주국 NASA 허블 펠로십(Hubble Fellowship), 한국천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천체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 등 국제 학술지에 100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했고, 연구 외에도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강연과 저술에 힘쓰고 있다.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며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새물결플러스),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김영사), 『대화』(공저, 복있는사람), 『기원』(공저, 휴머니스트)이 있고, 『현대 과학과 기독교의 논쟁』(공역, 살림),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비아)를 우리말로 옮겼다.